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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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것도 아닌 살, 삶일상/film 2025. 2. 24. 13:39
를 재밌게 본 뒤, 라는 영화를 추천받았다. 주로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고 앞의 두 영화와는 취향이 거리가 먼 사람으로부터였다. 아마 시놉시스만 보고 두 영화가 비슷한 주제의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역시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 봤을 때 영화가 다루는 소재―은퇴를 앞두고 과거의 인기를 회상하는 여배우―에 큰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성 상품화’라는 문제는 여전히 시의성 있고 충분히 공론화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하는데, 가장 크게 느꼈던 아쉬움은 평면적인 서사에 관한 부분이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젊고 예쁜 여성’과 ‘나이들고 매력 없는 여성’으로 외양이 바뀐다는 설정 자체는 기발하기도 하고, 그런 기발한 서사를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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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무디고 가녀린일상/film 2025. 2. 5. 11:27
해마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들은 챙겨보려 노력하고 있다. 작년 의 수상소식을 듣고 아주 간단하게 시놉시스를 확인했을 때, 매춘부가 소재라는 사실에서부터 어쩐지 진부함이 느껴졌다. 또 그러한 추측은 영화의 초반 애니와 반야의 관계에서부터 재확인되는 듯했고, 도대체 어떻게 된 또는 될 영화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국인 매춘부와 러시아 올리가르히 간의 만남과 그들이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은, 오히려 미국과 러시아, 두 사회체제의 부끄러운 민낯을 일거에 비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션 베이커 감독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나에게 맞는 영화인 것도 아니고, 몇 년간 수상작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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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차차 시간에 씻겨갈 것이고일상/film 2025. 2. 2. 14:51
"I Love Him, And I Hate Him, And I Want To Be Him." 브로맨스 영화라 하면 어쩐지 이 먼저 떠오르고, 을 기준으로 삼자면 여느 브로맨스 영화든 시시해질 것 같아 이라는 영화는 개봉 때부터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영화를 보러가자는 친구의 제안으로 영화를 관람했는데, 막상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봤다. 인류사와 개인사가 얼키고설킨 영화는 벤지의 거침없는 입담과 데이브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에서 재미가 끊기지 않는다. 일단은 마침 아담 자모이스키의 「폴란드사」를 열독하고 있던 터라 폴란드 지역의 유대인 수탈사를 담은 영화에 부담을 덜 느꼈던 것 같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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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 like These)일상/film 2025. 1. 11. 11:21
What if it was one of ours? 몇 주째 영화가 보고 싶었던 요즈음 마침내 영화관을 찾았다. 내가 관람한 영화는 . 독특한 서사를 찾아 를 보고 싶기는 했지만 맞는 시간대가 없었던지라, 아무렴 이라도 좋았다. 일단은 영상이 마음에 든다. 프랑크 반 덴 에덴(Frank van den Eeden)이라는 촬영감독이 촬영을 총괄했다고 하는데, 그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내가 본 작품 중에는 2018년에 개봉한 이 있다. 은 공간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는 영화는 아니어서 영상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 아일랜드 남부 웩스포드라는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장소와 인물이 한데 어우러져 멋진 영상을 만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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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일상/film 2024. 12. 28. 11:08
많이 늦은 영화 리뷰, 미망.친구가 광화문을 좋아하는 나에게 추천해준 영화로, 모처럼 동행인이 있던 영화관람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극중 내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자리한 광화문을 맴돌기는 하지만, 첫 장면은 옛 서울극장이 자리한 종로3가 일대에서부터 출발한다. 나중에 서울아트시네마로 이름을 바꾸었던 서울극장의 텅빈 관람석에 대한 아늑한 기억과 함께, 비좁은 골목길 철물점의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서 무심하게 주고 받는 남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계절은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가고, 인물들은 광화문과 종로 사이 어딘가를 배회하고, 누군가를 만났다가 헤어지고, 잊었다가 다시 떠올린다.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迷妄),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未忘), 멀리 넓게 바라보다(彌望),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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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Bande à part)일상/film 2024. 9. 30. 21:50
오랜만에 보는 장 뤽 고다르의 영화. Bande à part. 우리말로 하면 "동떨어진 무리" 정도가 아닐까 싶다. 머리도 식힐 겸 갑자기 영화를 한편 보고 싶던 날, 최신 영화보다는 오래된 흑백영화가 당겼다. 그래서 고른 것이 누벨바그. 장 뤽 고다르의 영화들이 대체로 난해하듯이, 역시 그러하다. 오딜, 프란스, 아르튀르라는 3명의 인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라는 소개는 없지만, 이들은 영어 수업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모종의 협잡을 꾸미기 시작한다. 루브르 박물관을 냅다 달리는 장면이나, 소란스러운 카페에서 1분간 정적을 흘려보내는 장면과 같은 영화적 실험들은 과 관련해 잘 알려진 사실들이지만, 꼭 이런 새로운 노력들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연출과 구성이 뛰어나다고 느꼈다. 불과 25일 간 촬영이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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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탐구일상/film 2024. 9. 24. 11:34
모처럼 프랑스어로 된 영화를 봤다. 퀘벡 영화인지라 억양이 다르기는 하지만 프랑스 감성이 묻어나는 영화다. 영화는 두 남자-취향이 맞는 지적인 남자와 남성적인 면모를 지닌 남자-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소피아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간중간에 플라톤을 비롯해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장켈레비치, 훅스 등 철학가들의 사랑 철학이 언급돼서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눈내리는 주유소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쉘부르의 우산의 마짐가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쥬느비에브와 해후한 기(Guy)가 다시 자신의 가정으로 복귀하는 모습과 실뱅을 떠나기로 한 소피아의 처량한 모습은 다르다. 전자는 옛사랑을 마음에 묻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 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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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담장 하나만큼의 차이일상/film 2024. 9. 9. 19:11
벼르고 별렀던 영화를 결국은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 시청했다. 청각적 구성이 뛰어난 영화를 집에서 스마트모니터로 보자니 아쉬운 감은 있었지만, 시각적 구성 또한 뛰어난 영화여서 그런대로 볼 만했다. 특히 앵글도 보는 재미를 더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수평 앵글이 많이 쓰인 반면, 과장된 수직 앵글 또한 곳곳에 배치되어 지루하지 않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치곤 생각보다 영화제목이 밋밋하다고 느꼈는데, 실제 나치독일이 아우슈비츠와 크라쿠프 일대를 지칭할 때 이익지대(Zone of interest)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강제수용소 외에, 말 그대로 나치독일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여러 산업체가 모여 있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폴란드 땅인 이 지역에 영화 속 대사처럼 '히틀러 총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