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의 제목에 부득이 건물 이름이 아닌 ‘길 이름’을 붙이게 된 건, 아주 난삽했던 이날의 동선 때문이다. 심지어 제목 속 도로명이 내가 들렀던 장소들과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 얼추 그 일대를 돌아다녔다는 의미다. 이곳의 지명을 잘 모르는 내가 편의상 취한 기록방법이니 그 기록 역시 난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무리한 기록법을 선택하게 된 것은, 첫째 하루 동안 있었던 긴 여정의 호흡을 끊을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 너무나도 생소하고 이국적이었던 이 나라의 풍경을 지도 속 고유명사에서 다시 한번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이 날의 첫 행선지는 볼로하우즈 사원(Boloi Hovuz masjidi)이었다. 이곳에서 ‘맛지드’라 발음하는 ‘masjid’는 이슬람 사원을 말한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직통열차 안에서 론리 플래닛 중앙아시아 편을 전자책으로 구매했지만, 방대한 분량을 소화하기 힘들어 웬만한 여행정보는 구글맵으로 알아보고 있었다. 명소임을 알리는 보라색 위치핀을 하나씩 살펴보다 시선을 잡아끌었던 것이 이 볼로하우즈 사원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둘러보았던 건축물 중에는 어쩐지 레기스탄이나 칼란 미나렛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물이다.
나는 팔각형의 연못을 사이에 두고, 사원이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맞은편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아침햇살을 흠뻑 머금은 사원의 파사드를 넋놓고 바라보았다. 아침인 탓도 있겠지만 이 아기자기한 건축물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는 사실로 인해 이 건축물이 온전히 내 것이 된 것 같아 마음에 든다. 그리고 내 발 아래 어김없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오디 열매의 낙하음(落下音).
*** 이후 무흐타르 아슈라피 길(Mukhtar Ashrafi)을 따라 차슈마 아유브 영묘(Chashmai Ayyub)에 갔지만, 크게 관심을 끄는 장소는 아니었다. 정오를 향해가며 슬슬 뜨거워지는 햇살이 염려될 뿐이었다. 아유브(Ayyub)는 욥(Job)의 이슬람 표기라 하는데, 성경도 읽어보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여행도 했지만, 성서 속 세계는 여전히 다가가기 어렵다. 이곳이 부하라 내에서 그리 핵심명소는 아닐진대 유럽이나 북미에서 온 단체 관광객이 많아 선뜻 둘러볼 마음도 들지 않았다.
**** 오히려 내 관심을 끌었던 건, 부하라 시장이었다. 공원의 경계를 어른 키만한 흰색 담벼락이 두르고 있었다. 그 담에 내어놓은 작은 쪽문 하나에서 사람들이 연신 드나드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서 쪽문을 나서니 복작복작한 재래시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말 재밌는 광경이었다. 쪽문 바깥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두어 계단 내려서니, 예의 흰 담벼락을 따라 청과물을 파는 할머니, 솜사를 파는 아주머니, 꼭 우리나라 80년대까지 썼을 법한 싸리 빗자루를 파는 할머니가 그늘 아래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알라딘이 활개 편 바자르(bazaar)의 분주한 분위기란 과연 이런 것일까.
그 맞은편은 규모 있는 상점가로 우리나라로 치면 남대문시장과 구조가 같았다. 그곳에서는 향신료와, 차(茶), 주전부리, 피스타치오와 같은 견과류, 고기, 과일, 우즈베크 스타일의 반찬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특히 향신료는 색채가 아주 화려할뿐더러 현지인들이라고 이 많은 향신료를 구별할 수 있을까 싶을만큼 다양했다.
우즈베키스탄 전통 모자인 도프를 단정하게 눌러 쓴 할아버지가 끌차에 족히 두 말은 되어보이는 솜사를 실어나른다. 모퉁이를 도니 젊은 청년 둘이 가정식 반찬을 수북히 쌓아올려 팔고 있다. 용기의 바닥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뿔 형태로 물건을 쌓아올려 그득해 보이게 하는 게 이곳의 장사 기술인가보다. 적어도 이 공간은 웬만한 우리의 명절 대목을 맞은 전통시장 같았다. 인구 30만의 도시에서 체험한 뜻밖의 열띤 숨결은 오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