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항, 대진항, 사진항, 축산항, 경정항, 노물항, 대탄항을 차례로 지나 내가 향하는 곳은 이제 경계를 넘어 영덕군 해안가에 붙어 있는 근사한 카페다. 영덕의 시내라 할 수 있는 강구항에는 미처 다다르지 못한 지점이다. 이 카페는 목적지가 아닌 경유지로 가게 될 곳으로, 바다를 옆에 두고 드라이브를 하고픈 나의 바람을 충족시키기에 좋은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위에 나열한 어항(漁港)들을 지나칠 때마다 깔딱고개 같은 작은 언덕들을 넘는다. 바다와 만나는 끝에서 벼랑을 이루는 이 언덕들은 항구와 항구를 구분짓는 자연적 경계가 된다. 언덕을 넘어 내려올 때마다 다음으로 가까워져 오는 어촌 마을의 정감 있는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서부터 끝없이 꼴을 바꾸는 파도와, 아무런 움직임도 드러나지 않는 마을의 고요함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적막한 경로 위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나의 이정표는 안타깝게도 내게 편한 쉼터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단 하나 남은 자리에 간신히 앉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물밀듯 손님이 들어오는 이 카페에서 마음의 평온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바다 곁에 자리한 두어 그루 소나무는 거센 바닷바람과 오후의 햇살을 견뎌내고 있었고, 그런 소나무의 초연함에 위로를 얻으며 커피잔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