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23 봄비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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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세 번째 안동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26. 18:22
이틀 간의 짧은 일정으로 안동을 다녀온 뒤, 그러고도 몇 주 지나 한 번 더 안동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지난 번 일정보다도 더 짧아서, 동해안을 쓱 훑어보는 김에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안동을 들렀다. 안동은 이렇게 해서 세 번째 방문인데도 아직 못 가본 곳이 있었다. 바로 월영교였는데, 나는 노을이 지는 시간에 맞춰 월영교를 찾았다. 월영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책교로, 워낙 오래된 유적지들이 많은 안동 안에서는 아주 근래(2000년대)에 조성된 곳이다. 밤이 되면 달빛이 밝아 달골이라고 불렸다는 이 일대의 설화에 영감을 얻어 달빛이 비춘다는 의미의 '월영교'라는 이름이 공모에 부쳐졌고, 안동시민들의 채택으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는 글귀가 있다. 아침까지만 해도 희뿌옇던 날씨는 오후가 됨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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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차전놀이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22. 08:52
하회마을에서 다시 안동으로 돌아온 후에는 옥야국밥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야 국밥을 좋아하지만 일본사람인 히데가 국밥을 좋아할지 알 수 없었는데 본인이 괜찮다고 하기에 국밥집에 들어갔다. 히데는 식사를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남은 반찬을 다 먹어도 되는지 물어가면서 먹을 만큼 게걸스럽게 식사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안동중앙시장을 구경했다. 다만 문제는 그런 기억들을 담았던 필름이 카메라 장착에 문제가 생겨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일 뿐, 휴대폰 사진으로나마 추억이 남아 다행이라는 것일 뿐. 사실 나는 안동 시내에서 열리는 행사를 보러 갈 생각은 없었고, 당초에는 날씨가 괜찮다면 군위의 한 수목원을 가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궂은 하늘은 구김살을 펼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종국에는 히데와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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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하회마을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6. 22:03
비내리는 하회마을에는 제법 사람들이 있었다. 두 번째 하회마을 방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지난 번 여행에서 들르지 못한 부용대를 들렀다는 것이다. 지난 번 뚜벅이 여행을 할 때에는 호우로 인해 배다리가 유실되어 부용대 쪽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이번에도 여전히 배다리는 없었지만, 그 대신 차가 있었기 때문에 하회마을을 빠져나와 부용대에 자리한 화천서원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회마을에 두 번째로 왔다고 해서 새로이 볼 게 없던 건 아니었다. 일단은 안동시 전체가 비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축제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하회마을에서도 소소한 놀이거리가 제공되고 있었다. 나와 히데는 마을 안에 마련된 공간에서 붓글씨를 써보기도 하고 절구를 찧어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서예를 할 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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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일본인 친구를 사귀다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5. 11:33
안동에서 히데(秀)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묵던 게스트하우스는 유난히 외국인이 많아서 체코나 스코틀랜드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시간에 우연하게 우리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과 주방에서 간단히 인사를 했는데, 알고보니 나가노에서 온 히데토시(秀俊)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가 한국인이라 생각했고, 고등학생에서 갓 대학생이 된 정도의 나이대로 보았다. 그래서 공용공간에서 식사를 하며 ‘혼자 여행오셨냐’고 한국어로 간단히 묻자 그가 우물쭈물 대며 한국어가 안 된다는 제스쳐를 취했을 때, 얘기를 나눠보니 일본인이고 나보다 한 살 아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깜짝 놀랐던 것이다. 우리는 곧 동행인이 되어 아홉 시 반쯤 하회마을에 가기로 했다. 안동은 차가 없이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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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월송정(越松亭)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3. 05:15
만휴정에 이어 내가 향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월송정(越松亭)이다. 월송정에 대해서는 많은 부연이 필요하지 않다. 싱그러운 소나무와 바다가 있는 곳. 그리고 그 완충지대에 봉긋 솟아오른 둔덕, 둔덕의 곡선을 어지럽히는 첨예한 정자. 비가 내리는 월송정을 가보고 싶었고 나는 당진영덕고속도로를 달려 그곳에 도착했다. 불과 5개월 전쯤 이곳을 찾았기 때문에 기억 속 낯익은 진입로와 주차장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사철 푸른 소나무가 펼쳐진 이곳의 풍경이 겨울과 크게 달라졌을 건 없다. 겨울에도 그랬듯이 이곳의 금강송들은 싱그러운 붉은 몸통 위로 진녹의 침엽을 하늘로 뻗어올리고 있었다. 먹구름을 떠받치는 덩치 큰 소나무들을 올려다보면 좀전까지 진녹의 빛깔을 띄었던 잎사귀들은 이내 빛을 등진 시커먼 응달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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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만휴정(晩休亭)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1. 00:52
빗길 운전은 긴장되는 일이어서 안동으로 들어온 뒤에 지난 여행에서 자주 찾았던 카페로 향했다. 카페로 가는 길에 보니 불과 3년 사이에 안동역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안동역의 위치가 옮겨졌다는 것이다. 청량리발 KTX역이 신설되면서 구 역사는 문화플랫폼으로 변모해 있었다. 지난 여행에서 안동행 완행 열차를 탔던 걸 떠올리며 조금 아연했다. 다른 한편으로 모디684라는 이름—‘모디’는 경북 방언으로 ‘다함께’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으로 탈바꿈한 옛 안동역 광장 앞으로는 라는 타이틀로 행사가 크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나중에 히데(秀)와 차전놀이를 구경하게 된다. 카페를 입장했을 때 나는 냄새로 이 공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아기자기한 다육식물과 화초,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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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안동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0. 20:44
안동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내내 비가 내렸다. 터널 하나를 통과하면 빗줄기가 약해졌다가, 다른 터널을 통과하면 빗줄기가 굵어지곤 했다. 터널 하나를 지나면서 과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다음 터널을 지나면 아무래도 이번 여행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번갈아 들곤 했다. 국내에서도 아직 가보지 않은 지역이 많기 때문에 한번 간 적이 있는 여행지는 잘 가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안동을 다시 찾게 된 건 그냥 이전의 기억이 좋았기 때문이라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20년도 장마철 5일간 머무르면서 들렀던 카페, 보았던 풍경들이 모두 좋았다. 빗길을 운전하면서도 날씨와 상관 없이 안동에 잘 쉬었다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바로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최근 경상남도 지역에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