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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Samarqand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6. 2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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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길 건너에 공회전 중인 택시가 있었다. 20만 숨, 한화 2만 원. 영어라곤 단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이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휴대폰으로 숫자를 두드려 흥정한다. 운전 내내 질펀하게 수다를 떨던 아저씨는 이따금 내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내게 왜 여행을 혼자 왔냐고 묻는 말은 어떻게 해서 알아들었는지 아직도 모를 일.
사마르칸트 시내를 빠져나오면서 점차 전원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여전이 우즈베크 양식 특유의 커다란 가옥과,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염소며 양떼들, 등굣길에 나선 아이들의 모습이 차창밖으로 스쳐 간다.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 차 안에서 나는 창문을 열고 맞바람을 주저하지 않았다. 도심에서 교외로 빠져나올수록 도시의 풍경은 단조로워지거나 침침해지되, 사마르칸트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길은 그런 변화를 감지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도시 바깥의 풍경이 오히려 더 지구 같다.**
자르테파(Jartepa) 경비소에서는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국경을 통제하고 있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길 위의 ATM기에서 한 번 더 현금 인출을 시도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경비소 앞에는 아무것도 입점돼 있지 않은 채 은행이라는 새 간판만 달고 있는 빈 부스와 우즈베키스탄 측의 경비소 건물이 있었다. 그 앞으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휴게소 쪽에 몰려 있다.
대부분은 타지키스탄에서 건너온 여행객으로 사마르칸트로 갈 때 카셰어를 하기 위해 즉석에서 인원을 모은 사람들이다. 반면 타지키스탄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타지키스탄 현지인으로 보인다. 짐꾸러미가 한가득인 것으로 보아 사마르칸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한꺼번에 사가는 모양이다. 실제로 사마르칸트 시 외곽에는 우리나라 대우에서 만든 다마스 차량이 굉장히 흔하다. 아마도 이런 식의 왕래가 흔한 듯,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아무 기대가 없는 표정으로 비좁은 다마스에 몸을 욱여넣은 채 도로의 요철에 따라 맥없이 흔들린다. 그에 비해 20만 숨에 흥정한 나의 택시 이동은 참으로 사치스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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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용기였을까, 나는 휴게소 아래 이제 막 타지키스탄에서 건너온 배낭여행객들에게 택시를 타고 타지키스탄의 7개 호수를 둘러보려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 물었다. 배낭여행객은 배낭여행객을 알아보고 서로에게 친절을 베푼다. 한 프랑스사람과 이란사람을 통해 대략적인 비용(70만 숨, 한화 7만 원)을 확인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내게 최대한 정보를 확인해준 이란사람이었다. 50대 쯤 되어 보이는 이 이란 남자는 영어가 유창했고, 페르시아어로 우즈베키스탄 또는 타지키스탄 사람들과 상당 수준 소통이 되는 듯, 내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7개의 호수를 보고 온 뒤, 국경수비대에서 사마르칸트로 되돌아오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까지. 길 위에서 잠시 만난 프랑스 청년과 이란 아저씨는 타지키스탄에서 넘어와 이제 사마르칸트로 향하는 나와는 반대의 동선이다. 그 두 사람에게 안녕을 건넬 때 뒷목으로 전달되는 아쉬움.****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지키스탄으로 이동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특히 비자를 면제해주는 나라가 많은 대한민국 여권 덕에 한결 수월했다. 중간에 경비소 내부의 환전소에서 우즈베키스탄 숨을 타지키스탄 소모니로 환전했다. 우리나라 돈에서 우즈베키스탄 숨으로 환산하는 건 단지 10으로 나누면 끝이었지만, 타지키스탄 소모니로 한번 더 환전을 하면서 암산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국경수비대의 타지키스탄 쪽으로 넘어간다. 이제 흥정을 마칠 준비가 되었을까? 이 무모한 여정은 사마르칸트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탈 때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용을 써서 국경까지 온 이 여정에서 나는 목적 달성이 불발될 거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예감했다. 뙤약볕을 피하기도 어려운 타지키스탄 쪽 국경에서 내가 마주해야 할 것은 밑천을 훤히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는 지리한 흥정이었다.'여행 > 2025 우즈베키스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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