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의 수가 증가하면 부재의 연결지점도 많아지고 통합적인 구조보다는 병렬적인 접합부가 늘어난다. …접합부가 늘어나자 자연의 영향을 직접 받는 건물 부위도 많아졌다. ―p.22
…더 많은 선택 가능성을 보장해야 할 대량생산 시스템이 실제로는 틀에 박힌 선택으로 이끌었다… ―p.
…창조 행위란 건축가와 시공자가 자연의 힘을 예측하면서 작업하는 가운데 생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건물 표면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대비는 건물 외관에 영구적으로 새겨지는 음영을 만든다. 빛과 어둠의 대비는 또한 뚜렷한 것과 모호한 것의 대립이며 실제와 가상 사이의 긴장이다. ―p.65
역설적으로 풍화는 뺄셈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것을 만들어낸다. 이런 풍화작용은 예술과 자연의 역할을 뒤바꾸어 놓았다. 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술은 자연을 형상화하는 힘 또는 그 동인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건축의 생애나 생존 기간이란 관점에서 보면, 자연은 완성된 예술작품을 ‘재창조’한다. 이 재창조 과정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면 원래의 건물 표면에는 녹이 슬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생성된 피부”가 표면을 완전히 덮게 된다. ―p.72, 74
“집은 우리와 함께 성장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랐다” ―p.88
“세월의 가치(age value)”에 대한 [그의] 논의에 따르면, 건물은 연륜이 쌓일수록 가치가 높아지고 다양한 흠집이나 겹겹이 누적된 표면층이 해당 건물의 과거사와 그와 관련된 삶을 기록해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등장한 근대건축의 순수성은 연상 작용에 의한 기억의 의미를 부인하고 있다. 이 같은 태도는 풍화현상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설계된 건물 표면으로 나타났다. ―p.94
먼지, 오물, 때, 더러움 이런 것들을 그냥 제거해버리면 안 되는가? 이들이 다른 것도 오염시키지 않을까? 왜 오염 가능성을 만드는가? 이 같은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이 부각된다. 그것은 얼룩이나 더러움을 건축가의 의도가 실현된 순수한 결과물을 변형시키는 요인으로 간주하는 한, 이들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염이 그렇게 불순한 것일까? 건물은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며 흙도 그 일부가 아닌가. ―p.108
…건물을 대지에 연결하는 일이란, 그 대지와 뚜렷이 구분되는 건물을 짓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 결과 땅 ‘위에’ 놓인 건축이 아니라 그 땅과 ‘더불어’ 존재하는 건축, 획일적인 기준으로는 평가할 수 없으며 장소의 특성을 뚜렷하게 갖는 건축이 태어나는 것이다. …비물질화라는 바람직한 이상을 감안할 때, 이런 류의 건물들이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계속 보존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건축의 수명을 영원히 지속되는 것으로 보고, 운명이라는 짐을 무한정 짊어져야 하는 건축을 상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닐까? 공사가 완료되면 세월이 흐른 뒤 건물의 마지막 모습도 그려지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한정된 수명을 갖고 태어나는 건물도 있지만 어떤 건물은 영구적인 것으로 계획되어 일련의 연속적인 개입을 통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모습이 완성되도록 지어진다. ―p.118~119
…현실의 조건, 오염과 결함의 발생 가능성을 파악하는 일은,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이상적 측면을 보완하여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운 건축, 나아가서 시간을 머금은 건축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렇게 생각하면, 풍화란 사실상 건물의 미래를 현재와의 대화로 이끄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와 미래는 모두 과거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든 행위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일관성 안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과거나 미래에 대한 인간의 감각은 현재의 이해를 넘어, 그가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이나 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시점까지의 시간대를 포함한다. ―p.12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