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아일랜드의 마운틴뷰에 위치한 우리의 두 번째 숙소는 방갈로였다. 하와이에는 ‘retreat’이라고 해서 조용하게 칩거할 수 있는 공간이 드문드문 곳곳에 퍼져 있다. 첫 번째 숙소가 주택단지에 위치한 가정집이었다면, 두 번째 숙소 역시 주택단지에 있기는 하지만 집과 집 사이의 녹지가 넓고 우거져서 사생활이 완전히 보호되는 공간이었다. 나는 하와이에 오게 된다면 이렇게 완전히 주위과 격리된 공간에서 쉬어보고 싶었다.
화산 공원에서 점심을 먹고 나올 즈음 휘몰아치는 물보라가 점점 거세어지고 있었으니, 마우나케아로 오르는 길이 안전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출발하기 전 미리 방문자센터에 전화해서 마우나케아에 진입할 수 있는 상황인지 확인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유쾌한 목소리는 아주 괜찮다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면서 향한 마우나케아로의 여정에서는 다행히 날씨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생각보다 지프차의 연료를 많이 쓴 탓에 중간에 주유소에 들러 휘발유를 40달러 어치 주유했다. 마우나케아를 오르는 동안 줄곧 날씨가 좋아서 중간에 내려 사진을 남기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일정 고도에 이르자 한 치 앞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비가 쏟아졌다. 그 고도구간을 지나자 이제 비를 뿌리던 구름은 산아래에 깔려 있고, 남은 길은 화창했다.
방문자 센터부터는 사륜구동 차량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험준한 산을 오르는 일도 오르는 일이지만, 내려오는 길에서 수동기어로만 조작해서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브레이크 사용으로 차량에 과열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처음 지프차를 렌트할 때는 영업소에서 개인차량은 마우나케아 정상에 오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웃돈을 주고 대여한 지프차를 환불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방문자 센터에 확인한 바 사륜구동이기만 하다면 개인차량도 들어갈 수 있었다.
도중에 우연한 만남이 있었는데, 빅 아일랜드에 여행 온 중년 여성 2명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일행은 이륜구동차를 끌고 와서 정상까지 올라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산중턱까지 와서 정상을 못보고 돌아간다니 너무 아쉽다고 했다. 부모님은 갑자기 일면식도 없는 동행자가 생기는 것에 어려워 하는 기색이 있으셨지만, 여행중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어본 나는 차를 타고 같이 이동하자고 했다. 대신 나는 약간의 금전적 사례를 요구했다. 물가가 살인적인 하와이에서 완전한 선의를 베풀기는 어려웠다.
이제 다섯 명이 된 우리 일행은 비포장도로를 올라가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우리는 정상에 있는 천문대까지 올라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들을 보게 될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실은 밤하늘에 별이 떠오르기 전에 천문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저 해맑게 하와이의 구불구불한 지붕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