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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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Панҷакент |제라프샨 강(Дарёи Зарафшон)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6. 27. 20:10
*두 시간 흥정 끝에 원하던 수확도 없이 무턱대고 들어온 판지켄트 시내에서 딱히 구경거리가 없다는 사실은 한번 더 맥빠지는 일이었다. 부산스러웠던 루다키 거리에서 관심을 끄는 대상을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재래시장이 있었지만 딱히 들어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듯한 모스크 역시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앞서 밝힌 것처럼 마치 다른 시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주변을 조심스럽게 시선으로 쓸어담을 뿐이었다.**냉장설비도 없는 정육점을 돌아나올 때 누군가가 내게 알은 체를 했다. 타지키스탄 국경검문소에서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관리자 같던 인상의 아저씨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골 읍내같은 작은 시내에 내 움직임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띄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작정하고 계속 예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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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Панҷакент |루다키 거리(хиёбони Рӯдакӣ)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6. 24. 13:47
* 처음부터 승산이라곤 없는 흥정이었다. 800 소모니, 한화로 1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 국경을 넘어간 곳에서 벌떼처럼 내게 접근한 택시기사들이 제시한 금액이다. 타지키스탄 측 경비소를 지나 바리케이드까지 넘었을 때, 타지크인들 일고여덟 명이 내게 맹렬히 달려들었다. 몇은 혼자서 영업을 하는 듯했고, 또 몇몇은 둘 쯤 짝을 이뤄서 호객 행위를 하는 듯 했다. 상당히 험상궂은 인상의 기사들에게 에워싸이고도 별다른 위험을 느끼지 못한 것은, 나의 대담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엎어진 물을 되담을 수 없다는 현실 감각에서였다. 수중에 700 소모니를 들고 있던 나는, 아니 정확하게는 700 소모니를 들고 있는 줄로 알고 있던 나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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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Samarqand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6. 22. 05:52
* 마침 길 건너에 공회전 중인 택시가 있었다. 20만 숨, 한화 2만 원. 영어라곤 단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이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휴대폰으로 숫자를 두드려 흥정한다. 운전 내내 질펀하게 수다를 떨던 아저씨는 이따금 내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내게 왜 여행을 혼자 왔냐고 묻는 말은 어떻게 해서 알아들었는지 아직도 모를 일. 사마르칸트 시내를 빠져나오면서 점차 전원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여전이 우즈베크 양식 특유의 커다란 가옥과,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염소며 양떼들, 등굣길에 나선 아이들의 모습이 차창밖으로 스쳐 간다. 에어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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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II. 두 명의 알리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6. 19. 15:56
* 알리의 게스트하우스. 내가 묵은 이 숙소는 이름 그대로 알리라는 집주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간밤 레기스탄에 도착한 시간이 이미 저녁 여덟 시를 훌쩍 넘겼고, 레기스탄의 야간 조명쇼를 구경하느라 체크인 시간은 그보다도 더 늦어졌다. 알리의 집으로 가는 물라칸도르프 골목에서는 꼬마 아이 몇몇이 야밤의 공놀이를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노란 널빤지에 라틴 알파벳이 적힌 알리의 숙소명은 숨겨진 위치에도 불구하고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대문 문지방을 넘으면 바로 왼쪽으로 숙소 주인의 생활공간인 2층 주택이 있고, 허리 높이만큼 단차가 있는 널찍한 공간을 마당처럼 활용하는 듯 화분에 담긴 식물을 여럿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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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Samarqand |물라칸도프 길(Mullakandov ko'chasi)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6. 17. 15:52
* 사마르칸트 역에서 나는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택시를 잡았다. 사마르칸트에는 두 개의 노면 전차(streetcar) 노선이 있다. 마침 역 앞에 전차 한 대가 정차해 있었는데 승객이 꽤 찬 걸로 보아 곧 출차를 앞둔 것 같았다. 전차에 오르기 전 확인을 받아두고자 기사 아저씨에게 “레기스탄?”하고 물으니 영 반응이 시원찮다. 전차 뒤쪽 자리에 앉아 나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손주의 등을 민다. 소년은 전차의 전차의 뒷문으로 몸을 빼고 다른 노선을 타라고 유창한 영어로 일러 주었다. 그럼에도 다른 노선의 전차는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 내 숙소가 있는 곳은 레기스탄에 인접한 물라칸도르프 길. 내가 레기스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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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Buxoro |시토라이 모히호사(Sitorai Mohi Xosa)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5. 28. 22:51
* 이날의 아침식사를 빼고 여행 3일차를 이야기하는 것은 숙소 주인 내외 분께 서운한 일이 될 것 같다. 그에 비해 사토라이 모히 호사(Satorai Mohi Xosa)에서의 여정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여행 3일차 정오를 넘긴 시각까지 소화한 여정은 앞서 밝힌 것처럼 매우 난삽했던 바, 이렇게나 퍼져 있는 경로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숙소에서 출발해야만 했다. 오전 아홉 시 경 리셉션이 있는 공용 홀로 내려갔더니 한창 주인 아저씨가 음식을 내어오는 중이셨다. 나는 전날 서둘러 출발할 일정임을 예고해두었던 상황이라, 내 테이블은 완비된 상태에 가까웠다. 여러 종류의 삼사(somsa)와 붉은 체리와 딸기, 새하얀 오디, 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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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Buxoro |마드라사(Madrasalar)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5. 26. 08:07
* 마드라사(madrasah, madrasasi)는 이곳에서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명칭이다. 구시가지에서는 어쩌면 사원을 가리키는 마스지드(masjid)보다 흔한지도 모르겠다. 마드라사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원(書院) 또는 서당 정도 되는 교육기관을 말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근대화 이전의 교육기관을 뜻하지만, 마드라사는 오늘날까지도 신학을 가르치는 교육제도의 하나로 포섭되었다. 기본적으로 마드라사라 함은 학생의 기초적인 소양이나 또는 법률과 같은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학교 일반을 통칭한다. 즉 반드시 이슬람 율법을 가르치는 곳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미나레트와 모스크가 없다는 점을 빼면 마스지드와 마드라사 사이에 건축 상 큰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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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Buxoro |하우지나브 거리(Xavzi Nav ko'chasi)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5. 25. 10:49
* 이곳에 머물면서 느끼는 인지적 혼란은 이들이 쓰는 ‘글자’에서 비롯된 게 분명하다.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의 글자가 ‘상당히’ 다르다는 건 알았다. 그러니까 이들이 키릴 문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문제는 이들이 키릴 문자만 쓰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공식적으로 오늘날 우즈베크어는 라틴 알파벳 표기를 따른다. 여전히 키릴 문자가 더 많이 쓰이고는 있지만, 라틴 알파벳이 자주 눈에 띄는 이유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기는 문제. 우즈베크어를 키릴 문자로도 적고 라틴 알파벳으로도 적는다는 것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를 키릴 문자로 적고 영어를 라틴 알파벳으로 적는 데서 오는 극심한 혼란이다. 키릴 문자를 전혀 읽을 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