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의학은 유기체의 자연적 반응에 대해 일단 의심하는 태도를 취한다. 의심은 반응이라는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반응이 처음에 적절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충분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이 의심은 개입하려는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촉진시킨다. ―p.20
히포크라테스주의는 자연의 힘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비-히포크라테스적 의학은 그 힘의 방향을 돌림으로써 그 한계를 뒤로 물릴 수 있다. 오늘날 무지는 자연에 속하지 않는 것을 자연에 요청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의술은 자연의 변증법이다. ―p.21
의학이 진단의 근거를 더 이상 자발적 증상에 대한 관찰에 두지 않고 유발된 징후에 대한 검사에 둔 순간부터, 환자와 의사 각자가 자연에 대해 가지던 관계가 전도되었다. ―p.26
엄밀히 말해 살아 있는 것들 가운데 완전한 것은 없다. …오늘날 생명 전 단계의(prébiotique) 화학진화라 부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유기체의 역사적 연쇄는 단순히 생존하는 것 이상의 생명체가 되기에 부족한 존재들의 연쇄, 다시 말해 생존할 가능성은 있으나 전적으로 생존에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는 존재들의 연쇄다. 죽음은 생명 안에 들어 있으며, 질병이 그 표식이다. ―p.41
어원에 따르면 일(travail)은 고통(tourment)이고 고문(torture)이다. 고문은 드러냄을 얻기 위해 가해진 고통이다. 질병은 생명체가, 혹은 인간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존재임을 시인하게 강제하는 생명의 도구다. ―p.42
몸은 독특한 존재다. 왜냐하면 몸의 건강은 몸을 이루는 능력들의 성질을 표현하며, 살아 있는 몸은 부과된 과업 아래에서, 따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환경에 노출되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인간의 몸은 이러한 능력들과 그 실행, 그리고 그 한계를 평가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존재가 가진 능력들의 총체다. ―p.53
“철학은 질문하는 자가 자신이 던지는 질문에 의해 문제시되는 그러한 질문들의 총체다.” ―p.61
생리학자의 과학은 이 선험을 복수의 후천적(a posteriori) 상수로 분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상수에 대해 질병은 평균에 따라 결정된 기준을 넘어서는 편차를 가진 변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주체의 모든 대처 능력을 가능 조건들에 대한 객관적 분석으로 대체하는 것은 언어의 지위를 거부하는 표현양식을 언어로 대체하는 것이다. —p.72~73
인간의 질병은 단순히 인간의 육체적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 역사의 드라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의 실존이자 생성하는 현존재(être-là)로 목적에 사로잡히거나 사전에 명령받지 않는다. —p.78
치유를 배운다는 것은 오늘의 희망과 종국의 실패 사이의 모순을 인정하기를 배우는 것이다. 오늘의 희망에 대해 ‘아니오’를 말하지 않으면서. 그것은 지성인가 아니면 단순함인가? —p.86~87
유기체는 지극히 예외적인 존재양식이다. 엄밀히 말해 거기에는 그 실존과 이상형 사이, 그 실존과 법칙 혹은 규범 사이 간극이 없다. 어떤 유기체가 존재하는 순간부터, 생존하는 순간부터 유기체는 가능태다. …그 실존의 규범 혹은 법칙은 유기체의 실존 자체에 주어져있다. 따라서 살아 있는 유기체의 경우, …이 유기체가 손상되거나 병들었을 때 회복시켜야 하는 규범은 조금도 모호하지 않다. …그러나 사회와 사회적 혼란, 사회적 장애의 실존은 해악과 개혁 사이에 완전히 다른 관계가 나타나게 한다. 왜냐하면 사회에 대해 사람들이 토론하는 것은 사회의 이상적인 상태나 그 규범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여기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유기체의 목적성은 유기체 내부에 있다. 따라서 회복시켜야 할 이상은 유기체 그 자체다. 사회의 목적성은 정확히 말해 인간 존재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자 이성이 자신에게 제기하는 근본적 문제 중 하나다. …때로, 혹은 자주 모호한 것은 장애(désordre)의 본질이다. 반대로 사회적 시각의 관점에서는 무엇이 정상적 기능인가보다는 무엇이 악용, 혼란, 해악인가가 훨씬 분명하다. …사회적 차원에서 광기가 이성보다 더 잘 구별되는 반면, 유기체 차원에서는 건강이 질병의 본질보다 더 잘 구별되고 명백하다. —p.93~95
유기체의 모든 부분은 변함없이 존재하며 그들 상호 간에 항구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유기체의 고유성은 그것이 하나의 전체로서 살아 있다는 것이며 하나의 전체로서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유기체 안에 조절 장치나 조절 기전이 총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통합성이 유지되며 전체로서 유기체가 지속하게 된다. —p.96
하나의 경향성은 다른 경향성을 압도한다. 그러나 그 경향성이 일종의 절정에 도달하면, 이번에는 그 반대의 경향성이 펼쳐질 것이다. …사회는 유기체와 같이 자기보존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그러나 사회는 결국 자신을 넘어서서 인류로 나아가고자 한다. 물질을 가로지르는 이러한 도약은 창조의 무한한 흐름 속에서 보편적 실존을 수반한다. —p.102~103
인간 사회는 인간이라는 종이 아니다. …따라서 사회는 개체도 아니고 종도 아닌 애매한 유적 존재로서 살아 있기도 하지만 기계이기도 하다. 사회 자체가 자신의 목적이 아니므로 사회는 단지 하나의 수단을 표상한다. 사회는 도구다. 따라서 사회는 유기체는 아니지만 조절을 전제로 하고 그것을 요청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회에는 자기조절이 없다. …사회의 조절은 항상 덧붙여진 것이고 항상 일시적인 것이다. —p.104
지혜와 영웅주의는 상호침투가 불가능하다. 지혜가 있는 곳에 영웅주의는 불필요하며, 영웅주의가 등장하는 것은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p.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