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날 열차를 놓치고 허탈감에 한동안 생각이 멈춘 나는 보안요원이 일러준대로 일단 매표소 창구에서 그 다음 열차라도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긴 줄에 대기한 끝에 내 차례가 왔지만 영어로는 아주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할 수가 없었다. 두 명의 당직자가 모든 승객을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업무처리는 한없이 더뎠고, 발권 키오스크는 먹통이었다.
세월아 네월아 시간이 가는 상황에서 가장 빠른 열차를 타도 사마르칸트에 도착하면 새벽 3시가 넘는다는 걸 깨닫고, 이 무거운 배낭을 맨 채 계속 이 상태로 있을 순 없겠다는 판단이 섰다. 다만 탑승하지 못한 티켓을 일부나마 환불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했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황에서 더 이상 순번을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결국 이날은 타슈켄트 역의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정했다.
** 그리하여 나는 여행 일정에 큰 변화를 주었다. 애당초 여행 일정이 유동적일 것 같아 여행 1일차만 교통과 숙소를 예약해놓은 차였다. 나는 이번 여정에서 가장 거리가 먼 지역인 부하라(Bukhara)를 사마르칸트에 앞서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여행 간 기간이 러시아의 연휴기간과 겹쳐서 열차표를 구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는데, 운이 좋게도 이른 아침 타슈켄트에서 부하라로 넘어가는 취소표를 구할 수 있었다.
내가 탄 열차는 아프로시압(Afrosiyob)이라 불리는 고속열차가 아니라 샤르크(Sharq)라는 일반 열차의 특실이었다. 고속열차라면 3시간 이내에 도착하는 것을 일반열차인 까닭에 꼬박 6시간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창가석에 앉는 걸 좋아하는지라 내가 예매한 자리는 복도석이었지만 옆자리 사람에게 바꿔줄 수 있는지 부탁하여 창가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자를 조작하는 팔걸이의 디스플레이에서 한자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중국제인 것 같았는데, 안마 기능이 있고 편안했다. 마침내 도착한 부하라 역에서는 두 우즈베크 남성이 우렁찬 카르나이(우즈베키스탄 전통 나팔) 연주로 열차에서 내린 승객을 반겨주었다.
*** 부하라 역에서 내린 뒤 택시를 하나 잡았다. 상당히 심술궂은 인상의 아저씨여서 걱정스러웠지만, 부하라 시내까지 들어가는 데 40,000솜(한화 4,000원)으로 합의를 보았다. 근교에 자리잡은 역사에서 시내까지는 진입하는 길의 상당 부분은 한창 공사중이어서 비포장인 곳들도 많았다. 생계에 시달린 듯 억척스런 아저씨의 얼굴은 햇빛에 짙게 그을려 더욱 고달파 보였다.
나마즈고크(Nomozgokh), 나의 숙소가 자리한 골목의 이름. 나는 이걸 발음할 줄도 몰라 기사에게 몇 번이고 지도로 알파벳을 짚어 보였다. 두꺼운 나무로 된 오래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리셉션의 직원이 인사를 건네 왔고, 방을 안내해주었다. 직원이 도자기에 내어온 뜨거운 차를 마신 후, 오전 내내 이어진 여독을 풀기 위해 목욕을 했다. 미리 일기예보를 통해 더운 날씨를 확인했음에도, 우즈베키스탄의 햇살은 유난히도 따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