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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론―물리적 현실의 구원/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문학과지성사/김태환·이경진 譯
…현대 사진은 우리의 시지각을 크게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테크놀로지 시대의 인간 상황에 적응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의 두드러진 특질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자연 이미지에 일정한 틀을 제공해온 우리의 시점이 상대성을 띠게 되었다는 사시이다. 아주 단순하게 물리적 의미에서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아주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안정적인 인상 대신 변화하는 인상들의 연속이 지배적인 경험이 되었다. 지상의 풍경을 조감하는 일도 상당히 일반화되었다. 명백히 확인 가능한 외양으로 고정되어 있는 대상은 단 하나도 없다.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도 같은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우리는 믿음, 이념, 문화의 형태로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복합적 가치 체계들을 검토하고, 이를 비교 가능한 요소들로 쪼개어 분석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그러한 체계들이 내세우는 절대성은 약화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점점 더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정신적 구도에 둘러싸인다.
―p.39
…목격자, 관찰자, 이방인은 자신이 목도하게 된 사건 속에 얽혀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세 가지 유형의 주체다. 그들은 무엇이든 지각할 수 있다. 그들이 보는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대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기억에 물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사진사는 맹목적인 연인의 반대항에 놓여 있다. 그는 차별하지 않는 거울을 닮았다. 그는 카메라 렌즈와 동일하다. 사진은 프루스트가 보았듯이 완벽한 소외의 산물이다.
―p.50
중요한 것은 리얼리즘적 충실성과 조형적 열정의 “적합한” 배합이다. 그런데 이 배합에서는 조형적 경향이 아무리 강력하게 발전한다 해도 그 자체로 독립성을 지닐 수 없고 리얼리즘적 충실성의 종속변수로 머무를 뿐이다.
…감추어진 것을 밝혀주는 카메라의 힘 덕택에 사진작가는 탐험가의 면모를 지닌다. 완전히 충족되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그는 미개척의 개활지를 배회하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패턴을 포착하려 한다. 사지낙가는 자신의 존재를 부러내서 자유로운 창조물 속에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대상들의 본질 속에 용해시킨다. 이번에도, 프루스트는 옳다. 이 매체 속에서 선별성은 소외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p.52~53
사진도 그러하지만 영화에서 핵심적인 것은 매체가 다루는 모든 차원에서 영화감독의 조형적 에너지가 개입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물리적 실재의 이런저런 단면에서 받은 인상을 다큐멘터리적 양식 속에 제시하기도 하고, 환각이나 정신적 이미지를 스크린에 투영하거나 리드미컬한 패턴의 표현에 탐닉하기도 하며, 휴먼드라마적인 스토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모든 창조적 노력은 어ᄄᅠᆫ 식으로는 영화 매체의 주요 관심사인 가시적 세계를 다루는 데 도움이 되는 한에서 영화적 방식과 양립할 수 있다. 사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문제는 리얼리즘적 경향과 조형적 경향 사이의 “올바른” 균형이다. 그리고 두 경향 사이의 좋은 균형은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려 하지 않을 때, 후자가 전자의 주도권을 따라갈 때 달성될 수 있다.
―p.90
영화적으로 특별히 주목할 만한 세 번째 유형의 운동은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는 달리 상호 과년된 움직임들의 집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무운동성에 대한 대립으로서의 운동이다. 영화는 이러한 대조에 집중함으로써 객관적 운동이야말로 최상의 영화적 주제라는 것을 뚜렷하게 증명한다.
―p.99
내면의 전개 과정은 물질적 삶에서 솟아나 다시 그 맥락 속에 편입되기에, 오직 물질적 삶의 덤불을 통해 나아가는 영화만이 내면의 과정을 적합하게 서술할 수 있다는 신념.
―p.106
…영화는 온갖 시각적 데이터를 가리지 않고 재현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연출되지 않은 현실에 강하게 이끌린다. 그리고 여기서 연출에 관해 상호 연관된 두 명제가 도출된다. 첫째, 연출은 현실의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한에서 미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p.129
영화는 물리적 세계 너머를 가리킨다. 영화를 구성하는 숏 또는 숏의 조합이 다중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렇게 환기된 정신물리적 상응 관계의 부단한 흐름 때문에, 영화의 숏을 통해 암시되는 현실을 지칭하는 가장 적합한 이름은 “삶”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삶이라는 용어는 삶이 그 정서적, 지적 내용의 모태인 물질적 현상과 아직 탯줄이 끊어지지 않은 것처럼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 바로 그런 상태의 삶을 가리킨다.
―p.148
결코 고정시킬 수 없는 거리의 흐름은 언제나 두려운 불확실성과 매혹적인 흥분을 동반한다.
―p.151
할리우드는 자연스러운 매력을 마치 석유처럼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그것이 바로 스타 시스템이다. 스타 시스템은 경제적 타산뿐 아니라 많은 미국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내적 욕구에도 부응했다. 품행의 다양한 모델을 제공하고 이로써 간접적이나마 인간관계의 질서를 정립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 오래지 않아서 아직 위안을 주는 별이나 탈선한 자를 위협하는 별이 하늘에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이 나라의 문화에서는 중요한 기능이다.
―p.196
사실상 모든 책임감 있는 비평가들은 발화의 비중과 양을 축소하고 연극적 양식의 대사에서 자연스러운 진짜 삶 속의 발화로 옮겨 가는 것이 영화적 흥미를 고조시키는 길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러한 입장은 영화 매체의 “기본적 요구 조건”과 합치된다. 그 바탕에 있는 것은 영화에서 언어적 진술이 영상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에서 생성되어 나와야 하며, 역으로 언어가 이 흐름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다.
―p.209하지만 그것이 영화적 의미에서도 반드시 “좋은” 것일까? 동기화 방법의 매체 적합성은 당연히 그것의 도움으로 실현되는 서사의 “좋음”에 달려 있다. 그런데 서사는 언어적 부분을 통해 형성되는가, 시각적 부분을 통해 형성되는가?―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요인은 해당 맥락 안에서 말이 하는 역할이다.
―p.225
“소음은 지성을 건너뛰어 매우 깊은 곳에 있는 선천적인 어떤 것에 말을 건넨다.”
―p.240
……영화 숏이 생산해내는 온전한 현실이라는 환영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우리는 그 환영을 그것에 반대되는 환영으로 대체함으로써 영구화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마치 사랑이 증오로 변함으로써 용케도 지속되는 것처럼.
―p.257
……음악은 일반적인 소리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청중의 전반적인 지각 능력을 촉진하는 경향이 있다. ……음악은 이런 “상호 감각적인” 효과를 통해서 스크린 위의 창백한 무성 이미지들을 환하게 비춰줌으로써 그것들을 우리 곁에 머물게 한다.
―p.257~258
따라서 기묘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상의 전제에 따르면 시각 이미지는 무엇을 표현하든 동기화된 음악을 가시화하거나 최소한 병행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의 산출과 배열을 초래한 음악은 정작 배경 속에 갇혀버리고, 따라서 이미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구현하는 셈이 된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곤경에 빠진다. 그가 감상하고자 하는 숏들은 그 영감의 원천이 된 음악을 가리켜 보이지만, 그 음악 스스로는 장면으로부터 물러나버리기 때문이다.
―p.290
……그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단 한 번이라도 의식의 장악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자신의 정체성을 어둠 속에서 놓아버리는 것, 지금 스크린에서 시시각각 바뀌는 이미지 그대로를 감각적으로 흡수할 태세를 갖추고 그 이미지 속에 침잠하는 것이다.
―p.300
……억눌려 있는 현실도피 욕구는 갖가지 방식으로 잠재워질 수 있다. 그리하여 대중의 꿈과 영화의 내용 사이에 영원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대중영화는 저마다 대중의 욕망에 부합한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는 그 욕망에 내재된 모호성을 어쩔 수 없이 제거해버린다. 그런 영화들은 모두 이러한 욕망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여러 의미들 가운데 오직 한 가지 의미와 대면시킨다. 영화는 그러한 고유의 한정성 탓에 자신의 발생 원천인 모호한 것의 본성을 한정 짓고 마는 것이다.
―p.307~308
……“실제로 이제껏 단 한 번도 프랑스에서 이런 종류의 감수성을 만난 적이 없다. 수동적이고 사적이며, 최대한 덜 인본주의적이거나 덜 인도적이고, 산만하고 무질서하며 아메바처럼 자의식이 없고, 대상을 잃었거나 아니면 안개처럼 모든 대상에 붙어 있고 빗줄기처럼 대상을 관통하며, 견디기 어렵고 만족시키기 쉬우며 통제 불능이고, 마치 어수선한 꿈처럼 어디서나 도스토엡스키가 말한 사색,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안으로 쌓아만 가는 사색에 잠긴 모습이다.” 관객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사색하는 대상의 바닥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 적이 있던가? 그의 방랑에는 끝이 없다.
―p.310
……신매체의 매력은 부분적으로는 구매체의 지속적인 영향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p.313
……첫째, 현대 대중사회의 등장과 함께 개개인이 따라야 할 규범, 유대 관계, 가치의 총체를 확립한 믿음과 문화적 전통이 해체되었다. 규범적 유인의 침식이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유인의 모체로서의 삶, 그 저변에 깔린 기층으로서의 삶에 주목하게 만든 원인일 수 있다.
둘째, 우리는 ‘분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현대인의 의식 속에서 추상적인 사유가 구체적인 경험을 압도한다는 뜻이다.
―p.318
……관객은 보통 영화는 너무 길고 숏은 너무 짧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관객이 한편으로는 숏을 붙잡아두고 그 풍성함을 흠뻑 음미하려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호기심과 극적인 것에 대한 입맛을 충족시킬 만큼 숏을 해독하고 나면 그 즉시 그것을 놓아버리는 상반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p.327
……이야기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가는 변증법적 운동은 서로 모순되면서 타당한 두 가지 원리로 소급될 수 있다. 극의 억제라는 첫 번째 운동은 현시하는 카메라적 진술이 사진사의 감정적 무심함을 전제한다는 프루스트의 심오한 관찰과 맞아떨어진다. 프루스트가 말했듯이 사진은 소외의 산물이다. 이 말은 좋은 영화란 이야기의 매력과 합치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야기를 인정하는 두 번째 운동은, 사건을 인지하고 흡수하는 우리의 능력이 우리의 감정적인 참여를 통해서 강화된다는 취지로 말한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날카로운 소견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순수한 관조를 왜곡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저 요소들, 즉 관심, 감정, 강박, 정서적 편향이야말로 관조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단으로 보인다.”
―p.390~391
……모든 내용은 형식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모든 형식은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형식’과 ‘내용’이라는 개념이 예술 작품의 속성 자체에 기반을 둔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리고 이 개념들을 그 질료에 기초하여 깔끔하게 규정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은 오히려 이 개념들로서는 다행이라고 하겠다. 복합적이고 생생한 실체들의 경우 오히려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면 그 양 끝에 있던 모호한 의미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 차라리 정반대로 느슨하게 정의해야 그 시체들을 최대한 엄밀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의미론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개념을 만들겠다고 그 안에서 애매모호해 보이는 것들을 제거하려는 모든 시도가 전적으로 기만적이라는 말이다.
―p.393~394
……연극은 물리적 실재 차원의 이른바 ‘위에서’ 전개되지만 영화는 그 차원을 모조리 기록하려는 항상적인 노력 속에서 그 차원을 ‘관통하는’ 경향이 있다.
―p.418
……소설의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연속체를 카메라적 삶으로 탈바꿈하려는 모든 시도는 처음부터 좌절될 운명에 처해 있는 듯하다.
―p.434
……“실제 배경에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플롯을 부가하려면 그 배경의 현실성이 당신 이야기의 인위성을 더 강조해서 보여줄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p.472
우선 내용의 세 측면을 구분해보자. 첫 번째 측면은 내용의 영역(area)이다. 이야기가 실제 현실을 담는가? 아니면 환상의 영역에 속하는가? ……내용의 두 번째 측면은 이야기의 소재(subject matter)와 관련된다. 우리는 어떤 영화가 심리적 갈등이나 전쟁, 모험, 살인 사건 등을 그린다고 할 때, 또는 사이언스픽션 영화, 서부 영화, 뮤지컬 등처럼 이미 확립된 장르로 영화를 정의할 때 이 측면을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내용은 모티프들의 형식 속에서 드러난다. 그렇기에 전쟁 영화의 주요 모티프는 전시에 겪는 개개인들의 경험에 대한 관심일 수도 있고, 구긴 전체에게 닥친 전쟁의 비참함에 대한 묘사가 영웅적 행동에 대한 찬미일 수도 있으며, 민족들 간의 상호 이해를 위한 호소 등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p.475~476
……공생관계가 생기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삶의 흐름이 동시에 이와 연관된 모티프들의 모태가 된다. 삶의 흐름은 그 모티프들을 엮어내는 데 쓰이는 원재료인 것이다. 그것은 모티프이면서 태생적으로 영화적인 재료 또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으로 암시되는 테마를 다루는 영화들은 그 모티프의 두드러진 존재감에 힘입어 진정한 영화가 된다.
―p.497
……발레리에 따르면, 영화는 내적인 삶의 외적인 양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외적인 양상은 모방하고 내적인 삶은 폐기할 것은 강요한다. 삶은 겉모습과 모조품 속에서 스스로 소진되고, 따라서 지금까지 삶을 유일하게 가치 있게 만들었던 독특함을 상실한다. 그 귀결이 권태다. 환언하자면 발레리는 영화가 외부 세계에 보이는 각별한 관심 때문에 우리가 정신의 세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주장한다.
―p.516~517
오늘날 반지성적인 주장들이 비옥한 토양을 발견하게 된 것은 자유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발전들에 그 책임이 있다. 그 발전들이 야기한 심리적 결과는 어느 자유주의 저술가가 표현하듯 “한계도 방향도 없이 계속 표류하는 감각”이다. 그것은 마치 의미 있는 목적을 설정하여 지평의 경계를 확정해줄 통합적인 유인 동기가 부재하다는 불안이 우리 주위에 만연해 있는 느낌이다.
―p.524
……대부분의 과학은 일상적인 경험 대상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특정한 요소를 추상화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한다. 그리하여 대상들은 이런 방식으로 “그것들의 모든 개성과 진귀성”의 근거였던 속성들을 박탈당하게 된다.
……과학적 작업 방식이 점점 더 비의적으로 변해가는 한편, 그 작업 방식에 내재한 추상성은 결국 우리의 사고 습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영향들이 전파되는 주요 통로 중 하나는 당연히 기술이다. ……이 모든 산물은 그 목적이 무엇이든 여러 목적을 위해 사용 가능한 도구적 성격을 띤다. 그것들은 모두 기계 장치로서 특정한 추상적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의 본질은 그것들의 기능과 같다.
―p.527~528
……우리가 이 만연한 추상성을 극복하고 싶다면 과학이 나머지 세계에서 성공적으로 분리시켜버린 이러한 물질적 차원에 중저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과학적‧기술적 추상성은 우리의 정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조건 짓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추상성이 우리에게 물리적 현상들을 가리켜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현상들의 특질에서는 눈을 돌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처럼 주어져 있으나 주어져 있지 않은 현상들을 그것들의 구체성 속에서 파악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이 생긴다. ……현실의 가장 낮은 지층에 침투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p.538
……영화는 물리적 현실을 기록하고 탐구하면서,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 포의 도둑맞은 편지처럼 모든 사람의 시야에 있었기 때문에 결코 발견될 수 없었던 포착되기 어려운 세계를 드러낸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당연히 과학에 병합되고 있는 일상 세계의 연장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물리적 환경 그 자체다. 거리와 얼굴들, 기차역 등은 우리 눈앞에 놓여 있었지만 참으로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대부분 우리 눈에 들어오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왜 그런가?
―p.539~540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영화가 출연하기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 혹은 어쩌면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한다. 영화는 물질세계와 그것의 정신물리적 상응 관계를 함께 발견하도록 우리를 지원한다. ……영화는 물리적 현실의 구원을 장려하는 데 특별히 적합한 매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영화의 이미지는 우리가 사상 처음으로 물질적 살의 흐르을 이루는 대상과 사건들을 취할 수 있게 해준다.
―p.541
……아마도 페르세우스의 가장 큰 위업은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포를 극복하고 방패에 비친 그 머리의 상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리라. 바로 이것이 괴물의 머리를 벨 수 있었던 위업이 아니겠는가?
―p.552
Little Fugi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