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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의 건축 / 잔카를로 데 카를로 / 이유출판
‘참여’의 회귀가 보여 주는 모습은 퇴색되어 희미해진 프레스코화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생산적이지는 않다. 여기서 부각되는 것이 바로 미학(타고난 감지 능력)과 사회(연합, 동맹) 간의 모호하고 끝없는 갈등 관계, 창조 행위와 공적 유용성, 시민의 건축과 시민을 (교육하기) 위한 건축 사이의 갈등 관계다.
―p.31
현대 건축가들은 ‘설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건축이 점점 사라지고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건축이 퍼져 나가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겁니다.―p.41
산업화 이전 시대의 도시에서는 노동, 유흥, 교통, 교육, 공연, 물물교환, 생산 등의 활동이 어디에서든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도시계획가가 디자인한 현대 도시에서는 모든 활동이 정해진 공간과 위치에서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러니까 모든 활동이고유의 공간에서 전개되지 않는 현실은, 적어도 도시계획가 입장에서는 일종의 실수이자 참을 수 없는 ‘기능적 비일관성’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p.47
문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도약이 필요했고 실제로는 ‘모더니즘 운동’만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기능’이 자동적으로 ‘형태’를 생선한다는 ‘모더니즘 운동’만의 확고부동한 교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교리는 사실상 ‘조닝’의 도시계획과 ‘도시-기계-상품’의 이데올로기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답변을 의미했습니다.
―p.49
도시가 지니는 여러 ‘기능’의 ‘명백한’ 구도를 ‘조닝’이 제안했다면, 이 구도는 도시가 지니는 여러 ‘형식’의 ‘명백한’ 구도를 구축하기 위한 확실한 토대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기능’에서 ‘형태’로 연결되는 다리가 만들어진 다음에는 정반대 방향의 경로, 즉 ‘형태’에서 ‘기능’으로 나아가는 경로가 가능해지고 그런 식으로 물리적 환경의 미적 균형이 사회적 환경에도 균형을 가져오리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p.50
…맥락은 고유의 갈등과 모순이 포함된 사회적 힘의 총체적 체계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제도적인 힘의 체계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오늘날 이러한 맥락의 핵심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사실상 제도적 관리에서 벗어나 있는 다수층이라고 생각합니다.
―p.53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행위를 분석하고 선별할 때 이 행위의 ‘유형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유형’에 상응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행위의 주체로 어떤 ‘유형-인간’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이 ‘유형-인간’에게는 소속된 사회도 없고 역사도 없습니다. 그의 활동 반경은 그의 신체가 움직이는 영역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의 행위는 추상적인 묘사에 불과하고 현실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습니다.
―p.55
‘소통’은 의미심장할 뿐 아니라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른바 ‘문명화된’ 세계의 모든 체계는 인간들 간의 소통이라는 영역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를 확보하기 위해 놀라운 노력을 기울입니다.
…모순은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크지도 않고 손쉽게 작동할 뿐 아니라 가격도 비싸지 않기 때문에 소통 도구들은 모두의 손이 닿는 곳에 있습니다. 체계는 원칙적으로 고유의 권력을 증대하기 위한 지배 도구들을 생산하지만 동시에 이 도구들을 사실상 권력의 확장에 반대하며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 싶어 하는 개인에게까지 제공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입니다.
―p.72Architectuul
참여의 건축이 요구하는 것은 건축의 전과정에 사용자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는 최소한 세 가지 기본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우선 각 작업 과정의 모든 순간은 기획의 한 단계로 간주됩니다. 아울러 건축물의 '사용' 역시 과정의 한순간으로, 따라서 기획의 한 단계로 간주되고, 결국 다양한 단계들이 서로 뒤섞이기 때문에 과정 자체는 직선적이고 일방적인, 자기 충족적인 차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p.78첫 번째로 물리적 공간에는 두 종류의 무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독립적인 상황에서 유래하거나 제도적 관리 체제가 강요하는 균일화 과정에 대한 불복종 현상에서 유래[하며…] 다른 하나는 제도적 관리 체제 자체의 병적인 상황에서 유래합니다.
…두 번째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참여에 따르는 ‘무질서’가 아무런 구조도 지니지 않는 우발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 번째는 무질서가 질서와는 달리 기획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p.83
…참여는 타자가 자신의 판단을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동의의 약탈’로 이어져서도 안 되고 자신의 정치적 무관심과 기술적 무능력을 감추는 데 쓰이는 중립적이고 타협적인 태도로 이어져서도 안 됩니다.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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