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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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론일상/book 2025. 2. 25. 05:52
…현대 사진은 우리의 시지각을 크게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테크놀로지 시대의 인간 상황에 적응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의 두드러진 특질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자연 이미지에 일정한 틀을 제공해온 우리의 시점이 상대성을 띠게 되었다는 사시이다. 아주 단순하게 물리적 의미에서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아주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안정적인 인상 대신 변화하는 인상들의 연속이 지배적인 경험이 되었다. 지상의 풍경을 조감하는 일도 상당히 일반화되었다. 명백히 확인 가능한 외양으로 고정되어 있는 대상은 단 하나도 없다.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도 같은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우리는 믿음, 이념, 문화의 형태로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복합적 가치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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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것도 아닌 살, 삶일상/film 2025. 2. 24. 13:39
를 재밌게 본 뒤, 라는 영화를 추천받았다. 주로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고 앞의 두 영화와는 취향이 거리가 먼 사람으로부터였다. 아마 시놉시스만 보고 두 영화가 비슷한 주제의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역시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 봤을 때 영화가 다루는 소재―은퇴를 앞두고 과거의 인기를 회상하는 여배우―에 큰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성 상품화’라는 문제는 여전히 시의성 있고 충분히 공론화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하는데, 가장 크게 느꼈던 아쉬움은 평면적인 서사에 관한 부분이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젊고 예쁜 여성’과 ‘나이들고 매력 없는 여성’으로 외양이 바뀐다는 설정 자체는 기발하기도 하고, 그런 기발한 서사를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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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존재일상/music 2025. 2. 23. 23:15
관심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내가 온 별에선 연락이 온지 너무 오래되었지.아무도 찾지 않고 어떤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을 바라며살아온 내가 어느 날 속삭였지. 나도 모르게."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그대의 별에선 연락이 온 지 너무 오래되었지.너는 내가 흘린 만큼의 눈물나는 니가 웃은 만큼의 웃음무슨 서운하긴, 다 길 따라 가기 마련이지만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나는 바랬지.나에게 넌 너무나 먼 길너에게 난 스며든 빛이곳에서 우린 연락도 없는 곳을 바라보았지."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평범한 신분으로 여기 보내져보통의 존재로 살아온 지도 이젠 오래되었지.그동안 길 따라 다니며 만난 많은 사람들다가와 내게 손 내밀어 주었지. 나를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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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무디고 가녀린일상/film 2025. 2. 5. 11:27
해마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들은 챙겨보려 노력하고 있다. 작년 의 수상소식을 듣고 아주 간단하게 시놉시스를 확인했을 때, 매춘부가 소재라는 사실에서부터 어쩐지 진부함이 느껴졌다. 또 그러한 추측은 영화의 초반 애니와 반야의 관계에서부터 재확인되는 듯했고, 도대체 어떻게 된 또는 될 영화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국인 매춘부와 러시아 올리가르히 간의 만남과 그들이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은, 오히려 미국과 러시아, 두 사회체제의 부끄러운 민낯을 일거에 비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션 베이커 감독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나에게 맞는 영화인 것도 아니고, 몇 년간 수상작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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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차차 시간에 씻겨갈 것이고일상/film 2025. 2. 2. 14:51
"I Love Him, And I Hate Him, And I Want To Be Him." 브로맨스 영화라 하면 어쩐지 이 먼저 떠오르고, 을 기준으로 삼자면 여느 브로맨스 영화든 시시해질 것 같아 이라는 영화는 개봉 때부터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영화를 보러가자는 친구의 제안으로 영화를 관람했는데, 막상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봤다. 인류사와 개인사가 얼키고설킨 영화는 벤지의 거침없는 입담과 데이브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에서 재미가 끊기지 않는다. 일단은 마침 아담 자모이스키의 「폴란드사」를 열독하고 있던 터라 폴란드 지역의 유대인 수탈사를 담은 영화에 부담을 덜 느꼈던 것 같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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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사일상/book 2025. 1. 31. 09:02
폴란드가 유럽의 규범에서 멀어진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유사한 도전과 선택에 부닥쳤던 보헤미아와 다르게 폴란드는 유럽 국가들의 틀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았다. 그 결과로 폴란드는 좀더 후진적 국가로 남게 되었다. 그 대신 폴란드는 더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유지했다. 여러 개의 공국으로 분열되었을 때도 폴란드는 하나의 사회로서는 다른 곳보다 더 단일하고 단결된 상태로 남았다. 그 이유는 폴란드가 혼합적 군주제에 복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지리적으로 프랑스의 상당 부분은 영국 왕의 주권 아래 있었고, 독일 지역들은 프랑스 왕조의 통치 아래, 이탈리아는 노르만, 프랑스, 독일 군사 지도자의 승계 아래 있었다. 폴란드가 정치적 단위로서 살아남은 것을 보장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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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생존법일상/book 2025. 1. 12. 03:21
뒤르켐은 현대 사회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잔혹한 대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낙오자들은 더 이상 불운 탓을 할 수 없으며, 내세에서 구원받으리라는 희망도 품을 수 없었다.—p. 15 우리는 계속해서 웃으라는,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즐겁게 지내라는, 휴일에는 환호성을 지르라는, 살아 있다는 사실에 열광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런 요구가 없어도 이미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현대는 우리가 가진 근본적인 권리인 울적한 권리를, 비생산적일 권리를, 퉁명스러울 권리를, 혼란스러워할 권리를 박탈했다. 행복이 표준 상태여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현대가 우리에게 저지를 핵심적인 부당 행위다.—p. 19 19세기 미술 평론가 존 러스킨은 특정 시대가 무엇을 진정으로 믿고 있는지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