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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Панҷакент |제라프샨 강(Дарёи Зарафшон)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6. 27. 20:10
*두 시간 흥정 끝에 원하던 수확도 없이 무턱대고 들어온 판지켄트 시내에서 딱히 구경거리가 없다는 사실은 한번 더 맥빠지는 일이었다. 부산스러웠던 루다키 거리에서 관심을 끄는 대상을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재래시장이 있었지만 딱히 들어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듯한 모스크 역시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앞서 밝힌 것처럼 마치 다른 시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주변을 조심스럽게 시선으로 쓸어담을 뿐이었다.**냉장설비도 없는 정육점을 돌아나올 때 누군가가 내게 알은 체를 했다. 타지키스탄 국경검문소에서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관리자 같던 인상의 아저씨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골 읍내같은 작은 시내에 내 움직임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띄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작정하고 계속 예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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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길레프의 제국일상/book 2025. 6. 26. 11:56
발레의 부상은 전적으로 댜길레프가 주도한 현상이다. 그는 세련된 취향에 약간의 술책과 다양하고 폭넓은 경영 기술을 추가했다. 어떠한 원형이나 전범(典範)도 따르지 않았다. …댜길레프는 어떻게 그 일을 해냈을까? …그는 일단 시류에 편승하면 즉시 고삐를 빼앗아 손에 쥐었다. 또한 일정한 예산이나 이사회도 없이 사업을 하면서 극장 흥행주 역할을 마치 신처럼 수행했다. 그의 천재성은 그야말로 실용적이었다. 필요한 인재를 발견해 불러들이고, 그들을 유능하게 만들고, 과실을 따먹었다. 그의 권위가 없었다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p.18~19 …컬러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으로 대중적인 루트가 열리기 이전 시대에 댜길레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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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달주제 없는 글/印 2025. 6. 25. 02:45
장마철로 접어들기 전에 오랫동안 벼르고 별러온 '서울달'을 타러 갔다. 저녁 비예보는 있었지만,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비교적 맑은 날이었고, 해가 넘어갈 무렵 여의도 일대로 시계(視界)가 충분히 트였다. 생긴지 반년 정도 되었을까, 사진을 찍기 위해 한번쯤 타보고 싶어 이 새로운 명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을 때, 이 기구가 열기구가 아닌 계류식 헬륨기구라는 사실까지 알아두었다. 아쉽게도 이날 카메라를 챙겨갔음에도 항공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남길 수밖에 없었지만, 기구 위에서 홍콩에서 온 커플에게 국회의사당과 명동의 방향을 설명해주던 소소한 재미와 멀리 수증기의 짓눌린 북한산 아래 펼쳐진 한여름의 서울을 내다보는 시원함이 있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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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Панҷакент |루다키 거리(хиёбони Рӯдакӣ)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6. 24. 13:47
* 처음부터 승산이라곤 없는 흥정이었다. 800 소모니, 한화로 1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 국경을 넘어간 곳에서 벌떼처럼 내게 접근한 택시기사들이 제시한 금액이다. 타지키스탄 측 경비소를 지나 바리케이드까지 넘었을 때, 타지크인들 일고여덟 명이 내게 맹렬히 달려들었다. 몇은 혼자서 영업을 하는 듯했고, 또 몇몇은 둘 쯤 짝을 이뤄서 호객 행위를 하는 듯 했다. 상당히 험상궂은 인상의 기사들에게 에워싸이고도 별다른 위험을 느끼지 못한 것은, 나의 대담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엎어진 물을 되담을 수 없다는 현실 감각에서였다. 수중에 700 소모니를 들고 있던 나는, 아니 정확하게는 700 소모니를 들고 있는 줄로 알고 있던 나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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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화에 대하여(On Weathering)일상/book 2025. 6. 23. 09:58
부재의 수가 증가하면 부재의 연결지점도 많아지고 통합적인 구조보다는 병렬적인 접합부가 늘어난다. …접합부가 늘어나자 자연의 영향을 직접 받는 건물 부위도 많아졌다. ―p.22 …더 많은 선택 가능성을 보장해야 할 대량생산 시스템이 실제로는 틀에 박힌 선택으로 이끌었다… ―p. …창조 행위란 건축가와 시공자가 자연의 힘을 예측하면서 작업하는 가운데 생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건물 표면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대비는 건물 외관에 영구적으로 새겨지는 음영을 만든다. 빛과 어둠의 대비는 또한 뚜렷한 것과 모호한 것의 대립이며 실제와 가상 사이의 긴장이다. ―p.65 역설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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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Samarqand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6. 22. 05:52
* 마침 길 건너에 공회전 중인 택시가 있었다. 20만 숨, 한화 2만 원. 영어라곤 단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이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휴대폰으로 숫자를 두드려 흥정한다. 운전 내내 질펀하게 수다를 떨던 아저씨는 이따금 내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내게 왜 여행을 혼자 왔냐고 묻는 말은 어떻게 해서 알아들었는지 아직도 모를 일. 사마르칸트 시내를 빠져나오면서 점차 전원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여전이 우즈베크 양식 특유의 커다란 가옥과,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염소며 양떼들, 등굣길에 나선 아이들의 모습이 차창밖으로 스쳐 간다. 에어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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