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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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길레프의 제국일상/book 2025. 6. 26. 11:56
발레의 부상은 전적으로 댜길레프가 주도한 현상이다. 그는 세련된 취향에 약간의 술책과 다양하고 폭넓은 경영 기술을 추가했다. 어떠한 원형이나 전범(典範)도 따르지 않았다. …댜길레프는 어떻게 그 일을 해냈을까? …그는 일단 시류에 편승하면 즉시 고삐를 빼앗아 손에 쥐었다. 또한 일정한 예산이나 이사회도 없이 사업을 하면서 극장 흥행주 역할을 마치 신처럼 수행했다. 그의 천재성은 그야말로 실용적이었다. 필요한 인재를 발견해 불러들이고, 그들을 유능하게 만들고, 과실을 따먹었다. 그의 권위가 없었다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p.18~19 …컬러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으로 대중적인 루트가 열리기 이전 시대에 댜길레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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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화에 대하여(On Weathering)일상/book 2025. 6. 23. 09:58
부재의 수가 증가하면 부재의 연결지점도 많아지고 통합적인 구조보다는 병렬적인 접합부가 늘어난다. …접합부가 늘어나자 자연의 영향을 직접 받는 건물 부위도 많아졌다. ―p.22 …더 많은 선택 가능성을 보장해야 할 대량생산 시스템이 실제로는 틀에 박힌 선택으로 이끌었다… ―p. …창조 행위란 건축가와 시공자가 자연의 힘을 예측하면서 작업하는 가운데 생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건물 표면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대비는 건물 외관에 영구적으로 새겨지는 음영을 만든다. 빛과 어둠의 대비는 또한 뚜렷한 것과 모호한 것의 대립이며 실제와 가상 사이의 긴장이다. ―p.65 역설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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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일상/book 2025. 6. 20. 09:38
인간은 몸을 갖고 있고, 자신의 취약성을 인식하며, 매개된 경험과 매개되지 않은 경험 사이를 자주 오가고, 성찰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며, 결국 유한하다. 반면 사용자 경험은 실체가 없는 디지털이고, 추적 가능하며,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고, 항상 매개자가 있다.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무한을 약속한다. ―p.16 경험에는 역사가 있고 그것은 우리 육체에 흔적을 남긴다. 소뿔에 들이받힌 투우사의 상처는 일종의 지식을 나타낸다. 출산 이후 생긴 튼 살은 인간의 몸이 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들을 상기시킨다. 또한 ‘눈 밖에 났다’, ‘앓던 이가 빠졌다’, ‘손을 씻었다’, ‘입이 무겁다’와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육체는 은유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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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붕괴의 시대일상/book 2025. 6. 18. 18:35
심각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것만은 확실했다. 공급망은 상품을 순환시키는 체계일 뿐 아니라 인간이 환경을 통제한다는, 내면 깊숙이 뿌리내린 의식의 원천이자 현대인의 삶을 하나로 묶는 흔치 않은 시스템이었다. 정부 불신, 언론에 대한 회의, 기업의 동기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찬 시대지만, 적어도 택배기사를 집 앞으로 오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은 믿을 수 있었다. 농장, 공장, 물류센터를 가정과 기업으로 이어주는 연결 고리는 끊기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p.21 우리는 아마존을, 치명적인 팬데믹 기간에 물류창고 직원들에게 마스크는 공급하지 못했지만 우주로 날아갈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억만장자 제프 베이조스가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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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의 건축일상/book 2025. 5. 29. 23:28
‘참여’의 회귀가 보여 주는 모습은 퇴색되어 희미해진 프레스코화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생산적이지는 않다. 여기서 부각되는 것이 바로 미학(타고난 감지 능력)과 사회(연합, 동맹) 간의 모호하고 끝없는 갈등 관계, 창조 행위와 공적 유용성, 시민의 건축과 시민을 (교육하기) 위한 건축 사이의 갈등 관계다.―p.31 현대 건축가들은 ‘설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건축이 점점 사라지고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건축이 퍼져 나가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겁니다.―p.41 산업화 이전 시대의 도시에서는 노동, 유흥, 교통, 교육, 공연, 물물교환, 생산 등의 활동이 어디에서든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도시계획가가 디자인한 현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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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길렘의 의학론일상/book 2025. 5. 23. 06:53
오늘날의 의학은 유기체의 자연적 반응에 대해 일단 의심하는 태도를 취한다. 의심은 반응이라는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반응이 처음에 적절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충분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이 의심은 개입하려는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촉진시킨다.―p.20 히포크라테스주의는 자연의 힘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비-히포크라테스적 의학은 그 힘의 방향을 돌림으로써 그 한계를 뒤로 물릴 수 있다. 오늘날 무지는 자연에 속하지 않는 것을 자연에 요청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의술은 자연의 변증법이다.―p.21 의학이 진단의 근거를 더 이상 자발적 증상에 대한 관찰에 두지 않고 유발된 징후에 대한 검사에 둔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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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수명일상/book 2025. 5. 20. 10:52
괜찮으시면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요컨대 선생님께선 지금, 에세이 작가는 임의적인 진릿값을 적용해 글을 쓸 수도 있고 현실 세계에 사는 실제 인물의 입에서 나온 인용문을 전혀 다르게 가공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한데 그런 건 보통 픽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p.62 “태권도가 비교적 현대에 체계화된 무술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실제로 문서화된 역사만 놓고 보자면, 태권도는 190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태권도의 실질적 형태는 한국의 최흥희라는 장이 조국의 다양한 무술 양식을 하나의 무예로 통합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한 1955년에야 비로소 갖추어졌지만 말이다.” ―p.113 때때로 우리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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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삶(Precarious Life)일상/book 2025. 4. 24. 17:34
오로지 두 입장만이 가능하다며 부시가 제안하는 이분법―“당신이 우리 편이 아니라면 테러리스트의 편이다!”―은, 둘 다를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고, 반대 입장의 틀을 형성하는 조건을 의문시한다. 더구나 그것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구분으로 우리를 회귀시키고 그러한 감상적 환유(metonymy) 속에서 “문명”과 “야만”이라는 불쾌한 구분으로 우리를 회귀시키는 것과 똑같은 이분법이다.―p.23~24 우리는 마치 궁극적인 목적이 정확한 조준이기라도 하듯, 더 잘 조준하지 못한 것을 자책한다. …우리 자신의 행위는 테러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9‧11 사건으로 이어지는 적절한 선역사(先歷史)가 없는 것이다.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하기 시작하고, 어떻게 사태가 여기까지 왔는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