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25 설즈음 영양과 울진
-
월송정(越松亭)여행/2025 설즈음 영양과 울진 2025. 2. 4. 19:17
영양에서 울진으로 넘어온 이튿날, 후포항에는 비가 내렸다. 여인숙의 흐린 창문이 포개져 창밖 풍경은 마치 희미해진 과거의 영상을 보는 듯했다. 밖으로 나섰을 때는 바닷바람으로 날씨가 쌀쌀한데도 눈이 아닌 비가 오는 것이 의아했다. 험상궂은 날씨와 달리 울진의 바다는 잠잠했고, 쾌청한 날씨에 거칠게 파도가 일던 지난 7번 국도 여행이 생각났다. 울진에서는 바다밖에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새하얗던 그 많은 산등성이는 보이지 않았다. 후포항의 모든 건물들은 자석에 달라붙은 철가루처럼 오로지 해안선에 의지해 삐뚤빼뚤 열을 이루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 향한 곳은 월송정. 빠른 길을 버리고 부러 국도를 따라 해안가를 운전한다. 언젠가 삼상사(三上思)에 관한 구절을 들은 ..
-
죽파리(竹波里)여행/2025 설즈음 영양과 울진 2025. 2. 1. 17:46
왜 영양(英陽)이었냐고 묻는다면 그저 목적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목적지가 없어도 어딘가에는 늘 도착해 있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그곳이 영양군, 그 안에서도 수비면, 그 안에서도 죽파리였을 뿐이다. 죽파(竹波),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눈앞에서 대숲이 너울댈 것만 같은 이 마을로 나를 이끈 것은 바로 자작나무 숲이었다. 겨울이 되고 오래 전부터 설경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영양으로 오게 되었을 때 설국을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번 여정에서 나는 안동과 영양, 울진, 영덕을 차례로 들렀는데 이 중 영양에서만 산등성이의 북사면마다 눈이 녹지 않았다. 영양의 둥그런 산머리마다 밀가루를 체로 걸러낸 것처럼 ..
-
이 겨울의 문법여행/2025 설즈음 영양과 울진 2025. 1. 29. 12:17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 먹었던 게 언제부터였던가. ‘쉼표를 찍는다’는 게 무엇인지를 묻는 이에게 말한 적이 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새로운 리듬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내게는 바로 그 쉼표가 필요한 순간이 몇 달 몇 주 이어지고 있었다. 쉼표가 없이 문장을 잇고 또 이어도 꼭 비문(非文)은 아니듯이, 내 일상에 어떤 문법적 오류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쉼표 없는 글쓰기에 맛들린 것처럼 일상은 무탈하게 굴러갔다. 하지만 하나의 문장이 문장답기 위해서는, 재밌는 이야기와 좋은 표현을 욱여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적절한 문장부호를 써서 읽고 말하는 흐름을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알맞는 문장부호를 고르고 위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