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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습지 "나무벌(木浦)" 좁은 길에서 큰 길로여행/2019 한여름 창녕 2019. 8. 8. 00:19
주매제방에서 목포(木浦)로 빠져나가는 길에는 잠시 길을 잃었다. 약간의 지름길을 택하려다 되려 길을 잃고 만 것이다. 늪지 가장자리로 훤히 난 길 대신 숲속 샛길을 고른 것이다. 뒤늦게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미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했던 것처럼 다시 원지점으로 복귀해야만 했다. 카페에서 원기를 충전한 뒤로는 대단히 무미건조하다 싶을만큼 전투적으로 트레킹을 하기 시작했다.
원지점으로 되돌아나오니 건강원들이 두어 군데 눈에 띈다. 여기가 보호구역이라고는 하나 인간의 체취가 여기까지 스며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뙤약볕 아래 도로를 보수공사하는 인부가 땀을 뻘뻘 흘리며 그늘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이곳 늪지를 시멘트 길이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도, 이를 위해 이와 같은 더위에 인부가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도 어딘가 조화롭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더해 따오기 복원를 홍보하기 위해 곳곳에 설치된 현수막도 어쩐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오후시간 목포(木浦)의 동편은 서(西)로 저물어가는 해를 맞바로 받기 때문에 내리쬐는 태양에 괴롭기까지 하다. 반면 우만제방을 지나 목포 서편으로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산그늘이 든든히 자리하고 있어 움직이는 것이 수월할 뿐만 아니라, 바로 지나왔던 맞은편 풍경이 햇살을 가득 담고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에도 나쁘지 않다.
다소 넓고 곧은 길을 행군을 하듯 속력을 내어 걷는다. 늪은 마치 진녹색 밑바탕을 끌로 마구 짓이겨놓은 것처럼 거친 표면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그러한 표면 위에 마치 흰옷을 입고 허리를 숙여 일하는 농부들처럼 백로들이 긴 목으로 먹이를 찾아 늪 아래를 굽어본다. 사지포(沙旨浦) 초입에서 아기자기한 늪을 마주할 때까지만 해도 과장을 보태어 모네의 <수련>을 머릿속으로 그렸다면, 목포(木浦)에서 바라다보이는 이 풍경은 존재의 이유를 헤아리기까지 해석할 시간을 요구하는 현대미술 작품과도 같았다.
걸음을 매우 서두른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을 단축했다. 이미 완주까지 3시간 30분이라던 공원 안내에서는 벗어난지 오래되었지만, 어쨌든 6시 20분 마지막 차를 타는 데는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으니 쪽지벌에서 생각지도 않은 난관에 마주친 것이다.
어쨌든 쪽지벌로 접어들면서 바뀌어 가는 풍경을 볼 때까지는 좋았다. 가까운 듯 멀리서 그늘을 넓게 드리우며 관목(灌木)처럼 자라나는 나무들은 풍경에 싱그러움을 더했다. 저 나무들은 굴곡진 이곳의 역사를 견뎌가며 도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인가 생각하며, 다시 이곳에 나 홀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두려움 같은 것(畏)을 느꼈다. 그나저나 여기는 공원을 통째로 전세를 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가끔 내 옆을 지나가는 지프차들밖에는.
마음 편히 들어선 쪽지벌에서 트레킹을 슬슬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전투적인 트레킹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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