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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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강을 따라여행/2024 함박눈 공주 2024. 1. 11. 19:48
공주는 작년 여름 수해를 크게 입은 지역 중 하나다. 수해는 유적지도 빗겨가지 않아서 공산성 역시 물에 잠기는 불상사를 피하지 못했다. 다행히 무령왕릉 매표소에서 확인해보니 공산성도 둘러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서 무령왕릉 다음으로는 공산성을 가보기로 했다. 성(城)의 서문이자 정문인 금서루에 도착하자, 가파른 비탈 아래로 마흔세 개에 달하는 공적비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입구에서 회전교차로 쪽을 바라보면 가운데에는 무령왕의 거대한 동상이 있고, 그 뒤로는 무령왕릉을 닮은 아치형 관문이 서 있다. 원래는 공산정을 출발점으로 시계 방향으로 성벽을 따라 걸으려 했지만, 공사구간이 있어 반시계 방향으로 성벽을 걸었다. 부소산성과는 다른 걷는 재미가 있고, 방위체계에 따라 성의 동쪽에는 청룡 깃발이, 서쪽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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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됨의 새로움여행/2024 함박눈 공주 2024. 1. 10. 23:01
즉흥적으로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 이번에는 공주다. 공주는 개인적으로 낯설지 않은 도시지만 한번도 여행을 위해 들른 적은 없는 곳이다. 근래에 제민천 일대를 중심으로 도시 재생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어서, 백제의 옛 수도가 아닌 새로운 도시공간으로서 공주를 찾게 되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첫 공주 여행이었던 만큼 유적지를 주로 둘러보게 되었지만. 이동수단은 KTX 산천. 내가 탄 열차는 익산에서 여수와 목포로 분기하는 열차였다. 내 자리는 오른쪽 창가석이었고 시야가 탁 트인 창문 바로 옆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다. 서울역을 출발한 열차는 용산역에서 잠시 정차한 뒤 한강철교에 올라선다. 그러면 저 먼 발치에서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강철교를 건널 때마다 항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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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다산초당(茶山草堂)여행/2023 늦여름 목포 2023. 9. 3. 11:17
짧은 목포 일정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한 끝에 가기로 마음먹은 곳은 강진군의 다산초당이다. 목포는 목포를 기점 삼아 주변 지역을 둘러보기 좋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이 일대가 넓어서 이동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다산초당을 가는 데에는 차로 1시간 여가 걸렸는데, 목포에 머무른 3일 중 날씨가 가장 좋아서 부족한 시간만 아니었다면 한적한 길가 아무곳에나 차를 세워두고 산과 들판, 바다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대기의 열기가 얼마나 강했는지, 산등성이의 몇 곱절은 되어 보이는 뭉게구름들이 기세 좋게 튀어오르고 있었다. 다산초당은 영덕의 월송정만큼이나 한적하고 고즈넉해서 마음이 느긋해지는 공간이었다. 정약용은 유배생활 11년간 이곳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집필했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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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대흥사(大興寺)여행/2023 늦여름 목포 2023. 8. 30. 18:12
두륜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흥사는 땅끝마을로부터 다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거리에 있다. 나는 땅끝마을을 오면서 이용했던 도로를 다시 이용하는 것이 싫어 이번에는 강진 방면으로 길을 타고 두륜산으로 향했다. 오전에 만난 카페의 주인 아저씨가 도솔암의 경치가 참 볼 만하다고 추천해주셨었는데, 짧은 일정상 도솔암을 들를 엄두는 내지 못했다. 더위가 점점 수그러드는 시간대가 되어 대흥사 입구에 도착했고, 일주문부터 길을 나서는데 계곡에 삼삼오오 모여 찬물에 발을 담그거나 가재를 잡는 사람들의 풍경이 어딘가 이국적이기도 하고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야영이 불가능한 지역이기 때문에 오로지 피서만을 목적으로 이곳 장춘계곡까지 들어온 사람들. 바다가 코앞인 지역인데도 그늘진 계곡에서 더위를 나는 모습이 어쩌면 더 합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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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송호해수욕장과 땅끝마을여행/2023 늦여름 목포 2023. 8. 29. 01:35
원래 목포로 내려올 때는 목포 여행을 겸해 신안 일대를 쭉 드라이브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신안 일대의 명소를 검색해보니 갈 만한 지점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실제 구경갈 만한 곳들은 정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 예를 들어 가거도나 홍도 같은 곳이었는데, 이번처럼 짧은 일정에 배를 탄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목포를 기반으로 둘러볼 만한 주변 지역이 꽤 있어서, 해남과 진도, 강진 중에 어딜 갈 만한 곳을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해남이 낙점되었다. 해남을 여행한다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땅끝마을일 것이다. 나는 땅끝마을에 가기에 앞서 송호해수욕장의 한 카페에서 목을 축이기로 했다. 숭늉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단 카페였는데, 주차가 되지 않는 카페 앞 지점까지 걸어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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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유달산(儒達山)여행/2023 늦여름 목포 2023. 8. 28. 11:05
해가 땅에 가까워지며 건물의 각진 음영들이 점점 짙게 두드러질 무렵, 나는 유달초등학교 옆길을 통해 유달산을 올랐다. 이전에 목포에 왔을 때는 케이블카로 유달산에 올랐기 때문에 등산을 하면 어떨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무더운 날씨까지 더해져서 등줄기가 땀범벅이 되었다. 나는 서해랑길을 따라서 얼기설기 들어선 골목길을 타고 오르다가 도중에 등산로로 길을 틀었다. 그리고 유달산 스테이션과 마당바위를 차례차례 지나 마침내 일등바위에 올랐다. 분명 일전에 케이블카를 타고 한번 왔던 장소인데도, 기시감 대신 전혀 새로운 풍경을 보는 느낌이 들어 잠시 정신을 가다듬게 된다. 나는 바로 이곳 유달산 정상에서 해가 질 무렵까지 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며 석양을 구경했다. 남쪽을 바라보면 영암 일대의 조선소가 보이고,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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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행 열차여행/2023 늦여름 목포 2023. 8. 24. 18:09
목포는 올해 봄 출장으로 들르면서 한번쯤 여행으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도시다. 그렇게 해서 하루는 한달 전 쯤인가 무턱대고 숙소를 예약해두었다. 숙소 위치는 목포의 구시가지. 여행 당일이 되고 나름 여름휴가 기간이 끝나가는 시점이라 사람이 많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서울역을 출발한 열차는 광주송정 역을 지나면서부터 퍽 한산해졌다. 마침내 목포역에 내렸을 때, 나를 맞이한 건 바닷바람 한 점 없는 찜통 더위였다. 마치 빛에 타들어간 필름처럼 태양이 쏟아지는 인도가 새하얗게 바랬다. 나는 옷가지와 카메라 따위로 빵빵해진 카키색 가방을 메고 15분여를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한동안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단출한 차림으로 숙소를 나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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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여행. 악어봉(鰐魚峰)여행/2023 초여름 고군산군도와 관아골 2023. 7. 13. 18:31
즉흥적으로 차를 렌트해 향한 곳은 충주호와 월악산 자락이 마주하는 한 카페다. 나는 3번 국도를 타고 시내를 빠져나와 36번 국도로 갈아탔다. 나의 정확한 행선지는 카페가 아닌 카페를 출발지점으로 하는 산길이다. 그 길을 통해 나는 악어봉이라고 불리는 조망이 좋은 야트막한 산등성이로 올라갈 것이다. 카페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산을 타고 싶었지만, 시간상 카페가 문닫을 시간이 가까워져 곧장 산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충주에서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해보다가 이곳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중앙탑 공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악어봉을 가보기로 했다. 그래도 충주까지 왔으니 충주호를 한번 보고 가야하지 않겠나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악어봉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정식 개통은 되어 있지 않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