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히데(秀)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묵던 게스트하우스는 유난히 외국인이 많아서 체코나 스코틀랜드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시간에 우연하게 우리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과 주방에서 간단히 인사를 했는데, 알고보니 나가노에서 온 히데토시(秀俊)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가 한국인이라 생각했고, 고등학생에서 갓 대학생이 된 정도의 나이대로 보았다. 그래서 공용공간에서 식사를 하며 ‘혼자 여행오셨냐’고 한국어로 간단히 묻자 그가 우물쭈물 대며 한국어가 안 된다는 제스쳐를 취했을 때, 얘기를 나눠보니 일본인이고 나보다 한 살 아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깜짝 놀랐던 것이다.
우리는 곧 동행인이 되어 아홉 시 반쯤 하회마을에 가기로 했다. 안동은 차가 없이는 여행하기 힘든 지역들이 많고, 나는 하회마을을 한 번 여행한 적이 있지만 한 번 더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버지의 낡은 차가 길을 이끌어줄 것이다.
히데와의 여행은 즐거웠다. 차 안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서로 하고 있는 일, 사는 곳에 대해서 얘기했다. 특히 일본 남성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군대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여서, 뜻하지 않게 한국의 군대에 대해서 살면서 처음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게 되었다.
히데는 나가노에서 내과 의사로 일을 하고 있어서 이번 골든위크에 불과 이틀의 연휴를 이용해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직업 특성상 일요일에도 일할 때가 많은 히데는 한국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한국을 찾은 것만 해도 여러 번이라고 하는데, 안동은 이번에 전통축제를 보기 위해 들렀다고 했다. 의사로 일한지도 벌써 8년차라고 하니 군대를 다녀오지 않는 나라의 청년들은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직장 경력이 길다.
히데는 한국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곧잘 군대 얘기로 빠지곤 했다. 군대에 병사들이 차출되는 방식은 어떤지, 가장 힘든 훈련이 무엇이었는지—화생방 훈련이라고 답했다, 이스라엘을 여행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더니 이스라엘과는 징병 제도가 어떻게 다르다고 보는지 자세히 물었다. 그러다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묻곤 하는 식이었고, 나는 말하는 법을 까먹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일본어로 답을 내놓곤 하는 동안 예의 하회마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