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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크리스틴 로젠/이영래 譯/어크로스
인간은 몸을 갖고 있고, 자신의 취약성을 인식하며, 매개된 경험과 매개되지 않은 경험 사이를 자주 오가고, 성찰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며, 결국 유한하다. 반면 사용자 경험은 실체가 없는 디지털이고, 추적 가능하며,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고, 항상 매개자가 있다.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무한을 약속한다.
―p.16
경험에는 역사가 있고 그것은 우리 육체에 흔적을 남긴다. 소뿔에 들이받힌 투우사의 상처는 일종의 지식을 나타낸다. 출산 이후 생긴 튼 살은 인간의 몸이 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들을 상기시킨다. 또한 ‘눈 밖에 났다’, ‘앓던 이가 빠졌다’, ‘손을 씻었다’, ‘입이 무겁다’와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육체는 은유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p.25
우리는 온라인에서 번성하는 가짜 뉴스, 캣피싱, 음모론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1930년대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경험의 빈곤”이 사람들을 낯선 유형의 절망으로 몰아넣고 “모든 것이 가장 단순하고 편안한 방법으로 해결되는” 존재 방식에서 안도감을 찾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p.32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그에 대한 정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p.36
실제 경험과 거기에 대응하는 디지털 경험은 시력(eyesight)과 시각(vision)의 차이와 같다. 시력은 눈이 우리가 보는 것을 얼마나 잘 포착하는지를 의미한다. 시각은 인식을 유도함으로써 시력을 지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시력을 훨씬 넘어서는 개념인 것이다.
―p.39~40그 발명품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일어난 태도의 변화, 즉 “소망, 습관, 아이디어, 목표의 재조정”도 그만큼 중요하다… (루이스 멈퍼드)
―p.46
대면 의사소통에는 진화의 결과인 생리적 반응과 일종의 사회적 접착제인 정교한 문화적 규칙이 관여한다… “인간은 영장류이고 이 사실은 인간의 행동과 상호작용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상호작용은 생물학을 초월하지 않으며, 생물학에 내재되어 있다.” (조너선 터너)
―p.57
사람들은 늘 공적 공간에서 사적인 공간을 만들 방법을 찾는다. 그래야 공적 공간이 견딜 만한 곳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고프먼이 말하듯이 사회적 관심은 “상대를 보기는 했으나 특별한 호기심의 대상은 아닌 것처럼 대하는” 사회적 무관심과 한 쌍을 이룬다… 그래도 이런 식의 사회적 무관심은 ‘투명 인간 취급’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주변 사람들을 잠깐도 알은척하지 않고 스마트폰 화면에만 집중하는 것은 사회적 무관심이 아니라 사회적 유리(civil disengagement)다. 오늘날에는 이런 사회적 유리가 공적 공간의 표준이 되고 있다.
―p.66~67
즉각적인 비동기 커뮤니케이션(asynchronous communication) 도구로 인해 우리는 항상 서로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가정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가정한다.
…이제 우리는 경험 보상 효과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대면 경험이 드물어지고 성급함이 개입하고 만족감이 떨어지면서 우리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매개된 경험에 더 깊이 빠져든다. 악순환은 끝없이 반복된다.
―p.86~87
“저는 그 수고에 미덕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 자체의 물성 때문이죠. 우선 글쓰기에는 뼈와 살, 펜과 종이라는 실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비물질적 세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형체를 가진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닻의 역할을 합니다.”
―p.101~102
오늘날 우리는 신체적으로 가혹한 경험을 덜하고, 신체적 한계에 그만큼 자주 직면하지 않는다. 하지만 편해졌다는 것은 우리 몸의 불가피한 쇠퇴를 수용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기술을 사용해 최대한 오랫동안 생명을 연장한다. 한계에 직면한 신체를 돌보는 일도 더 힘겹게 여기고 전문가에게 아웃소싱한다. …기술로 비효율성을 제거하면서 매끄럽고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우리 몸과 다른 사람의 몸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와 도전이 나타났을 때 견디기가 훨씬 더 힘들어진다.
―p.121~122
현대인은 속도를 개선으로, 다시 말해 ‘낭비되는 시간’이라는 골칫거리를 제거하는 요긴한 것으로 본다. 우리는 속도가 초래한 것들을 포용하고, 그렇게 자신이 더 나아졌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방식은 우리가 누구인지, 서로에게 무슨 기대를 갖는지…
―p.131
지루함은 대단히 인간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지루함을 경험할 때 무엇에 의존하는가는 사회적 맥락의 영향을 받으며, 시대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지루함을 덜기 위해 매개된 방법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매개되지 않은 틈새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p.147
아주 짧은 틈새 시간도 채울 수 있는 너무나 많은 방법이 있다보니, 기대 심리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기다림을 기대보다는 지연으로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이제 기다림은 정상적인 인간 경험이 아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시간을 쉽게 채우는 데 익숙해지면 기대의 기회는 사라진다.
―p.164
…주문형(On demand)은 영상을 시청할 때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이렇게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방식은 민주주의와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조급함은 전문가와 기관에 대한 사회의 신뢰도 떨어뜨릴까?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것과 현재의 것에 가치를 두라고 부추긴다. 대중 담론의 영역에서 숙고보다는 반응에 가치를 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각적이고 간결한 반응에 길들여진 문화에서는 …전문 지식은 종종 열등한 정보에 기반한 더 큰 목소리들에 삼켜진다.
―p.166
…무례한 댓글은 의견을 양극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사에 대한 인식까지 변화시켰다. 연구진은 “대면 토론에서는 비언어적 의사소통과 고립 같은 사회적 질책이 무례한 행동을 억제하는 반면, 오프라인 대면 만남에서와 같은 결과가 없는 인터넷 환경은 무례한 행동을 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온라인상의 이런 나쁜 매너가 공적 논의가 가진 “민주적 목표”를 방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p.183
…공감은 상상력과 의지가 필요한 행위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공감은 물리적 신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움직임과 표정을 관찰해야 가능하다.
―p.187
언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형성하듯이 기술은 감정의 스타일을 형성한다. …데이터가 주도하고 기술이 지원하는 “여섯 번째 감각”이 오랫동안 우리의 감정적 삶을 지배해온 모호함과 자기기만을 말끔하게 제거하는 세상을, 감정에 대한 명확하고 즉각적이며 보편적인 표현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을 약속한다. 그러나 감정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세상에는 대가가 따른다. 우리 삶의 깊이와 복잡성을 없애서 단조롭고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 감정의 성가신 부분이다. 우리는 때로 뒤섞인 감정을 좋아한다.
―p.214~215
쾌락은 디지털 형태로 더 쉽게 소화되고 공유될 수 있도록 치명성이 제거된다. 그러면 쾌락이 완전히 탈바꿈된다. 때로 쾌락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더 조작된 경험, 즉 위험보다는 통제, 우연보다는 검색, 변덕보다는 알고리즘, 개인 정보 보호보다는 편의를 우선한다. 다시 말해 쾌락의 가장 큰 변화는 쾌락의 상당 부분이 데이터화된다는 점이다.
―p.223
그들은 과거에는 침입자가 없었던 도로에 나타난 새로운 노상강도다. 모든 시대에는 쾌락과 그것을 통제하려는 활동이 공존한다. 역사적으로 쾌락의 통제는 종교 기관, 국가, 가족 등에 의해 이루어졌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런 전통적인 규제 기관이 여전히 우리의 쾌락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가운데 메타와 구글을 비롯한 디지털 플랫폼이 여기에 가세했다.
―p.224
예술에는 우리가 “접근하고 시간을 줘야 한다.”
―p.241
“사진 이미지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접한 뒤에 실제로 그것들을 보면 실망하고, 놀라고, 무감동인 경우가 많다.”(수전 손택)
―p.245
우리의 세계는 경험 기계보다는 노직이 가정한 두 가지 철학적 기계, 즉 “우리를 어떤 종류든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 변형시키는” 변형 기계와 “자신이 도출할 수 있는 모든 결과를 세상에 만들어내는” 결과 기계에 가깝다. 변형 기계와 결과 기계 모두 현대의 기술이 약속하는 것과 닮아 있다.
―p.266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증거 사회 즉 이안 커를 비롯한 사람들이 “사건의 기록이 그 의미만큼 중요한 세상”이라고 부르는 곳에 살고 있다. 사실 우리는 널리 알릴 목적으로 경험에 참여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p.267
…장소(place)들이 공간(space)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 둘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공간은 정의와 의미를 얻을 때 장소로 변한다.” 공간은 “경계가 생기고 인적 요소가 가미”될 때 장소가 된다.
―p.278
…가상 공간은 본질적으로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식별하고 순위를 매기고 추적한다. 반대로 제3의 장소는 사람들이 거래 등의 도구적인 방식이 아니라 비도구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알아가게 한다. …올든버그는 목적 없는 순수한 사교성이 “가장 민주적인 경험을 장려하고, 사람들이 더욱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게 한다”고 말한다.
―p.291~292
고프먼은 “개인이 원하는 존중을 스스로 얻을 수 있다면 사회는 개인이 고립되어 살면서 자신의 신전에 끊임없이 절을 하는 섬으로 해체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사회적 공간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전통적인 행동 규칙은, 고프먼이 지적했듯이, “즐겁거나 저렴하거나 효과적인 것이 아니라 적절하거나 공정하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이다.”
―p.304
장소에 대한 감각은 와인의 테루아와 같다. 땅을 일구어야 한다. 장소에 대한 감각이 갖는 연금술적 속성은 단순한 공식으로도, 정교한 알고리즘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공적 공간에서의 진실성 유지보다 온라인 이미지의 유지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 결과, 우리는 공적 공간을 재설계하게 되었다.
―p.311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은 양면적이다. …“기술은 해방의 도구이자 억압의 도구다.” 건전치 못한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기술로 가능해진 매끄러운 삶에 다시 마찰을 도입해야 한다.
―p.325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를 기록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자기 인식의 강화나 문화적 기억의 심화에는 실패했다. 사실 우리는 이제 개인적, 집단적 기억을 기술에 아웃소싱하고 있다.
―p.328Zoe Boivin '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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