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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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일본인 친구를 사귀다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5. 11:33
안동에서 히데(秀)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묵던 게스트하우스는 유난히 외국인이 많아서 체코나 스코틀랜드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시간에 우연하게 우리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과 주방에서 간단히 인사를 했는데, 알고보니 나가노에서 온 히데토시(秀俊)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가 한국인이라 생각했고, 고등학생에서 갓 대학생이 된 정도의 나이대로 보았다. 그래서 공용공간에서 식사를 하며 ‘혼자 여행오셨냐’고 한국어로 간단히 묻자 그가 우물쭈물 대며 한국어가 안 된다는 제스쳐를 취했을 때, 얘기를 나눠보니 일본인이고 나보다 한 살 아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깜짝 놀랐던 것이다. 우리는 곧 동행인이 되어 아홉 시 반쯤 하회마을에 가기로 했다. 안동은 차가 없이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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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월송정(越松亭)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3. 05:15
만휴정에 이어 내가 향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월송정(越松亭)이다. 월송정에 대해서는 많은 부연이 필요하지 않다. 싱그러운 소나무와 바다가 있는 곳. 그리고 그 완충지대에 봉긋 솟아오른 둔덕, 둔덕의 곡선을 어지럽히는 첨예한 정자. 비가 내리는 월송정을 가보고 싶었고 나는 당진영덕고속도로를 달려 그곳에 도착했다. 불과 5개월 전쯤 이곳을 찾았기 때문에 기억 속 낯익은 진입로와 주차장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사철 푸른 소나무가 펼쳐진 이곳의 풍경이 겨울과 크게 달라졌을 건 없다. 겨울에도 그랬듯이 이곳의 금강송들은 싱그러운 붉은 몸통 위로 진녹의 침엽을 하늘로 뻗어올리고 있었다. 먹구름을 떠받치는 덩치 큰 소나무들을 올려다보면 좀전까지 진녹의 빛깔을 띄었던 잎사귀들은 이내 빛을 등진 시커먼 응달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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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만휴정(晩休亭)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1. 00:52
빗길 운전은 긴장되는 일이어서 안동으로 들어온 뒤에 지난 여행에서 자주 찾았던 카페로 향했다. 카페로 가는 길에 보니 불과 3년 사이에 안동역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안동역의 위치가 옮겨졌다는 것이다. 청량리발 KTX역이 신설되면서 구 역사는 문화플랫폼으로 변모해 있었다. 지난 여행에서 안동행 완행 열차를 탔던 걸 떠올리며 조금 아연했다. 다른 한편으로 모디684라는 이름—‘모디’는 경북 방언으로 ‘다함께’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으로 탈바꿈한 옛 안동역 광장 앞으로는 라는 타이틀로 행사가 크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나중에 히데(秀)와 차전놀이를 구경하게 된다. 카페를 입장했을 때 나는 냄새로 이 공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아기자기한 다육식물과 화초,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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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안동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0. 20:44
안동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내내 비가 내렸다. 터널 하나를 통과하면 빗줄기가 약해졌다가, 다른 터널을 통과하면 빗줄기가 굵어지곤 했다. 터널 하나를 지나면서 과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다음 터널을 지나면 아무래도 이번 여행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번갈아 들곤 했다. 국내에서도 아직 가보지 않은 지역이 많기 때문에 한번 간 적이 있는 여행지는 잘 가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안동을 다시 찾게 된 건 그냥 이전의 기억이 좋았기 때문이라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20년도 장마철 5일간 머무르면서 들렀던 카페, 보았던 풍경들이 모두 좋았다. 빗길을 운전하면서도 날씨와 상관 없이 안동에 잘 쉬었다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바로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최근 경상남도 지역에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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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그리니치(Greenwich)여행/2022 영국 런던 2023. 3. 26. 20:33
선착장에 배를 고정시키기 위해 승무원들이 밧줄을 내린다. 이윽고 런던 탑 선착장을 출발한 배는 강변을 잠시 맴돌다가 템즈강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배는 도개교인 타워 브릿지를 지나 동으로 동으로 시원하게 내달린다. 저멀리 신기루처럼 도크랜드의 시원한 고층 빌딩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티 구역보다는 획일적인 건물들이지만, 그 느닷없는 높이만으로도 새로운 런던을 발견한 기분이다. 카나리 워프 선착장에서 승객을 쏟아낸 배는 이제 그리니치(Greenwich) 선착장에 도착했다. 나는 이곳에서 내렸다. 배는 이제 밀레니엄 돔이 있는북 그리니치(North Greenwich) 선착장으로 향할 것이다. 선착장을 빠져나온 다음 그리니치 대학교의 담벼락을 곁에 두고 좁은 길을 걸었다. 어딘가로 이어져 있는 길이지만 그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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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시티(City of London)여행/2022 영국 런던 2023. 3. 21. 18:18
시티(City)라는 말은 파리의 시테(Cité) 섬과 마찬가지로 런던의 본거지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파리와 판이하다. 군데군데 오래된 건물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런던의 시티 구역은 현대적 건물로 빼곡하다. 시티 오브 런던은 전세계 금융업의 첨단을 달리는 곳이다. 이유가 딱히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전에도 런던의 사진을 볼 때마다 가장 들러보고 싶었던 곳은 피카딜리 광장도, 런던 아이도, 빅벤도 아닌 시티였다. 아마도 경쟁적으로 마천루가 즐비한 아시아의 대도시들과는 다른 느낌의 스카이라인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레이트 타워 스트릿(Great Tower Street)을 따라서 시티 구역에 들어갔고 뱅크(Bank) 지하철역까지는 채 미치지 못하는 거리 안에서 시티 일대를 거닐었다. 영국의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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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런던 탑(Tower of London)여행/2022 영국 런던 2023. 3. 20. 02:28
나는 3박 2일의 일정으로 런던에 머물렀다. 체류한 기간이 3박 4일도 아닌 3박 2일이 된 것은 유로스타가 아닌 야간버스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런던 방문이 그러했듯이 나의 런던 여행은 언제나 시간을 다툴 수밖에 없는 인연인가 싶다. 그렇게 해서 둘째 날의 아침 일정은 숙소가 자리한 올드게이트(Aldgate)에서 멀지 않은 런던 탑에서 시작했다. 런던 탑에 가기 위해 내가 하차한 지하철역은 타워힐(Tower Hill) 역이다. 블러디 타워(Bloody Tower), 솔트 타워(Salt Tower)에서 타워 브릿지에 이르기까지 탑이란 탑이 모여 있는 공간이니 만큼 이 지역에는 '타워(Tower)'라는 명칭이 어디든 따라붙는다. 지하철역명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여객선 터미널의 이름도 타워 밀레니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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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여행/2022 영국 런던 2023. 3. 13. 11:33
템즈강을 따라 걷는다. 런던을 관통하는 템즈강은 파리의 센 강보다는 폭이 더 넓다. 둑방이랄 것이 없어 차로 옆 인도를 따라 강을 곁에 두고 걸어나간다. 템즈강은 장마철의 한강처럼 흙탕물에 가까운 색깔을 하고 있었고, 수면으로 건물들의 파사드가 반사될 틈을 주지 않았다. 런던에 도착해서 처음 마주했던 황갈색 빛 건물들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색깔이다. 동시에 묘하게 한강의 스카이라인이 떠올랐다가, 미국식 시장경제 모델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우리나라가 떠오르고,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떠오르고.. 생각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다시 떠오른다. 내가 향하는 곳은 테이트 모던. 한 번쯤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영국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기대대기도 하지만, 옛 화력발전소를 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