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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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전쟁(1954-1962)일상/book 2023. 12. 28. 10:23
가톨릭의 이런 적극적 행동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레지스탕스의 냄새를 맡게 된다. 알제리전쟁이 발발한 시점은 대독항쟁으로부터 10년도 안 된 시기였고 저항의 정신은 부식되지 않았었다. 프랑스인 다수가 레지스탕스에 참여한 것은 아닐지라도 대독저항이 프랑스 현대사와 지식인의 사고에 미친 영향은 심대하다. 이는 레지스탕스를 도운 민중이 매우 적었다는 사실로도 희석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제리전쟁에 대한 프랑스 교회의 비판은 알제리 자체가 그 원천이었다. 오랫동안 식민지와의 깊은 연관으로 갖가지 경험의 보고(寶庫)가 된 식민지는 교회의 존재를 새삼 되새기게 했다. 전대미문의 세계전쟁 직후에 가톨릭의 신자나 의례가 퇴조하는 상황이 되자 교회는 오히려 민중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식민지인은 민중 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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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冒瀆)일상/book 2023. 10. 23. 09:02
예전에 간쑤성 일대를 여행하면서 눈에 담았던 풍경을 떠올리면서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 박완서의 글은 언제 읽어도 좋고, 아낌없이 담긴 티베트의 풍경사진은 활자를 읽는 것만큼이나 공들여 한 페이지를 묵시하게 만든다. 이 책은 원래부터 읽어두려고 일찍이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인데, 최근 S 누나의 추천을 받아 마침내 결제를 했다. S 누나가 읽고 싶으면 빌려줄 테니 언제든 말하라고 했지만, 늘 그렇듯 내 책 한 권을 소장하는 게 더 좋다. 노령으로 티베트에 여행을 가 고산증세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상태로 여행기를 남긴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느껴지는데, 그 글이 따뜻하고 다감해서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모독(冒瀆)'은 그 사전적 의미가 '말이나 행동으로 더럽혀 욕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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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II일상/book 2023. 10. 9. 11:51
는 작가의 인터뷰를 담은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는 다큐멘터리를 접하기 전부터 서점 매대에서 눈에 띄는 자리에 진열된 책이었지만, 제목이 지닌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읽기가 꺼려졌다. 내가 아는 그 파칭코라면 과연 그걸 소재로 어떻게 장편 소설을 풀어나가겠느냐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너무 피상적인 나머지, 소설의 전개를 그려볼 상상력이 빈곤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속 카리스마 넘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어쩐지 저런 작가의 글이라면 한번 읽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것만 다섯 세대가 등장하기 때문에 조각 같은 에피소드가 방대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파친코나 재일 교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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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I일상/book 2023. 9. 13. 08:27
"어딜 가든 사람들은 썩었어. 형편없는 사람들이지. 아주 나쁜 사람들을 보고 싶어? 평범한 사람을 상상 이상으로 성공시켜놓으면 돼.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법이거든." -p.74 조선인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 살 방도를 궁리해야 한다는 것이 조선인들이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었다. 가족을 지켜라, 자기 배를 채워라, 정신 바짝 차리고, 지도자들을 믿지 마라.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이 나라를 되찾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출세하게 해라. 적응해라. 지극히 간단하지 않은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는 애국자들이나 일본 편에 선 재수 없는 조선 놈들이 있는가 하면, 이곳에서나 또 다른 곳에서 그저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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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주를 증류하는 사람들일상/book 2023. 8. 31. 18:20
이 책은 반드시 죽음으로 이야기가 귀결되는 18개의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소설 속 죽음은 그 자체로 비참하고 극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상적인 것이기도 하다. 서사가 유려하거나 한 것은 아닌데, 등장인물들이 개성이 강하고 미시오네스 지방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서 상당히 몰입감을 느끼며 읽었다. 번역가의 열정이 느껴지기도 했던 책. 그는 깨달았다. 계속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과거의 흔적을 마지막까지 없애버리는 일은 피할 수도 없고 미룰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p.155 죽음. 세월이 흘러가면서 사람들은 몇 년에 걸쳐, 혹은 몇 달, 몇 주, 며칠에 걸친 준비 끝에 어느 날엔가 우리 차례가 와 죽음의 문턱 앞에 서게 되는 것을 수없이 생각하곤 한다. 그것은 숙명적인 법칙이며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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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존재일상/book 2023. 8. 22. 13:08
내가 나의 회한을 가라앉히는 데 사용했던 이 공식은 내 정신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플라톤을 칭송하던 나의 가장 훌륭한 사상으로부터 이상적인 유령을 만들어냈다. 나는 자유분방하고 삐뚤어지고 연약하면서도 내 존재의 영역 안에서 엄격하고 강직한 영혼, 부패할 수 없는 영혼을 발견하고 흡족해했다. 나는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 영원히 사랑받을 존재라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나의 모든 악습과 나의 모든 비참함과 모든 약점이 바로 이 환영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나는 모든 똑똑한 남자들의 꿈이 나를 위해서라도 현실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배신을 모르는 여자를 지속적으로 배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p.65 나는 그를 상상할 때마다 항상 그의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한 주인공을 떠올렸다. 그는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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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일상/book 2023. 8. 5. 12:03
내가 지금 내거는 건 다름 아닌 내 삶이다. 뜨거운 돌의 맛이 나는 삶, 바다의 숨결과 지금 울기 시작하는 매미들로 가득한삶. 미풍은 상쾌하고 하늘은 푸르다. 나는 꾸밈없이 이 삶을 사랑하며, 이 삶에 대해 자유로이 이야기하고 싶다. ……이 태양, 이 바다, 청춘으로 끓어오르는 내 심장, 소금 맛이 나는 내 몸, 노란색과 파란색 속에서 부드러움과 영광이 교차하는이 광활한 배경. 이것들을 정복하기 위해, 내 힘과 능력을 다해야 한다. 이곳의 모든 것이 나를 본연의 나 자신으로 내버려둔다. 나는 나의 어떤 부분도 포기하지 않고, 어떤 가면도 쓰지 않는다. 세상의 온갖 처세술 못지않은 생활의 기술을 다만끈기있게 익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p. 23~24 인간이 되는 것은 늘 쉽지 않다. 순수한 인간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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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일상/book 2023. 7. 30. 10:39
관대한 사람의 세상은 점점 넓어지지만 인색한 사람의 세상은 갈수록 좁아진다. 잠11:24 허식과 허세의 삶은 공허하지만 소박하고 담백한 삶은 충만하다. 잠13:7 지혜는 아름다운 집을 세우지만 미련함이 와서 그 집을 철저히 무너뜨린다. 잠14:1 어리석은 몽상가는 망상의 세계에서 살고 지혜로운 현실주의자는 발을 땅에 붙이고 산다. 잠14:18 무엇이 옳은지 아는 것은 마음속 깊은 물과 같고 지혜로운 사람은 내면에서 그 샘물을 길어 올린다. 잠20:5 지혜가 있어야 집을 짓고 명철이 있어야 집을 튼튼한 기초 위에 세운다. 잠24:3 네 원수가 굶주리고 있는 것을 보면 가서 점심을 사 주고 그가 목말라하면 음료수를 가져다주어라. 그는 네 관대함에 깜짝 놀랄 테고 하나님께서 너를 돌봐 주실 것이다. 잠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