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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일상/book 2026. 10. 6. 18:32
우리는 날마다 불안정성에 관한 뉴스를 접한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있고, 일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어 분노하는 사람도 있다. 고릴라와 민물알락돌고래는 멸종 위기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태평양군도 전체가 물에 잠긴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는 이런 불안정성을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예외적 상황이라 여긴다. 불안정성은 체계에서 '예외'라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불안정성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시대의 조건이라면 어떨까? 아니, 달리 말해서 우리 시대가 불안정성을 인지할 단계에 이른 것이라면 어떨까? 불안정성과 불확정성, 또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는 무언가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체계성의 중심을 이루는 것들이라면? ―p.51 배치assemblage는 유용한 개념이다. 생태학자는 때로 고정되고 제한된 함의를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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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premier jour. 만 킬로미터 거리에서Huit jours à Tolouse 2026. 10. 5. 11:07
저녁에는 B와 프랑스 텔레비지옹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을 봤다. 거실의 불을 어둡게 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으니 아늑했다. 페리고르(Périgord) 여행기를 보며, 그 지역에 있는 유명한 동굴들과 가보려고 했지만 일정상 가보지 못한 로카마두르(Rocamadour)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B와 보았던 건 여행기인데 방에 올라가기 직전 프랑스의 이민 정책에 관해 이야기를 어쩌다 나누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이민자 없이는 돌아가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내게는 아직도 이민자라는 것이 낯설고 프랑스에 대해서는 그런 주제에 대한 궁금증이 자꾸 떠오른다. 이튿날 툴루즈를 떠나는 비행기는 아침 비행기였다. B는 자동차로 블라냐크 공항까지 나를 바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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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국 연구일상/book 2026. 9. 25. 20:06
전통적 역사 서술은 제국 역사를 오랫동안 두 가지 주요 단계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18세기 후반에 끝난 중상주의 제국 시대였다. 두 번째는 19세기 말에 갑자기 등장한 '신제국주의' 시대였다. 그사이에는 제국주의가 침체된 시기가 존재했고, 비공식 제국이라는 개념이 그 간극을 메웠다. ......가장 일반적 측면에서 제국은 팽창이라는 좀 더 넓은 범주의 하위유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팽창하는 국가나 사회가 반드시 제국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지배하거나 종속하려 하지 않아도 상품, 인력, 사상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다른 국가나 민족을 지배하려는 의도를 명백히 드러낸다. 제국주의는 팽창을 제국과 연결하지만, 제국 없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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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deuxième jour. 요리를 선물하다Huit jours à Tolouse 2026. 9. 22. 23:12
글쎄, 이제는 툴루즈에서의 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출국 비행기가 오전에 잡혀 있는 일정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 날이 여행의 마지막날이었다. 나는 늘 그러하듯 라퓌자드 가에서 주황색 노선인 9번 버스를 타고 카피톨 광장으로 나왔다. 옹브르 블랑쉬 서점 한가운데 뜰이 달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번 여정에 수미상관 구조를 만들어보려고 애쓴다. 그리고 오전 대부분의 시간은 한국에 돌아가 주변에 나누어줄 기념품을 사는 데 시간을 썼다. 마르세이유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비누, 고급 초콜릿, 오귀스탕 성당과 관련된 작은 모양의 조각상, 옹브르 블랑쉬에서 고심 끝에 고른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근현대사에 관한 만화책(bandes dessinées), 문구점에서 고른 몇 가지 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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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꿈(大梦)일상/music 2026. 9. 17. 22:27
B가 하루는 내게 중국음악을 추천해 주었다. B는 내게 유교적 가치가 퇴색되며 고단하게 살아가는 현대 중국인들의 애환을 노래하는 곡이라고 소개해주었지만, 내 생각엔 유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나는 중국 농민공의 애달픈 삶을 노래하는 곡이 아닌가 싶다. 나는 B에게 프랑스와는 다르게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근대화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집약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변화의 충격이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도 크게 다가온 것 같다고 말했다. 유교라는 키워드로 문제 제기를 한 것에 좋은 답을 주고 싶었지만, 프랑스 사람에게 유교적 질서에 대해서 말하는 건 권위주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늘 까다로운 문제다.我已经六岁 走在田野里 여섯 살, 들판을 걷다가一个不小心 扑倒在水里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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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어귀에서주제 없는 글/印 2026. 9. 6. 07:53
영화는 꽤 보는데 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다. 뭘 보든 집중해서 보다보니, 대개 한 편 안에서 완결이 되는 영화를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연속 기획이라 하더라도 시사나 다큐멘터리처럼 매 에피소드마다 메시지가 명확한 걸 보는 편이다. 그럼에도 요새 뒤늦게 주행 중인 처럼 한 해에 한 편 정도는 푹 빠져서 드라마를 보는데, 작년에는 도 그런 경우였다. 이곳저곳 사진 찍으러 한산한 동네를 찾아 다니는 걸 좋아하다보니, 영화나 드라마 속 어떤 장면을 보다가 언젠가 내가 가본 적이 있던 길어귀나 동네 가게를 발견하면 반가울 때가 있다. 화면 속에서야 정취가 있지만 남들은 혹시 알아차렸을까 싶을 만큼 눈에 띄지 않는 곳들이다. 반대로 때때로 장면 속 어떤 장소가 깊은 인상을 남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