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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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일상/film 2024. 12. 28. 11:08
많이 늦은 영화 리뷰, 미망.친구가 광화문을 좋아하는 나에게 추천해준 영화로, 모처럼 동행인이 있던 영화관람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극중 내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자리한 광화문을 맴돌기는 하지만, 첫 장면은 옛 서울극장이 자리한 종로3가 일대에서부터 출발한다. 나중에 서울아트시네마로 이름을 바꾸었던 서울극장의 텅빈 관람석에 대한 아늑한 기억과 함께, 비좁은 골목길 철물점의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서 무심하게 주고 받는 남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계절은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가고, 인물들은 광화문과 종로 사이 어딘가를 배회하고, 누군가를 만났다가 헤어지고, 잊었다가 다시 떠올린다.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迷妄),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未忘), 멀리 넓게 바라보다(彌望),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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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Bande à part)일상/film 2024. 9. 30. 21:50
오랜만에 보는 장 뤽 고다르의 영화. Bande à part. 우리말로 하면 "동떨어진 무리" 정도가 아닐까 싶다. 머리도 식힐 겸 갑자기 영화를 한편 보고 싶던 날, 최신 영화보다는 오래된 흑백영화가 당겼다. 그래서 고른 것이 누벨바그. 장 뤽 고다르의 영화들이 대체로 난해하듯이, 역시 그러하다. 오딜, 프란스, 아르튀르라는 3명의 인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라는 소개는 없지만, 이들은 영어 수업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모종의 협잡을 꾸미기 시작한다. 루브르 박물관을 냅다 달리는 장면이나, 소란스러운 카페에서 1분간 정적을 흘려보내는 장면과 같은 영화적 실험들은 과 관련해 잘 알려진 사실들이지만, 꼭 이런 새로운 노력들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연출과 구성이 뛰어나다고 느꼈다. 불과 25일 간 촬영이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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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탐구일상/film 2024. 9. 24. 11:34
모처럼 프랑스어로 된 영화를 봤다. 퀘벡 영화인지라 억양이 다르기는 하지만 프랑스 감성이 묻어나는 영화다. 영화는 두 남자-취향이 맞는 지적인 남자와 남성적인 면모를 지닌 남자-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소피아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간중간에 플라톤을 비롯해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장켈레비치, 훅스 등 철학가들의 사랑 철학이 언급돼서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눈내리는 주유소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쉘부르의 우산의 마짐가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쥬느비에브와 해후한 기(Guy)가 다시 자신의 가정으로 복귀하는 모습과 실뱅을 떠나기로 한 소피아의 처량한 모습은 다르다. 전자는 옛사랑을 마음에 묻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 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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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담장 하나만큼의 차이일상/film 2024. 9. 9. 19:11
벼르고 별렀던 영화를 결국은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 시청했다. 청각적 구성이 뛰어난 영화를 집에서 스마트모니터로 보자니 아쉬운 감은 있었지만, 시각적 구성 또한 뛰어난 영화여서 그런대로 볼 만했다. 특히 앵글도 보는 재미를 더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수평 앵글이 많이 쓰인 반면, 과장된 수직 앵글 또한 곳곳에 배치되어 지루하지 않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치곤 생각보다 영화제목이 밋밋하다고 느꼈는데, 실제 나치독일이 아우슈비츠와 크라쿠프 일대를 지칭할 때 이익지대(Zone of interest)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강제수용소 외에, 말 그대로 나치독일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여러 산업체가 모여 있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폴란드 땅인 이 지역에 영화 속 대사처럼 '히틀러 총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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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레비(木漏れ日)일상/film 2024. 7. 10. 17:40
「この世界は、 ほんとはたくさんの世界がある。 つながっているように見えても、 つながっていない世界がある」 영화가 당기던 하루는 저녁도 거르고 영화관을 찾았다. 그야말로 즉흥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영화관으로 가더라도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를 정도였다. 내가 고른 영화는 빔 벤더스의 . 하루하루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가는 히라야마의 이야기는 어쩐지 영화 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히라야마가 어떤 경위로 지금의 화장실 청소 일을 하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는 아무나 쉽게 하지 못할 일을 최선을 다해 수행한다. 잠을 깨우는 동네의 빗질 소리, 문을 나서면 눈에 들어오는 하늘, 출근 전 들이키는 자판기 커피 한 잔, 운전할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는 스카이트리, 각양각색의 공중화장실과 청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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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의 해부(Anatomie d'une chute)일상/film 2024. 3. 16. 11:20
MARGE Quand un élément nous manque pour juger de quelque chose, et que ce manque est insupportable, la seule chose qu’on peut faire c’est décider. Pour sortir du doute, on est parfois obligé de décider de basculer d’un côté plutôt que de l’autre. ... Comme t’as besoin de croire à une chose, et qu’il y en a deux... tu dois choisir. "어떤 걸 판단하기 위한 근거가 부족하다면, 그리고 이를 견디기 어렵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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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낙엽을 타고(Kuolleet lehdet)일상/film 2024. 1. 21. 07:15
pannussa homeinen kahvi ja lattialla astiat sade huuhtoo ikkunoita eipä tarvitse niitä itse pestä ei mikään enää lähtemästä estä mut oon kuin betoniin valettu polviin saakka selässä näkymätön tuhatkiIoinen taakka vaik edessä ois enää yksi rasti en tiedä jaksanko hautaan asti olen vankina täällä ikuisesti myös hautausmaata kiertävät aidat kun päättyisi viimein maallinen pesti mut syvempään kui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