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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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수명일상/book 2025. 5. 20. 10:52
괜찮으시면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요컨대 선생님께선 지금, 에세이 작가는 임의적인 진릿값을 적용해 글을 쓸 수도 있고 현실 세계에 사는 실제 인물의 입에서 나온 인용문을 전혀 다르게 가공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한데 그런 건 보통 픽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p.62 “태권도가 비교적 현대에 체계화된 무술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실제로 문서화된 역사만 놓고 보자면, 태권도는 190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태권도의 실질적 형태는 한국의 최흥희라는 장이 조국의 다양한 무술 양식을 하나의 무예로 통합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한 1955년에야 비로소 갖추어졌지만 말이다.” ―p.113 때때로 우리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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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삶(Precarious Life)일상/book 2025. 4. 24. 17:34
오로지 두 입장만이 가능하다며 부시가 제안하는 이분법―“당신이 우리 편이 아니라면 테러리스트의 편이다!”―은, 둘 다를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고, 반대 입장의 틀을 형성하는 조건을 의문시한다. 더구나 그것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구분으로 우리를 회귀시키고 그러한 감상적 환유(metonymy) 속에서 “문명”과 “야만”이라는 불쾌한 구분으로 우리를 회귀시키는 것과 똑같은 이분법이다.―p.23~24 우리는 마치 궁극적인 목적이 정확한 조준이기라도 하듯, 더 잘 조준하지 못한 것을 자책한다. …우리 자신의 행위는 테러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9‧11 사건으로 이어지는 적절한 선역사(先歷史)가 없는 것이다.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하기 시작하고, 어떻게 사태가 여기까지 왔는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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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누구의 것인가일상/book 2025. 4. 17. 11:33
저작권의 최근 역사를 개인 자유와 권리의 성장으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20세기 후반 저작권법에 생긴 변화는 1604년부터 1914년까지 잉글랜드의 공유지를 거의 다 사유화한 인클로저 법(Acts of Enclosure)에서 이름을 따와 ‘뉴 인클로저(New Enlcosure)’라 불린다. ―p.22 지배적 합의에 어긋나는 저작물에 대해 처벌받음으로써 저작물을 ‘책임지는(own)’ 사람은 당연히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소유할(own)’ 수 있어야 한다. 즉 그 수익을 가져야 한다. ―p.49 지식 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창작물의 궁극적 기원에 대한 믿음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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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들(Gesten)일상/book 2025. 4. 1. 08:55
어떤 몸짓이 더 많은 정보를 내포하면 할수록, 수신자가 그 정보를 읽기는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정보가 많을수록, 소통은 적어진다. 그 결과 어떤 몸짓이 정보를 적게 알리면 알릴수록(몸짓이 더 잘 소통할수록), 그만큼 몸짓은 공허해지고, 편안해지고, ‘예뻐’진다. 왜냐하면 그 몸짓을 읽는 데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p.17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세계가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가설들은 문제를 제기한다. 존재론은 세계가 어떠한지를, 의무론은 세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방법론은 세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다룬다.―p.19 첫 번째 단계에는 목적 지향적 질문(‘무엇을 위해?’)이, 두 번째 단계에는 인과관계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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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섬(Motseom)일상/book 2025. 3. 31. 17:12
사진집을 읽는 건 오랜만의 일이다. 사진집이나 화집을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말 그대로 '보는 것'을 좋아할 뿐 막상 이런 유형의 책 '읽기'에는 익숙하지 않다. 한 권에 대여섯 개 정도의 삽화가 들어간 책이라면 몰라도, 이미지가 주를 이루고 텍스트가 간간이 끼어드는 이런 유형의 책은, 이미지를 죽 보고 있자면 머리에 저장되는 내용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텍스트로 눈길을 옮기자면 이미지들 사이에서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사한 사진집이나 화집을 보면 절로 시선이 가는데, SNS 유저들이 플랫폼 상의 '감성 가득한' 이미지를 손가락 끝으로 휙휙 넘기며 감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 경북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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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일상/book 2025. 3. 13. 12:27
어딘가 어렵게 도착한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몰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는 피곤도 겹쳐 있었다.―p.13~14 그 시절 찬성은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몇 가지 깨달았는데, 돈을 벌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 인내가 무언가를 꼭 보상해주진 않는다는 점이었다.―p.42~43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p.142 어머니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사십오 도가량 몸을 틀었다. 풍경을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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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으로의 초대일상/book 2025. 3. 11. 11:34
사회학은 실천이 아니고 이해하려는 시도이다.―p.18 사회학자가 그의 소명에 충실하길 원한다면 그의 전문적 진술은, 다른 사람들도 검증하거나 반복하는 것을, 또는 그 사회학자의 발견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을 허락하는 특정한 증거 규칙(rules of evidence)에 의거한 관찰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p.28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사회학자는 규범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오히려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 그 자신의 개인적 호불호와 편견을 통제하기 위해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한다.―p.33 사회학자는 “사회”가 인간관계의 큰 복합체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전문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상호작용의 체계(system of interaction)를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한다.―p.48 앨버트 살로몬(Albert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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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木)일상/book 2025. 3. 10. 14:51
저 오래된 나무는 그냥 죽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새로 자란 나무도 그냥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사의 경계, 윤회의 무참함을 봤다고 해서 그렇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죽음의 순간은 찰나다. 죽은 후에도 이처럼 온기를 품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p.24) 천박한 마음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훌륭한 것 앞에 서면 한시도 버티지 못하고 감탄사만 내뱉으며 깊이 감동한다. 거의 무조건 곧바로 감동한다. 민감하다고 할 수 있고, 근사한 것에 약하다고도 할 수 있다. 거기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자신의 꼴사나움을 생각하고는 마음이 점점 시들해져서 자신은 이런 근사한 것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 여기며 인연이 없다고 생각한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감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