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9 한여름 창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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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다섯 번째 습지 "쪽지못과 산밖벌" 여행의 마무리여행/2019 한여름 창녕 2019. 9. 7. 21:29
쪽지못은 우포를 이루는 늪지 가운데 유일하게 순우리말로 된 이름만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또한 '벌' 대신 '못'이라는 작은 명칭을 가지고 있다. 규모가 작다보니 나무벌(목포)과 쪽지못의 경계, 쪽지못과 산밖벌의 경계는 모호하다. 머리속으로 구상하기로는 쪽지벌을 절반쯤만 걷고 사초군락지를 통해 다시 우포늪으로 되돌아갈 생각이었다. 문제는 사초군락지로 접어드는 징검다리가 절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는 점. 사초군락지는 말 그대로 늪지 한가운데 여러해살이풀(莎草)이 무리지어 자라나는 곳으로 풀 뿐만 아니라 나무가 우거진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지만 늪지의 수위가 높아지면 진입이 금지되는 곳이기도 하다. 우포늪을 걷는 동안 마주한 관광객이 많지 않고, 특히나 나무벌(목포)로 접어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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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습지 "나무벌(木浦)" 좁은 길에서 큰 길로여행/2019 한여름 창녕 2019. 8. 8. 00:19
주매제방에서 목포(木浦)로 빠져나가는 길에는 잠시 길을 잃었다. 약간의 지름길을 택하려다 되려 길을 잃고 만 것이다. 늪지 가장자리로 훤히 난 길 대신 숲속 샛길을 고른 것이다. 뒤늦게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미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했던 것처럼 다시 원지점으로 복귀해야만 했다. 카페에서 원기를 충전한 뒤로는 대단히 무미건조하다 싶을만큼 전투적으로 트레킹을 하기 시작했다. 원지점으로 되돌아나오니 건강원들이 두어 군데 눈에 띈다. 여기가 보호구역이라고는 하나 인간의 체취가 여기까지 스며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뙤약볕 아래 도로를 보수공사하는 인부가 땀을 뻘뻘 흘리며 그늘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이곳 늪지를 시멘트 길이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도, 이를 위해 이와 같은 더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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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습지 "모래벌(沙旨浦)" : 사막과 오아시스여행/2019 한여름 창녕 2019. 7. 19. 00:32
사지포(모래벌)는 눈앞에 길이 보여도 무엇이 맞는 길인지 알 수 없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그야말로 길 자체가 보이지 않아 느끼는 두려움 모두를 경험하게 한 곳이었다. 딱따구리가 먹잇감을 찾아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의 적막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길의 오른편으로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맹그로브숲만큼 열대림은 아니지만 활엽수들이 물가와 뒤섞여 자라나고 있었다. 어디선가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격렬하게 났는데, 꿩이 황망히 날아가는 그런 소리는 아니었고 네 발 달린 짐승이 내는 소리였던 것 같은데 어슴푸레한 윤곽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우포늪 가장자리를 따라 쭉 걸어본 결과 사지포를 둘러보는 것은 초행자로서는 대단히 고생스러운 일이다. 안내지도를 보아도 사지포의 끝지점이라 할 수 있는 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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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습지 "소벌(牛浦)" : 뻐꾸기 울음을 벗삼아..여행/2019 한여름 창녕 2019. 7. 10. 01:01
창녕으로 가는 길은 괴로울 만큼 지루했다. 늘 그렇듯 금요일 저녁 수도권 고속도로의 교통상황은 좋지가 않다. 게다가 약간의 판단 착오가 겹쳐 경유지인 대구까지 가는 시간을 과소평가했다. 대구에 도착할 거라 예상했던 밤 9시 반, 내가 탄 버스는 괴산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했다. 버스에 내려 깊이 한숨을 돌리니 한여름의 습기가 무자비하게 목청으로 밀려든다. 경상도 지방을 갈 때는 대개 그러했던 것처럼 기차를 이용했어야 한 건데, 에어컨 바람이 빵빵한 버스 안은 오히려 답답하기만 하다. 창녕행을 얼마나 머릿속으로 그려 왔던가. 늪의 이미지는 이내 땅거미가 지는 고속도로의 풍경과 맞닿았다. 그리고 잠시 심해(深海)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내가 탄 버스는 사실 땅 위가 아니라 바다 밑을 미끄러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