우연한 계기로 경춘선 숲길에서 열린 커피 축제에 다녀왔다. 평소 모르고 있던 축제인데, 올해로 3회차를 맞이한다고. 지하철역에서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4차선 차로를 통제한 자리에 경춘선 숲길에서 운영중인 카페와 로스터리, 커피 산지로 유명한 각국 대사관의 직원들이 부스를 차리고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커피용품, 커피와 관련된 골동품, 커피와 곁들여 먹기에 좋은 디저트, 그 외에도 개인이 만든 공예품 등 여러 부스가 알차게 들어서 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도 에콰도르 부스에서 일손을 돕고 있는 친구를 따라 행사에 갔다. 6월 초순임에도 벌써부터 그늘을 찾게 될 정도로 햇살은 뜨거웠다.
폐선된 철로를 헐고 조성된 경춘선 숲길은 비록 경의선 숲길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일대로 젊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법한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강릉이나 부산이 커피의 도시로 알려지기 시작한지는 좀 되었지만, 이곳 경춘선 숲길 일대에서 열리는 축제는 전국 수준에서 열리는 커피 축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표방하고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행사 구성이 충실한지라, 의성, 군산, 김해 등지에서 손꼽는 로스터리들도 참여했다.
대사관에서 운영하는 부스가 무료 시음을 제공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대사관 구역을 더 기웃거리게 되었는데, 미얀마, 중국 등 커피 재배지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부스들이 눈길을 끌었다. 사람이 몰리다보니 직원들이 드립커피를 내릴 시간이 모자라 그만큼 커피의 맛이 맹물같은 부스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얀마 커피가 가장 맛있었다. 그밖에 하와이가 아닌 미국 지역에서 공수해온 커피도 흥미롭긴 했지만, 맛은 그리 기억에 남지 않는다.
에콰도르 부스에서 분주히 커피콩을 파는 친구 덕에 부스의 그늘에 앉아 쉴 수 있었는데, 직원들은 분주하고 나 혼자 그늘 구석에 앉아 있어서 민망했지만 그렇다고 일손을 도울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손님을 맞이하던 친구가 눈치를 보며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 무어라 말을 한다. 알고 보니 커피콩을 사러 오신 분이 친구와 내가 다닌 중학교의 은사셨다. 친구의 눈썰미가 어찌나 좋은지, 알려주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것이다. 중학생이던 시절도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차양모를 쓴 선생님의 얼굴에서 칠판 앞에서 경상도 말투로 사회 과목을 가르치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존댓말을 쓰는 은사와의 대화에서 커다란 시간의 공백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늘이 좋다지만 멀뚱멀뚱 자리를 축내고 있는 것도 민망해서 얼마 안 있다가 자리를 떴다. 그러다 이 인파 속에서 이번에는 축제에 찾아온 직장 동기들과 마주쳤다. 한 해에 몇 번 얼굴을 보진 못하지만,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그렇지만 규모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동네의 축제 속에서 공교로울 만큼 반가운 만남이 많았던 여름의 초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