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목적지 없던 이번 여행을 합리화할 구실을 마침내 발견했다면, 그건 바로 서석지(瑞石池)가 아니었을까.
서석지를 품은 작은 마을은, 안에서부터 새어나오는 인기척이 부재했다기보다는, 바깥으로부터 일체의 소리가 소거된 것처럼 보였다. 소리가 사라진 세상은 이런 것일까, 소리의 흔적을 찾기 위해 사위를 둘러보아도 한겨울 모락모락 피어오를 법한 굴뚝 연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헐벗은 나뭇가지에도 바람에 나부낄 잎사귀 하나 남아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줄어든 소리의 부피만큼, 차분해진 마음이 내 몸보다도 크게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다. 지구에 도착하기도 전 우주복을 벗어버린 비행사가 된 기분이었다.
소리 없음이 소리의 한 상태(狀態)라면, 나는 그러한 소리를 이미 오래 전부터 접해 왔다. 홀로 남은 텅빈 집에서, 폐관을 앞둔 도서관에서, 점심시간 들뜬 담소와 함께 사람의 그림자가 쓸려나간 사무실에서. 하지만 그런 소리의 진공 상태는 비록 그것이 비어 있는 외양을 하고 있더라도 육중한 것이었다.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육중했고, 생각이 굳어버린다는 점에서 육중했다. 소리 없음의 육중함 속에서 내가 행했던 것은, 그 무게를 견디고 있는 나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는 것이었다. 그 안에서는 어떤 반향(反響)도 발견도 있을 수 없었다.
서석지의 소리 없음은 아늑하게 나를 맞아들였다. 그것이 환대(歡待)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오기만을 기다린 것 같았다. 때는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겨울이어야만 했다. 풀벌레가 수선을 떨어도 안 되었고, 먹이사슬이 빚어내는 소란도 없어야 했다. 아무런 소리가 남아 있지 않았음에도, 동시에 모든 소리는 조율되어 있었다. 이건 뜻밖의 초대(招待)였다. 그리고 겨울 서석지에서 나는 이 공간에 나를 위치짓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소리가 없는 것들을 응시한다. 잔설 위로 지글지글 쏟아지는 저물녘의 햇살, 말라버린 눈물처럼 가지 끝에 달라붙은 고드름, 그 작은 렌즈에 맺힌 햇빛의 상(像). 모든 것은 제자리에서 숨죽인 채, 삶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풍경은 나를 초대하였으되 먼저 말을 걸어오는 법 없이 내 발걸음을 받아들인다. 초대자는 나를 기꺼워 하지도 짐스러워 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듬지를 예리하게 도려낸 뒤 싸라기눈 위로 혈흔처럼 흩어진 햇살을 바라보며, 이 적막을 가로질러 나를 마주보고 선 존재를 향해 방긋 인삿말을 건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