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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거짓된 삶일상/book 2024. 10. 7. 13:24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분별력 있는 그들의 머릿속과 지식으로 가득한 그들의 몸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무엇이 그들을 파충류보다도 못한 믿을 수 없는 동물로 만들어버린 걸까.
―p. 185~186
그날 로베르토는 꽃잎으로 사랑 점을 칠 때처럼 한 단어를 수없이 반복해서 말했는데 그것은 바로 ‘죄책감’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기억만은 확실하다. 로베르토의 말을 들으니 그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로베르토는 죄책감의 의미를 바로잡고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죄책감이 흐트러진 존재의 조각들을 꿰어줄 바늘이라고 했다. 로베르토는 죄책감이 자기 스스로에 대한 날선 경각심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양심이 잠들지 못하게 들쑤시는 칼처럼 말이다.
―p. 256
“범죄소설에 나오는 추리와 비슷한 거야. 대신 종교에서 미스터리는 끝까지 풀리지 않아. 신앙심은 그런 거야.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은 존재를 밝히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거야.”
―p. 341
“신을 모독함으로써 그분께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어.”
―p. 342
사춘기 시절 나의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그것은 거대한 회색 블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간혹 혹처럼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는데 그곳은 녹색이나 붉은색이나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회색 블록에는 시간도, 날도, 달도, 연보도, 계절의 구분도 없었다. 더운가 하면 추위가 찾아왔고 비가 내리는가 하면 이내 햇볕이 내리쬐었다. 튀어나온부분에도 확실한 시간이 없었다. 날짜보다는 튀어나온 부분의 색깔이 더 중요했다. 색깔에 따라 특정한 감정을 나타내는데 그 색깔이 유지되는 기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p. 353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언제든 검은 베일이 드리워질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눈이 멀어서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고 부딪힐 수 있다. 어떠한 한계를 넘어가면 모든 사람이 앞을 못 보게 되는 걸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만 그러는 걸까. 인간의 본모습은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있을 때 드러나는 걸까, 아니면 증오나 사랑처럼 농도가 짙고 무거운 감정에 의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질 때 드러나는 것일까.
―p. 376
“정의로운 이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어. 그들의 정의는 힘이 거세된 것이니까.”
―p.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