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
Le deuxième jour. 요리를 선물하다Huit jours à Tolouse 2026. 9. 22. 23:12
글쎄, 이제는 툴루즈에서의 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출국 비행기가 오전에 잡혀 있는 일정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 날이 여행의 마지막날이었다. 나는 늘 그러하듯 라퓌자드 가에서 주황색 노선인 9번 버스를 타고 카피톨 광장으로 나왔다. 옹브르 블랑쉬 서점 한가운데 뜰이 달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번 여정에 수미상관 구조를 만들어보려고 애쓴다. 그리고 오전 대부분의 시간은 한국에 돌아가 주변에 나누어줄 기념품을 사는 데 시간을 썼다. 마르세이유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비누, 고급 초콜릿, 오귀스탕 성당과 관련된 작은 모양의 조각상, 옹브르 블랑쉬에서 고심 끝에 고른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근현대사에 관한 만화책(bandes dessinées), 문구점에서 고른 몇 가지 갈리..
-
긴 꿈(大梦)일상/music 2026. 9. 17. 22:27
B가 하루는 내게 중국음악을 추천해 주었다. B는 내게 유교적 가치가 퇴색되며 고단하게 살아가는 현대 중국인들의 애환을 노래하는 곡이라고 소개해주었지만, 내 생각엔 유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나는 중국 농민공의 애달픈 삶을 노래하는 곡이 아닌가 싶다. 나는 B에게 프랑스와는 다르게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근대화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집약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변화의 충격이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도 크게 다가온 것 같다고 말했다. 유교라는 키워드로 문제 제기를 한 것에 좋은 답을 주고 싶었지만, 프랑스 사람에게 유교적 질서에 대해서 말하는 건 권위주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늘 까다로운 문제다.我已经六岁 走在田野里 여섯 살, 들판을 걷다가一个不小心 扑倒在水里 걸..
-
연희동 어귀에서주제 없는 글/印 2026. 9. 6. 07:53
영화는 꽤 보는데 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다. 뭘 보든 집중해서 보다보니, 대개 한 편 안에서 완결이 되는 영화를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연속 기획이라 하더라도 시사나 다큐멘터리처럼 매 에피소드마다 메시지가 명확한 걸 보는 편이다. 그럼에도 요새 뒤늦게 주행 중인 처럼 한 해에 한 편 정도는 푹 빠져서 드라마를 보는데, 작년에는 도 그런 경우였다. 이곳저곳 사진 찍으러 한산한 동네를 찾아 다니는 걸 좋아하다보니, 영화나 드라마 속 어떤 장면을 보다가 언젠가 내가 가본 적이 있던 길어귀나 동네 가게를 발견하면 반가울 때가 있다. 화면 속에서야 정취가 있지만 남들은 혹시 알아차렸을까 싶을 만큼 눈에 띄지 않는 곳들이다. 반대로 때때로 장면 속 어떤 장소가 깊은 인상을 남겨, ..
-
Le troisième jour. 끼워넣는 일기 IIHuit jours à Tolouse 2026. 9. 5. 12:53
저녁 식사를 하고 B의 가족과 함께 소파 주위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인공지능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나눈다. 오랜 기간 번역 일을 해왔던 B는 번역 분야가 자신이 한창 일하던 때와 달리 인공지능의 영향을 심대하게 받고 있으며, 번역가들의 일자리가 앞으로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D 또한 아무리 대면 업무가 많다고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이 분명 있다고 덧붙인다. 디지털화된 사회 영역이 우리나라보다 적은 프랑스에서 인공지능에 관하여 위기 의식을 공유한다는 게 신기했다. 법정에 제출할 변론, 자기소개서, 자료 리서치 등등 논리적 구조를 필요로 하는 문서 영역에까지 인공지능이 역할을 넓히고 있다. 건축도면, 통계모형, 프로그래..
-
Le troisième jour. 끼워넣는 일기 IHuit jours à Tolouse 2026. 8. 28. 17:47
도저히 시간의 아귀가 맞지 않아서 이 기억의 퍼즐조각이 어디서부터 헝클어진 걸까 생각해보면 미흐푸아(Mirepoix)로 떠나기 전날밤부터 시계가 고장났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체류에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이번 여행기에서 시간의 순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시간을 이틀 쯤 되돌려 B의 가족과 함께 했던 저녁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려 한다. 어차피 시간은 상대적인 것. 그러니까 B와 호아킨 소로야의 전시를 보고 에키롤(Esquirol) 역에서 지하철을 탄 우리는 저녁 시간보다 조금 일찍 집에 돌아왔다. 비로 인해 계획했던 일정이 틀어진 이날은, B의 초대로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B의 조카와 딸, 딸이 만나고 있는 남자가 모이는 자리라고 전달받았는데,..
-
별의 시간(A hora da estrela)일상/book 2026. 8. 24. 08:41
생각은 행위다. 느낌은 사실이다. 이 둘을 합치면 내가 된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을 쓰고 있는 사람. 신은 세상이다. 진실은 언제나 내적이며 설명할 수 없는 접촉이다. ―p.18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더 예민하게 만들 것이며, 또한 모든 하루가 죽음으로부터 훔친 하루라는 걸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p.26 삶은 그런 것: 버튼만 누르면 삶에 불이 환하게 들어온다. 다만 그녀는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몰랐다. ―p.48 ......그녀는 삶에서 너무 많은 즐거움을 누리면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