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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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 그 후(après)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10. 5. 09:33
빅 아일랜드를 코나를 통해 아웃할지 힐로를 통해 아웃할지 고민하다가, 원래 예약했던대로 코나를 통해 아웃하기로 했다. 마우나케아 화산을 방문하는 일정이 하루 밀리면서 대신 코나를 둘러보기로 한 일정을 지우게 되었다. 새들로드, 마우나케아에서의 일정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코나를 둘러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커피농장을 가보기로 한 일정 정도가 사라졌는데, 빅 아일랜드에 머물면서 맛있는 커피를 맛볼 기회는 수시로 있었다. 호의적이지 않은 날씨는 우리 일정에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쳤다. 원래 이날 오아후 섬으로 넘어가서 관람하기로 했던 루아우 공연이 우천 예보로 취소되었다. 오전에도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하기 보다는 가급적 신변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썼다. 힐로에 머물 당시 숙소에서 건조기 안에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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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비(雨)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10. 1. 18:22
엄마는 두 번째 숙소도 참 좋아하셨다. 깨끔하니 통유리창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놓은 오두막의 설계상 어느 위치에 있든지 바깥의 싱그러운 우림이 보였다. 성장속도를 가늠할 수 없는 저 거대한 식물들은 그 속은 성기지 않을까, 물음표를 띄워본다. 숙소 주인이 닭장에 기르는 야생닭은 해뜨기 전부터 울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아침이 되고서야 울음을 멈췄다. 아침부터 비가 오다보니 사우스 포인트까지 오기는 했지만, 늦은 오후에는 돌아가는 길 위에 푸날루우 해안(Punalu’u Beach)을 가보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할레오카네 전망대(Haleokane)에서 북동쪽을 바라보자니, 한눈에 화산 공원 일대에 몰아친 국지성 호우가 보였다. 비가 내리는 곳과 내리지 않는 곳의 경계가 또렷이 보일 만큼, 비가 내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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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점(the point)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29. 14:42
이튿날 날씨가 걱정되어 밤잠을 설쳤던 나흘차, 걱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코나가 자리한 빅 아일랜드의 서부와 달리, 힐로를 중심으로 하는 동부 일대는 기후가 습윤하고 국지적인 호우가 자주 내린다. 나는 이른 아침 실시간 레이더 기상지도를 보면서 광대한 화산 공원 위에 커다란 이불처럼 드리운 빨간 구름띠를 확인했다. 구름띠는 강우량이 높은 지점일수록 짙은 빨강을 띠었다. 이 구름띠는 해안에 이르면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는 희한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화산 공원의 해안가 일대라면 괜찮을까 싶어 아침에 숙소를 나섰지만, 아니나 다를까 내륙의 호우로 인해 해안으로 통하는 진입로가 봉쇄되어 있었다. 우비를 쓰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트레킹을 떠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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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밤(la nuit)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19. 13:17
비포장도로의 끝에 일군의 천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첨단시설들은 너무나 새하얗거나 너무나 차가운 메탈 색깔을 하고 있었다. 인공의 자재들은 여기까지 어떻게 싣고 왔을 것이며, 천체관측장비를 가동할 전기는 어디서 끌어온단 말인가. 일몰시각으로 향하는 태양은 마우나케아의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고, 빛을 받은 능선의 봉긋한 머리는 마치 화성의 크레이터처럼 빨갛게 익었다. 한 젊은 남성이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가 바로 마우이에요! 북쪽의 운해(雲海) 위로 완만하고 거대한 산봉우리가 보였다. 할레아칼레 화산이다. 작년 대화재를 겪었던 마우이 섬의 존재는 하와이에 놀러 여행을 오면서도 영 마음 개운치 않은 짐이었다. 구름과 마찬가지로 뭉게뭉게 피어오른 할레아칼레 화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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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별(les étoiles)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17. 00:51
두 번째 숙소에서 짐을 푼다. 빅 아일랜드의 마운틴뷰에 위치한 우리의 두 번째 숙소는 방갈로였다. 하와이에는 ‘retreat’이라고 해서 조용하게 칩거할 수 있는 공간이 드문드문 곳곳에 퍼져 있다. 첫 번째 숙소가 주택단지에 위치한 가정집이었다면, 두 번째 숙소 역시 주택단지에 있기는 하지만 집과 집 사이의 녹지가 넓고 우거져서 사생활이 완전히 보호되는 공간이었다. 나는 하와이에 오게 된다면 이렇게 완전히 주위과 격리된 공간에서 쉬어보고 싶었다. 화산 공원에서 점심을 먹고 나올 즈음 휘몰아치는 물보라가 점점 거세어지고 있었으니, 마우나케아로 오르는 길이 안전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출발하기 전 미리 방문자센터에 전화해서 마우나케아에 진입할 수 있는 상황인지 확인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유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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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불(le brasier)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15. 10:35
이튿날 우리가 향한 곳은 화산공원으로,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기대하던 곳이다. 부모님은 첫 번째 숙소를 가장 마음에 들어하셨다. 이번 여행에서는 몇 가지 방침같은 것이 있었다. 가령 외식을 줄이기 위해 한국에서 레토르트 음식을 넉넉하게 챙겨가기로 일찌감치 얘기가 되었다. 현지음식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부모님을 위한 배려였다. 마찬가지로 가장 신경썼던 것은 숙소에 관한 부분이었다. 6박이라는 짧은 기간을 삼등분해 2박씩 세 개의 서로 다른 컨셉의 숙소를 예약했다. 첫 번째는 해안절벽에 면한 펜션, 두 번째는 정글 안에 자리한 오두막, 세 번째는 도심의 호텔이었다. 세 숙소는 저마다 일장일단이 있었지만, 부모님은 특히 첫 번째 숙소를 떠나며 퍽 아쉬워 하셨다. 전날 밤, 우리는 하와이에 도착한 이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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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무지개(虹)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11. 17:41
새들(Saddle), 우리말로 하면 '말의 안장(鞍裝)'이라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새들로드는 빅 아일랜드의 큰 쌍봉을 이루는 마우나케아와 마우나로아 사이 움푹한 지대를 관통하는 길다란 차도를 가리킨다. 이날은 와이피오 계곡을 빠져나와 와이메아로 가는 길에 만난 갑작스런 호우와 뒤이어 거짓말처럼 모습을 드러낸 쨍쨍한 햇살로 인해 기억에 남을 순간이 만들어졌다. 새들로드는 마우나케아 전망대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고, 우리의 최종목적지도 처음에는 마우나케아였다. 하지만 와이피오 계곡에 도착했을 즈음, 마우나케아까지 갈 만큼의 시간적 여유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는 새들로드를 드라이브 하면서 숙소로 복귀할 구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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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경계(境界)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10. 18:37
힐로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그래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이 지역의 날씨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와이피오 계곡으로 향하는 길에는 가는 비가 흩뿌렸다 멈추기를 반복했고, 덩달아 와이퍼를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빅 아일랜드의 대부분 도로는 왕복 2차선이다. 어쩌다 도로가 넓어져도 3차선을 넘지 않는다. 때문에 앞차를 추월하는 게 까다롭다. 물론 나는 추월 당하는 편이다. 아직도 마일로 표기된 이곳의 속도 단위가 익숙하지 않다. 우회전 신호를 받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사륜구동을 빌렸기 때문에 오르막길에서 힘있게 앞으로 나간다는 장점을 제외하면, 수동으로 조작해야 하는 여러 편의장치들 또한 불편하게 느껴진다. 도로가 관통하는 우거진 숲과 오른편으로 펼쳐진 태평양이 이따금 내가 전혀 다른 공간에 들어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