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는 가로수로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가 흔한 것처럼 이곳에서는 뽕나무가 흔하다. 보행로에 우수수 떨어진 이것이 오디가 맞다면 말이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하양 까망의 이 열매들은 아무리 보아도 내가 한국에서 맛보던 오디가 맞다. 껍질이랄 게 없는 이 작은 열매는 중력에 의해 지면에 닿을 때마다 찰팍, 하고 과즙을 터뜨린다. 뜨거운 햇살 아래 무방비로 노출된 과즙들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액질을 띠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밑창이 찌걱댄다.
**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니, 아이들이 많다. 공차기는 만국공통의 놀이인지, 소리를 지르며 골목에서 공차기를 하는 남자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다만 놀이터가 많은 건 아니어서 아이들이 ‘알아서’ 놀아야 하는 환경이다. 내가 어렸을 때도 저렇게 골목에서 공을 찼느냐 하면, 그런 기억이 많지는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아이들끼리 노는 풍경은 보기란 어렵다는 점이다. 단순히 너희가 우리보다 ‘못 살기’ 때문에 아이들도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좋은 배움과 직업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게 충분히 그럴 법 하다고 하기에는, ‘잘 사는’ 여건에서 성장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고, 더 배려심 있다고 선뜻 답하지 못하겠다.
*** 이곳의 건물, 특히 주택, 그 가운데에서도 개인주택은 크기그 우리나라보다 1.3~1.5배는 큰 것 같다. 타슈켄트를 제외하면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 사는 인구가 많지 않은데, 주로 개인주택의 비율이 높은 중소도시에서 주택이 이렇게 큰 건 의아하다. ‘크다’는 특징은 층고와 현관문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실내를 들어가보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단층집이 불필요하다 싶을만큼 높게 지어지고 일반적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은 또 왜 그렇게 큰지 모르겠다.
건물을 크게 지어서 외관상 화려해 보이게 만들 목적인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창문도 빠꼼히 조그맣게 내어놓고, 외벽도 별다른 장식이랄 게 없이 밋밋하게 흙칠을 해두었을 뿐이다. 그러한 가옥구조가 우즈베키스탄 전통 고유의 양식인지, 아니면 단순함과 기능성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시절의 유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멋없이 덩치만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 이곳에는 타슈켄트를 빼면 슈퍼마켓이 흔치 않다. 그나마 있는 동네 슈퍼마켓도 우리나라에서는 읍면 지역에 있을 법한 정도의 물건만을 구비하고 있다. 그러한 고로 24시간 편의점이 있을 리는 더더욱 만무하다. 한국을 떠나올 때 선크림을 챙기지 않았던지라, 현지에서라도 선크림을 구입할까 생각했지만 스킨케어 제품이 있을 만한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마음만 먹으면 선크림을 구했겠지만 그걸 알아보는 것도 성가시게 느껴져 포기했다.
***** 부하라에 도착한 게 점심을 지난 시간이었기 때문에, 해가 이미 서천으로 넘어갈 때였다. 경험한 바, 이 얘기인즉슨 도시의 서쪽 지역을 둘러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어느 도시를 가든 도시를 위에서 조망할 수 있는 풍경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하라 아르크부터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부하라 아르크는 2018년 이스라엘 여행 중 찾았던 마사다 국립공원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마사다 국립공원의 높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성채 위에 남아 있는 유적의 잔해들은 이스라엘 여행 당시의 황량하고 적적한 느낌이 있었다. 성채 가장자리에서 내려다본 부하라 구시가지는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산화(散華)하듯 빛을 발하고 있었으나, 스텝지역의 어딘가에서 불어온 모래바람 때문인지 노여움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