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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Buxoro |시토라이 모히호사(Sitorai Mohi Xosa)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5. 2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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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아침식사를 빼고 여행 3일차를 이야기하는 것은 숙소 주인 내외 분께 서운한 일이 될 것 같다. 그에 비해 사토라이 모히 호사(Satorai Mohi Xosa)에서의 여정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여행 3일차 정오를 넘긴 시각까지 소화한 여정은 앞서 밝힌 것처럼 매우 난삽했던 바, 이렇게나 퍼져 있는 경로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숙소에서 출발해야만 했다.
오전 아홉 시 경 리셉션이 있는 공용 홀로 내려갔더니 한창 주인 아저씨가 음식을 내어오는 중이셨다. 나는 전날 서둘러 출발할 일정임을 예고해두었던 상황이라, 내 테이블은 완비된 상태에 가까웠다. 여러 종류의 삼사(somsa)와 붉은 체리와 딸기, 새하얀 오디, 염소치즈, 반숙된 계란후라이가 놓여져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점이었다. 그 이후에도 몇 가지 음식을 더 내어오셨는데, 내 숙박비가 터무니 없이 저렴하다 싶을 만큼 훌륭한 아침식사였다.
아저씨는 엄격하면서도 인자한 인상을 지니신 분이었고, 두건을 이마 위에 동여매고 옆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생계에 치인 듯한 차분함이 있었다. 공용 홀에는 네 개 정도의 원탁이 있었는데, 테이블보는 우즈베키스탄 고유 문양인 이캇(Ikat)이 들어가 있었다. 식사하는 동안 우즈베키스탄 가족 3인이 공용홀로 내려와 옆테이블에서 아침식사와 함께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두 분이 성의 껏 준비한 아침을 먹고, 시선을 맞추며 목례하는 이들 가족에게 맞인사를 했다.**
든든한 아침 식사 후 2시경이 되어 숙소로 돌아와 맡겨두었던 배낭을 짊어지고, 이제는 부하라를 완파하겠다는 일념으로 시토라이 모히호사에 가려 한다. 그런데 숙소의 키 작은 소녀는 내게 무슨 생각으로 5분이면 충분히 이 여름별장을 둘러볼 수 있다고 한 것일까. 더 정확한 원인을 찾자면, 나는 무슨 생각으로 5분 안에 여름별장을 둘러볼 수 있다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걸까. 애당초 5분 안에 둘러볼 수 있는 여행지라는 게 따로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부하라에 도착한 날 택시기사가 나를 내려주었던 작은 로터리에서 이번에는 부하라 역으로 향하는 택시를 잡았다. 여차저차 최종목적지인 부하라 역으로 곧장 향하기 전에 시토라이 모히호사를 둘러보고 싶다는 점을 설명한다. 어리고 준수한 청년은 그러마 하고 나를 태우고 출발한다. 연식이 한참 지난 차들을 주로 모는 이곳의 택시와 달리, 이 친구의 차는 신식 쉐보레에다 룸미러에는 아예 후방카메라가 표시되도록 디스플레이를 설치했다.
스무 살도 안 되었을 게 분명한 이 청년은 멋에 신경깨나 쓰는 듯했고, 운전 중 연신 내게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여주며 사마르칸트에서 찍었다는 사진을 보여준다. 자신의 계정을 팔로우해달라는 얘기도 했지만, SNS를 거의 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시가지를 벗어나면서 내 인터넷은 다시 먹통이 되는 바람에 단념했다.***
10분. 나름 유동적으로 관람시간을 정한답시고 내가 예의 청년에게 얘기한 시간이 '10분 뒤'였다. 어른 티를 내고 싶어하는 이 청년은 여유로운 태도로 운전석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애당초 별칭 '여름 별장'으로 불리는 사토라이 모히호사가 어떤 공간인지 알고서 찾은 것도 아니었지만, 들어서자마자 10분만에 둘러보기도 불가능한 공간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이곳의 운전기사들은 차를 험하게 모는 까닭에 여분의 시간이 남아 결과적으로 25분 남짓 이 장소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물리적으로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짧아는 점보다는 빨리 훑어야겠다는 다급한 마음으로 인해, 이곳의 풍경을 눈으로 온전히 담는 일은 불가능했다.
잔디 위의 공작, 화려한 외관과는 달리 듣기에 좋진 않은 공작떼의 울음소리, 화사한 색색의 장미들, 오래된 목조건물들, 그 목조건물의 외관을 수놓은 칠각이며 구각의 문양들,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 네모난 연못, 연못 가장자리에 식수된 오래된 나무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어느 커플, 서쪽으로부터 햇살이 들어오는 회랑, 시간과 함께 조금씩 벗겨진 칠(漆), 어김없이 가판에 진열된 전통 양탄자. 시토라이 모히호사에 대한 인상은 이런 나열 외에는 더 서술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걸 딱 하나만 추려보자면, 이전까지 봐온 석조 건물들과 달리 목조의 비중이 높았다는 점 정도다. 목조에 새겨진 아라베스크는 석조의 그것과는 질감과 색감이 확연히 다르다. 석조건물을 장식하는 타일에 입힌 색감과도 다르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목재의 '질감'이다. 꼬까마냥 알록달록하게 색을 칠한 나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칠이 벗겨지거나 칠이 들려 떨어져 나가기 일보직전이었다. 풍화 작용은 물결처럼 일어 색을 걸친 나무 표면에 찰과상을 내고, 그 상처의 얇은 틈으로 오래된 나무의 어두운 속이 들여다보인다.****
부하라에서 사마르칸트로 가는 열차 또한 취소여석을 예약한 게 특실이었다. 특실이라고는 하나 타슈켄트에서 부하라로 올 때 탔던 열차보다는 차량도 좌석도 퍽 구식이다. 창가석도 아니다. 이날의 난삽한 일정으로 인해 고단한 잠을 청하려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차양이 씌워진 창밖으로 바깥 풍경을 보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결국은 승하차문이 있는 바깥으로 나왔다.
기울어진 전봇대, 완만한 언덕의 단애(斷崖), 소떼, 염소떼, 말떼, 큼지막한 가옥들, 저물어가는 해를 받아 휘황찬란하게 나부끼는 포플러나무, 수로(水路), 미처 지하로 마감하지 못해 지상으로 돌출한 배관과 가스관들. 객실을 오가며 아이스크림과 차를 판매하던 승무원이 나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물건을 팔 땐 표정이 없던 그가 내게 자신의 사진을 남겨 달란다. 이름도 모르고 말도 나눠보지 않은 이 승무원의 손짓과 셔터로 향하는 내 손가락. 그 무언(無言)의 동작 안에는 '만남'이 스며들었다.'여행 > 2025 우즈베키스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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