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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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들(Gesten)일상/book 2025. 4. 1. 08:55
어떤 몸짓이 더 많은 정보를 내포하면 할수록, 수신자가 그 정보를 읽기는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정보가 많을수록, 소통은 적어진다. 그 결과 어떤 몸짓이 정보를 적게 알리면 알릴수록(몸짓이 더 잘 소통할수록), 그만큼 몸짓은 공허해지고, 편안해지고, ‘예뻐’진다. 왜냐하면 그 몸짓을 읽는 데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p.17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세계가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가설들은 문제를 제기한다. 존재론은 세계가 어떠한지를, 의무론은 세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방법론은 세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다룬다.―p.19 첫 번째 단계에는 목적 지향적 질문(‘무엇을 위해?’)이, 두 번째 단계에는 인과관계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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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섬(Motseom)일상/book 2025. 3. 31. 17:12
사진집을 읽는 건 오랜만의 일이다. 사진집이나 화집을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말 그대로 '보는 것'을 좋아할 뿐 막상 이런 유형의 책 '읽기'에는 익숙하지 않다. 한 권에 대여섯 개 정도의 삽화가 들어간 책이라면 몰라도, 이미지가 주를 이루고 텍스트가 간간이 끼어드는 이런 유형의 책은, 이미지를 죽 보고 있자면 머리에 저장되는 내용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텍스트로 눈길을 옮기자면 이미지들 사이에서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사한 사진집이나 화집을 보면 절로 시선이 가는데, SNS 유저들이 플랫폼 상의 '감성 가득한' 이미지를 손가락 끝으로 휙휙 넘기며 감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 경북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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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일상/book 2025. 3. 13. 12:27
어딘가 어렵게 도착한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몰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는 피곤도 겹쳐 있었다.―p.13~14 그 시절 찬성은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몇 가지 깨달았는데, 돈을 벌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 인내가 무언가를 꼭 보상해주진 않는다는 점이었다.―p.42~43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p.142 어머니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사십오 도가량 몸을 틀었다. 풍경을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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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으로의 초대일상/book 2025. 3. 11. 11:34
사회학은 실천이 아니고 이해하려는 시도이다.―p.18 사회학자가 그의 소명에 충실하길 원한다면 그의 전문적 진술은, 다른 사람들도 검증하거나 반복하는 것을, 또는 그 사회학자의 발견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을 허락하는 특정한 증거 규칙(rules of evidence)에 의거한 관찰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p.28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사회학자는 규범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오히려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 그 자신의 개인적 호불호와 편견을 통제하기 위해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한다.―p.33 사회학자는 “사회”가 인간관계의 큰 복합체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전문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상호작용의 체계(system of interaction)를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한다.―p.48 앨버트 살로몬(Albert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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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木)일상/book 2025. 3. 10. 14:51
저 오래된 나무는 그냥 죽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새로 자란 나무도 그냥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사의 경계, 윤회의 무참함을 봤다고 해서 그렇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죽음의 순간은 찰나다. 죽은 후에도 이처럼 온기를 품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p.24) 천박한 마음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훌륭한 것 앞에 서면 한시도 버티지 못하고 감탄사만 내뱉으며 깊이 감동한다. 거의 무조건 곧바로 감동한다. 민감하다고 할 수 있고, 근사한 것에 약하다고도 할 수 있다. 거기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자신의 꼴사나움을 생각하고는 마음이 점점 시들해져서 자신은 이런 근사한 것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 여기며 인연이 없다고 생각한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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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론일상/book 2025. 2. 25. 05:52
…현대 사진은 우리의 시지각을 크게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테크놀로지 시대의 인간 상황에 적응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의 두드러진 특질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자연 이미지에 일정한 틀을 제공해온 우리의 시점이 상대성을 띠게 되었다는 사시이다. 아주 단순하게 물리적 의미에서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아주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안정적인 인상 대신 변화하는 인상들의 연속이 지배적인 경험이 되었다. 지상의 풍경을 조감하는 일도 상당히 일반화되었다. 명백히 확인 가능한 외양으로 고정되어 있는 대상은 단 하나도 없다.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도 같은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우리는 믿음, 이념, 문화의 형태로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복합적 가치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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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사일상/book 2025. 1. 31. 09:02
폴란드가 유럽의 규범에서 멀어진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유사한 도전과 선택에 부닥쳤던 보헤미아와 다르게 폴란드는 유럽 국가들의 틀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았다. 그 결과로 폴란드는 좀더 후진적 국가로 남게 되었다. 그 대신 폴란드는 더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유지했다. 여러 개의 공국으로 분열되었을 때도 폴란드는 하나의 사회로서는 다른 곳보다 더 단일하고 단결된 상태로 남았다. 그 이유는 폴란드가 혼합적 군주제에 복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지리적으로 프랑스의 상당 부분은 영국 왕의 주권 아래 있었고, 독일 지역들은 프랑스 왕조의 통치 아래, 이탈리아는 노르만, 프랑스, 독일 군사 지도자의 승계 아래 있었다. 폴란드가 정치적 단위로서 살아남은 것을 보장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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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생존법일상/book 2025. 1. 12. 03:21
뒤르켐은 현대 사회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잔혹한 대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낙오자들은 더 이상 불운 탓을 할 수 없으며, 내세에서 구원받으리라는 희망도 품을 수 없었다.—p. 15 우리는 계속해서 웃으라는,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즐겁게 지내라는, 휴일에는 환호성을 지르라는, 살아 있다는 사실에 열광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런 요구가 없어도 이미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현대는 우리가 가진 근본적인 권리인 울적한 권리를, 비생산적일 권리를, 퉁명스러울 권리를, 혼란스러워할 권리를 박탈했다. 행복이 표준 상태여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현대가 우리에게 저지를 핵심적인 부당 행위다.—p. 19 19세기 미술 평론가 존 러스킨은 특정 시대가 무엇을 진정으로 믿고 있는지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