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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하회마을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6. 22:03
비내리는 하회마을에는 제법 사람들이 있었다. 두 번째 하회마을 방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지난 번 여행에서 들르지 못한 부용대를 들렀다는 것이다. 지난 번 뚜벅이 여행을 할 때에는 호우로 인해 배다리가 유실되어 부용대 쪽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이번에도 여전히 배다리는 없었지만, 그 대신 차가 있었기 때문에 하회마을을 빠져나와 부용대에 자리한 화천서원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회마을에 두 번째로 왔다고 해서 새로이 볼 게 없던 건 아니었다. 일단은 안동시 전체가 비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축제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하회마을에서도 소소한 놀이거리가 제공되고 있었다. 나와 히데는 마을 안에 마련된 공간에서 붓글씨를 써보기도 하고 절구를 찧어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서예를 할 때는 한문으로 된 내 이름을 보시던 한복 차림의 할아버지가 내게 내 성씨로 된 집성촌이 하회마을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쩌다가 일본사람을 대동하고 다니게 되었냐고 재밌다는 반응이다.
취미로 아이스하키와 트라이애슬론을 한다는 히데는 호리호리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군더더기 없는 외양을 하고 있다. 최대한으로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이를 보시던 예의 할아버지는 일본사람들은 실용적인 경향이 있다고 내게 곁눈질을 하며 말씀하신다. 나는 고작해야 수영을 하는 정도인데, 히데는 자전거와 마라톤까지 한다니 대단하다. 그러다가 히데가 대학시절 스리랑카 친구를 따라 스리랑카에서 풀코스 마라톤을 뛰었다는 이야기에서는 서로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사시사철 덥고 습한 나라까지 가서 한 것이 마라톤이라니, 하면서.
우물가와 교회당까지 나가보고 히데는 내게 저 절벽을 올라가보고 싶다며 부용대를 가리켜보였다. 아마도 히데는 한국에 오는 길에 대략적인 여행 정보를 찾아본 듯, 해보고 싶은 것들을 대충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 나는 화천서원을 내비게이션에 찍고 10분여를 달려 부용대에 도착했다. 그새 히데에게 두 동생이 있다는 것, 의대를 가기 위해 재수했다는 것 등등의 이야기를 한다. 사람 사는 모양이 크게 다르진 않을 텐데, 꼭 같지만도 않은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나는 드디어 하회마을의 본뜻대로 마을을 휘감고 도는 낙동강 줄기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 너머 산줄기에는 비구름이 흩뿌려놓은 물안개들이 산골짜기 사이사이에 틀어앉아, 그 품새가 상쾌하다. 나와 히데는 한동안 말없이 발밑에 펼쳐진 마을의 풍경을 내려다보았고, 반달 모양의 마을 안에 똬리를 튼 동그란 초가지붕과 날렵한 기와지붕을 번갈아가며 시선에 담았다. 마침내 소실점으로부터 시선을 내려놓은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화천서원으로 내려왔다.'여행 > 2023 봄비 안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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