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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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여의 수수께끼일상/book 2024. 11. 11. 10:56
…증여는 유력한 두 대리인(시장과 국가)에게 장악되었다. 시장(직업 시장, 재화와 서비스 시장)은 이해타산, 회계, 계산의 장이며, 국가는 법을 존중하고 법에 복종하는 비인격적 관계의 장이다.—p. 18 모스는 분명히 왜 어떤 사회에서는 “증여가 경제와 도덕을 지배하게 되는지”를 자문했다. 그가 내놓은 대답은 몇몇 조건이 충족될 때 그런 사회가 출현한다는 것이었다. 그 조건이란 천째, 사회의 기틀을 이루는 사회적 관계를 생산하는 데 인격적 관계가 중요한 역할, 아니 오히려 지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스는 이것이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보았다. 인격적 관계가 지배적인 역할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자기 자신을, 자신들의 관계를 재생산하는 데 있어 온갖 이해관계가 얽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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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거짓된 삶일상/book 2024. 10. 7. 13:24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분별력 있는 그들의 머릿속과 지식으로 가득한 그들의 몸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무엇이 그들을 파충류보다도 못한 믿을 수 없는 동물로 만들어버린 걸까.―p. 185~186 그날 로베르토는 꽃잎으로 사랑 점을 칠 때처럼 한 단어를 수없이 반복해서 말했는데 그것은 바로 ‘죄책감’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기억만은 확실하다. 로베르토의 말을 들으니 그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로베르토는 죄책감의 의미를 바로잡고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죄책감이 흐트러진 존재의 조각들을 꿰어줄 바늘이라고 했다. 로베르토는 죄책감이 자기 스스로에 대한 날선 경각심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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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의 느낌—영화와 바다일상/book 2024. 9. 2. 18:19
……영화는 글이나 그림과 다르게 물리적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예술이다. 외부 세계, 기술, 미적 의도 사이 만남의 산물인 렌즈 기반 이미지는 외부 세계에 불가분하게 속해 있다. 그라베의 말을 바꿔 말하자면, 영화는 세상 밖으로 떨어질 수 없다.―p. 2 바쟁에 의하면, 사진의 진정한 힘은 현실을 완벽하게 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관객이 “사물의 실재성이 그 재현물로 전이”되면서 이미지가 생산되었음을 인식하는 데 있다.―p. 29 기술은 아마도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덜어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은 아마도 삶의 방식을 불도저로 밀어버릴 것이다.―p. 36 연안 노동을 묘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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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일기일상/book 2024. 8. 8. 02:54
내가 시간 속에서 점하는 위치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변화하는 내 자아를 가능한 한 완전히, 가능한 한 쓸모 있게 활용하고 싶었다. 비틀ㄹ비틀 서성이면서, 비몽사몽간에, 내가 세상에 진 빚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보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p.9 나는 내가 맹렬한 기세로 다음 사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이전 사람에게서 달아나고 있을 뿐이었다.―p.27 한 친구는 이렇게 썼다. 금이 헬륨과 비슷하면서도 헬륨 이상의 무언가이듯, 결혼은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가 생기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그 이상의 무언가다. 전자(電子)의 내부 껍질이 꽉 차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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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일상/book 2024. 8. 6. 03:43
"다스 부인, 당신이 느끼는 건 정말 고통입니까, 아니면 죄책감입니까?" (p.111 中) "부리 마의 입은 거짓으로 가득해. 하지만 그건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 새로운 사실은 이 건물의 표정이 바뀌고 있다는 거야. 이 같은 건물이 필요로 하는 건 진짜 경비원이라네." (p.136 中) "그건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p.173 中) "모든 사람이, 이 사람들이, 세상에 세상에, 너무 많아." (p.195 中) 사실 산지브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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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비사물일상/book 2024. 8. 5. 12:07
내가 그것을 홀대하고 그것이 내게 쓸데없더라도, 혹은 이런 것을 가치 있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도 터무니 없을 것이다. 공기나 물처럼, 내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할 때면 나는 무언가를 위반한다는 막연한 느낌이 든다. 뭉뚱그려서 말하면, 내가 위반하는 이유는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무단으로 넘나들기 때문이다. 가령 자연에 시시한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엄하므로 자연을 위반하는 것이다. 가령 문화 바깥에서 가치를 논하는 것은 반인간주의이고 따라서 무엄함 이상이므로 문화를 위반하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과연 자연과 문화의 경계는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이들 사이에는 도처에 무인지대가 있고 도처에서 은밀한 월경(越境)이 일어나지 않는가?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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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관하여일상/book 2024. 7. 29. 11:32
때로는 ‘신념’이라고 여긴 것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나 생각지 못한 전개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인생에 쓰나미 같은 변화가 닥칠 때 사람은 예상 밖의 행동을 한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삶을 돌이켜 보면 최악의 순간에 완전히 매몰되는 듯해도 그 경험을 통해 정화되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실망과 고난이 딸르지만, 그 일을 계기로 묵은 감정이 씻겨 나가고 그동안 생각지 못한 새로운 관점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는 면에서 참혹한 격변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기 바라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끔찍한 일을 겪는다. 실패, 상실감, 고통, 죽음은 누구나 감당해야 할 몫이다. 몸에 남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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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Stanze)일상/book 2024. 7. 21. 10:51
나태한 인간의 타락은 대상은 원하면서도 그것에 이르는 길은 원하지 않는 욕망의 타락이다. 그는 욕망하면서도 욕망의 성취를 위한 길을 가로막는다.―p. 35 우울증은 사랑하는 대상의 사라짐에 대한 거부반응으로서의 철회라기보다는 차라리 가질 수 없는 대상을 마치 잃어버린 대상으로 보이게 하는 상상력에 가깝다. 리비도가 만약 실제로는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마치 무언가를 정말로 잃어버린 것처럼 행동한다면 그 이유는, 한 번도 소유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살라진다는 것이 불가능한 무언가를 마치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게 하고 또 한 번도 사실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소유할 수도 없는 무언가를 하나의 잃어버린 물건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가상의 장면을 무대에 올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