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첫 번째 숙소를 가장 마음에 들어하셨다. 이번 여행에서는 몇 가지 방침같은 것이 있었다. 가령 외식을 줄이기 위해 한국에서 레토르트 음식을 넉넉하게 챙겨가기로 일찌감치 얘기가 되었다. 현지음식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부모님을 위한 배려였다. 마찬가지로 가장 신경썼던 것은 숙소에 관한 부분이었다.
6박이라는 짧은 기간을 삼등분해 2박씩 세 개의 서로 다른 컨셉의 숙소를 예약했다. 첫 번째는 해안절벽에 면한 펜션, 두 번째는 정글 안에 자리한 오두막, 세 번째는 도심의 호텔이었다. 세 숙소는 저마다 일장일단이 있었지만, 부모님은 특히 첫 번째 숙소를 떠나며 퍽 아쉬워 하셨다.
전날 밤, 우리는 하와이에 도착한 이후로 처음 외식을 했다. 달과 거북이(Moon and Turtle)라는 예쁜 이름에 걸맞게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는 레스토랑이었다. 새 아침이 밝은 3일차, 이제 우리는 화산공원을 가는 것과 동시에 짐을 꾸려 첫 번째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
화산공원으로 가는 길에 잠시 코아나(Koana)라는 카페를 경유했다. 구글맵상에 평점이 매우 높았던 곳으로, 스파이시 커피(Spicy Coffee)라는 시그니처 커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로컬 카페였다. 사실 나는 스파이시 커피라는 개념이 생소해서 어떤 커피인지 계속 확인을 했는데, 생강이라든가 꿀이 혼합된 자체 시럽을 넣어 만든 독특한 느낌의 커피였다.
코아나는 동네에서 일종의 마을회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오고가고 앉아서 쉬며 주인장과 근황을 공유하기도 하고, 함께 나온 가족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운전할 동안 마실 시원한 음료 하나와 부모님이 드실 따뜻한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했는데, 주인장이 예의 스파이시 커피를 시음해 보라며 작은 종이컵에 커피를 준비해 왔다. 맛을 본 엄마는 향을 무척 좋아하셨다.
첫 번째 숙소를 떠나올 때부터 수평선에 해무(海霧)가 아주 짙게 깔린 날이었고, 카페를 지나칠 때도 빗줄기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기를 몇 번이었다. 마침 화산 공원에 도착한 시각에는 다시 날씨가 개었지만, 화산공원 내에서 한 지점에서 다음 지점으로 이동할 때마다 점점 기상이 안 좋아졌다.
우리는 우에카후아를 비롯해 크레이터 림 드라이브(Crater Rim Drive) 일대의 전망대를 세 곳 정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 지역의 명소인 더 림(The Rim)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애당초 나는 화산공원을 하루 일정으로 잡아서, 반나절은 크레이터 림 드라이브(Crater Rim Drive) 일대를 둘러보고, 남은 반나절은 바닷가를 따라 펼쳐지는 체인 오브 크레이터스 로드(Chain of Craters Road) 일대를 돌아다니며 가벼운 트레킹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화산공원을 구경을 한 것은 오전 반나절 킬라우에아 분화구 일대를 둘러본 것으로 끝이 났다. 그 이튿날 다시 한번 화산공원을 찾았을 때는 폭우로 인해 도로진입이 통제되고 있었던 것. 힐로의 날씨는 실로 변덕스러웠고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내어주었던 것은 3일차가 마지막이었으니, 우리는 일단 두 번째 숙소에 짐을 풀고 마우나케아 산에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