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르켐은 현대 사회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잔혹한 대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낙오자들은 더 이상 불운 탓을 할 수 없으며, 내세에서 구원받으리라는 희망도 품을 수 없었다. —p. 15
우리는 계속해서 웃으라는,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즐겁게 지내라는, 휴일에는 환호성을 지르라는, 살아 있다는 사실에 열광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런 요구가 없어도 이미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현대는 우리가 가진 근본적인 권리인 울적한 권리를, 비생산적일 권리를, 퉁명스러울 권리를, 혼란스러워할 권리를 박탈했다. 행복이 표준 상태여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현대가 우리에게 저지를 핵심적인 부당 행위다. —p. 19
19세기 미술 평론가 존 러스킨은 특정 시대가 무엇을 진정으로 믿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지평선에서 가장 커다란 대상을 찾아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때 그 대상은 신을 의미했고, 시민 정부나 군주의 영광을 뜻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머릿기름이나 소화를 돕는 만병통치약을 뜻하기 십상이었다. —p. 44
밀란 쿤데라는 플로베르의 소설에 관해 쓴 한 에세이에서, 우둔함은 늘 존재했지만 인간은 지식이 결국 우둔함을 추방하리라는 희망을 통해 위로 받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신문의 부상으로 인해, 지식은 우둔함을 추방하기는커녕 땔감과 잘못된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끔찍한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은 현대에 출현한 가장 예상치 못한 인간상, 즉 박식한 바보를 낳고 말았다. —p. 84~85
우리 모두는 스스로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외되어 있다. 우리 영혼에 대한 지배권을 넘겨줘서는 안 되는 낯선 자들이 부당하게 형성한 정상성이라는 개념에 붙들려 있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새장의 창살을 흔들기 시작할 때 비로소 흥미로워지겠지만, 그런 일을 시도해 보라고 자신에게 허가를 내주는 경우는 좀체 없다. —p. 107
진정한 연인이라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바라지만, 이는 매우 두려운 일일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을 타인의 완벽함에 대한 경외심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사랑은 상대의 결점과 부족한 면을 인내하고 자비롭게 대하는 것이다. —p. 136
우리는 고독을 다룬 위대한 예술 작품 속 인물들의 후손이자 영혼의 쌍둥이라는 자부심을 품어야 한다. 우리가 고독한 이유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고귀한 정신을 갖고 있으며 사교성에 대한 이상이 높기 때문이라는 걸 믿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그저 현재 공동체가 제공하는 허울뿐인 증표를 받기보다는 차라리 집에 있는 걸 선호할 뿐이다. —p. 170
우리가 ‘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이 알아서 제공해 주지 않거나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보완하고자 기울이는 노력의 총합이다. 우리는 자연이 직접 관장하지 않는 특정한 고통과 쾌락을 각각 줄이고 늘리고자 노동한다. —p. 174~175
우리가 재산과 연봉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이 관심의 기반은 ‘물질주의’가 아니다. 그저 특정한 물질적 재화를 소유하는 것이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갈망하는 정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물건이나 직함이 아니다. 참으로 가슴 아프게도,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물질적 수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주목받는’ 느낌과 ‘인기 있는’ 느낌이다. —p. 184~185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부를 쌓을 수도 있고, 정계의 정상에 오를 수도 있으며, 히트곡을 쓸 수도 있다. 야심에 한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실패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저주스러운 평결인 양 느껴진다. 실패가 평범한 일로 보이던 시절에 실패하는 것과 성공이 보편적인 가능성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실패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p. 188
조용한 삶을 사는 이들은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사실 이런 것이야말로 존재의 중심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삶은 별다른 데 있지 않다. 삶이 곧 끝난다면 바로 이런 것들을 그리워했으리라. —p. 196
우리의 눈물은 완벽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것이자 겨우 붙들고 있는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는 얼음같이 찬 반짝이는 봉우리에서 머물 수 없다. 가끔 그곳에 오를 수는 있지만, 우리의 진정한 거주지는 저지대 습지와 안개 낀 숲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진흙투성이 발과, 아주 희귀한 경우이기는 해도 상처 입은 천사의 날개뿐이다. —p. 231
우리가 지속해서 존재한다는 감각 역시 생물학에 따르면 거의 근거가 없다. 우리는 자신을 시간을 거치며 지속되는 단일한 존재로 생각할지 모르나, 우리의 조각들은 계속해서 죽어가고 새로 만들어진다. 1분마다 3만 개의 세포가 사라진다. 세포의 평균 수명은 7년이다. 우리의 표면층은 매년 교체되며, 10년마다 골격 전체가 새로 만들어진다. 간은 2년마다 다시 만들어진다. 우리는 단지 계속해서 분해되고 힘들게 재조립되어야 하는 사람을 위한 사용 설명서일 뿐이다. —p.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