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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간 속에서 점하는 위치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변화하는 내 자아를 가능한 한 완전히, 가능한 한 쓸모 있게 활용하고 싶었다. 비틀ㄹ비틀 서성이면서, 비몽사몽간에, 내가 세상에 진 빚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보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p.9
나는 내가 맹렬한 기세로 다음 사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이전 사람에게서 달아나고 있을 뿐이었다.
―p.27
한 친구는 이렇게 썼다. 금이 헬륨과 비슷하면서도 헬륨 이상의 무언가이듯, 결혼은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가 생기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그 이상의 무언가다. 전자(電子)의 내부 껍질이 꽉 차면 다음 전자가 다음 껍질을ㄹ 채우면서 결국 원소의 성질 자체를 바꿔버린다.
―p.30
서술 기억은 과학자들이 의미 기억이라고 칭하는 기억, 즉 맥락과는 무관한 사실과 관련된 기억과 일화 기억, 즉 특정 시간과 상황에 겪은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기억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p.33
부단히 애를 쓰면 아주 잠깐 동안은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죽을 때 내가 가진 의지가 소멸하지 않고 일종의 힘으로 재분배된다는 것. 모든 생명은 이런 힘을 품고 있고, 내가 삶에서 져야 할 막중한 책임은 한동안 이런 힘을 품고 있다가 놓아버리는 일밖에 없다는 것. 그러므로 임박한 죽음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p.46
누군가가 죽으면 그와 함께 얼마나 많은 감정이 사라지는지, 죽은 사람에게 인생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기록하기 위해 우리가 소수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생각해보면 꽤나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p.48
내 몸, 내 삶은 내 아이의 삶을 이루는 풍경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개체가 아니다. 나는 하나의 세상이다.
―p.59
나는 물리적인 세상에 대해 그야말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때의 기분을, 내 몸이 언어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전에 기억을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려 애쓰고 있었다.
―p.73
무언가를 지속하는 일에 내포된 본질적 문제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생의 어떤 시기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심사숙고해 온 바로 그 주제가 통째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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