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마저 일처럼 느껴졌다. 여권, 현금, 유심 이 세 가지만큼은 잊지 말자 다짐, 얼추 배낭을 싸고 마침내 출국일이 밝았다. 아침부터 고장난 보일러를 고치느라 30분이 훌쩍 지났고, 이쯤 되면 여행을 가지 말라는 일종의 암시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비행기값이야 어떻게 되든 될대로 되라지 생각하며 화를 삭인다.
** 여행일정을 한번 바꾼 탓에 내 자리는 창가석도 복도석도 아닌 중간석으로 임의배정되었다. 발권된 티켓에서 중간석을 의미하는 B라는 알파벳을 보며 속으로 탄식이 나왔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6월초 티켓을 예약한 나는, 뒤늦게 비행기값이 이상하리만치 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확인해보니 5월에 예약한다는 게 같은 날짜로 6월에 예약을 해놓았다. 어쩔 수 없이 일정을 바꾸는 데 드는 거액의 수수료는 감수했지만, 애초에 창가석으로 지정한 내 자리가 중간석으로 바뀌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편에는 한국사람보다는 외국인, 그 중에서도 단연 중앙아시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양 옆으로는 창가석에 나세르존(N)이, 복도석으로 모히누베(M)가 앉아 있었다. N은 나와 같은 나이의 남성이고, M은 나보다 8살 정도 어린 여성이다. N은 김해의 한 가전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 한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반면, M은 한국어를 전혀 모른다고 해도 좋을 정도고 그 대신 영어가 유창해서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다. 영등포의 한 상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듯하다.
우즈베크어로 된 저 이름들은 사실 내 귀에 들리는대로 적었을 뿐 올바르게 적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들과 대화를 트게 된 것도 의도했던 건 아니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서 잠을 청하는데, 양 옆에서 분주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느껴졌다. 목소리가 음악을 비집고 들어왔고, 이들의 신체 거리는 꽤 짧은 모양인지 제스처를 취할 때마다 내 몸에 그들의 몸이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중간석이 탐탁지 않았던 나는 편히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바꾸겠냐고 물었다. 배려에서 나온 말이기도 했지만, 내심 불편함에서 나온 말이기도 했다.
**** 이 둘은 자국에서 사는 도시(안디잔, Andijan)가 같아 대화를 텄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는 건 이때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N은 존댓말은 구사할 수 있었지만 몇몇 발음은 알아듣기가 까다로웠다. 한국인 친구의 소개로 한국에서 일한지 2년이 되어간다는 그는 “취업비자”를 내게 보여주었다. 부산을 좋아한다는 그는, 서울에도 한번 간 적은 있지만 서울은 어쩐지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 표현을 한국말로 하기는 어려우니, 숨쉬기 어렵다는 동작을 익살맞게 취해 보였다. 한국말로 쉼없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그는 나와 동갑인데 자녀가 벌써 셋이다. 막내가 태어날 때 한국에 와 있던지라, 이번에 귀국한 뒤 아기 볼 생각에 설렌다고 했다.
비행시간이 길어질 수록 M과의 대화가 늘어났는데, 이는 내가 N와 한국어로 주고받을 수 있는 소통량에 비해 M과 영어로 주고받을 수 있는 소통량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M은 한국에 온 지는 6년이 되었고, 그녀가 소개한 나이로 미루어 학위를 취득하자마자 한국으로 온 경우였다. 한국에서 결혼한 여동생의 권유로 한국행을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일자리와 사람들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그녀는,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 한국에서 경험한 사회 인프라, 제도 등을 전수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 들떠 있던 N은 M과 대화가 길어질수록 시무룩해지는 낌새였고, 종국에는 내게 우즈베키스탄에 가면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90%라고 귀띔해주었다. 그때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