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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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사회와 그 적들 I일상/book 2023. 7. 25. 18:32
플라톤의 형상 이론과 국가론은 정치철학에서 어김없이 다뤄지는 주제다. 나 또한 별 다른 의문 없이 흔히 국가에 대한 최초의 고찰로 일컬어지는 플라톤 철학을 기계적으로 공부한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칼 포퍼의 은 내게 생소하면서도 파격적이다. 칼 포퍼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기치 아래, 플라톤의 역사주의적·자연주의적 사유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데서 출발한다. 칼 포퍼에 따르면 플라톤의 철학은 사회과학에서 지나치게 숭앙(崇仰)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하지만 칼 포퍼가 볼 때 플라톤의 국가 철학은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결여하고 있다. 플라톤 철학은 역사주의와 탐미주의, 자연주의 등 과학적 사고와 무관한 방법론에 매몰된 나머지, '변화를 불경한 것으로, 정지를 신성한 것으로' 보는 관점을 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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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무니타스(Communitas)일상/book 2023. 7. 19. 00:12
는 오늘날 철학적 논의에서 도외시되고 있는 공동체 개념에 대해 사유하는 책으로, 두려움(홉스)-죄(루소)-법(칸트)-무아지경(하이데거)-경험(바타유)의 크게 다섯 가지 파트로 나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칸트와 하이데거 파트를 굉장히 어렵게 읽었다. 특히 법의 세계로 이어지어는 칸트 파트는 따라가지 못하고 헤매는 바람에 몇 번을 읽고 다시 읽어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이 다섯 꼭지의 논의는 공동체에 대해 서로 다른 접근법을 가지고 있지만, 상이한 공동체 이론을 따로따로 소개한다기보다는 홉스와 대비되는 바타유의 사유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빛깔의 공동체 철학을 스펙트럼처럼 펼쳐보인다고 할 것이다. 가장 먼저 으로 대표되는 홉스의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리바이어던을 구성하는 동력은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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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무들은일상/book 2023. 6. 23. 08:52
모처럼 최승자 시인의 수필집을 집어들었다. 최승자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을 읽은 적은 있지만, 수필집을 읽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최승자 시인의 시가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시집을 찾아보는 것보다 수필집이 더 홀가분하게 읽힐 것 같아 이 책을 고른 것도 있다. 손에 꼽을 만큼 시를 읽는 나로서는 아직까지 운율이라든가 압축이라든가 하는 것보다는 줄글이 더 편하기만 하다. 산문집을 포함해 그녀의 시는 대체로 인간 내면의 어둡고 공허한 부분을 다루고 있어서, 수필집도 내용이 무거우려나 궁금했는데 다행히 에 담긴 그녀의 일상은 평범하고 익살스럽기도 하다. 이 책은 부제(副題)가 말하듯이 작가가 아이오와에 가서 다른 3개월 남짓 다른 나라에서 온 작가들과 교류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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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과 은총일상/book 2023. 6. 4. 11:13
에서 시몬 베유에 관한 글귀를 발견하고 그녀의 글을 읽어보았다. 은 국내에 번역된 몇 안 되는 그녀의 글 중 하나인데, 메모에 가까운 그녀의 짧은 글들을 엮어놓은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있게끔 글들을 엮어놓았다고는 하지만, 기승전결이 있는 글은 아니라서 소제목을 보고 읽고싶은 부분을 그때그때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글의 특성상 그녀의 흩어진 생각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책의 제목인 에서 중력은 하강하는 에너지로써 상승하는 에너지인 은총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소개된다. 유한한 인간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하강으로 이끄는 에너지로써 중력과 같은 것들로는 인간의 유한한 상상력, 욕망, 악이 거론된다. 이런 것들은 중력과 같아서 인간과 가까운 곳에서 힘을 미치고 강력한 인력을 지닌다.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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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일상/book 2023. 5. 29. 10:16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혼돈이라는 막무가내인 힘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말이다.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p. 55, 57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p. 128 그리고 네가 말한 그 이야기 말이야. 너무나 소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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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일상/book 2023. 5. 21. 00:07
이놈의 나라가 정녕 무서웠다. 그들이 치가 떨리게 무서운 건 강력한 독재 때문도 막강한 인민군대 때문도 아니었다. 어떻게 그렇게 완변하고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뗄 수가 있느냐 말이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는 만고의 진리에 대해. 시민들이 당면한 굶주림의 공포 앞에 양식 대신 예술을 들이대며 즐기기를 강요하는 그들이 어찌 무섭지 않으랴. 차라리 독을 들이댔던들 그보다는 덜 무서웠을 것 같았다. 그건 적어도 인간임을 인정한 연후의 최악의 대접이었으니까. 살의도 인간끼리의 소통이다. 이건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어쩌자고 우리 식구는 이런 끔찍한 세상에 꼼짝 못하고 묶여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까. (p. 65~66) 장독대 옆에 서 있는 바짝 마른 나뭇가지에서 꽃망울이 부푸는 것을 보았다. 목련나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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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일상/book 2023. 5. 14. 10:04
네 근심 하나님의 어깨 위에 올려놓아라 그분께서 네 짐 지고 너를 도우시리라. 선한 이들이 쓰러져 파멸하는 것을, 그분 결코 그대로 두지 않으시리라. [시 55:22-23]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돌아오소서! 주님의 복되고 환한 얼굴빛 비춰 주소서.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받겠나이다. [시 80:19] 흰 구름과 먹구름이 그분을 둘러싸고, 공평과 정의 위에서 그분의 통치가 이루어진다. 불이 주님 앞에서 환히 빛나니 험준한 바위산 꼭대기에서 타오른다 그분의 번개가 번쩍 세상을 비추니, 깜짝 놀란 땅이 두려워 떤다. 산들이 하나님을 보고는 땅의 주님 앞에서 밀초처럼 녹아내린다. 하늘이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바로잡으실 것임을. 그대로 되는 것을 모두가 보리니, 참으로 영광스럽구나! [시 9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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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9일상/book 2023. 5. 2. 19:37
1894년 갑오경장은 형식이나마 천인(賤人)의 면천 조치를 취했고 이어 동학란이란 거센 바람도 신분제도, 그 오랜 폐습을 완화하는 데 이바지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뿌리 깊은 천인들의 애사(哀事)가 일조일석에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역인(驛人), 광대, 갖바치, 노비, 무당, 백정 등 이들은 변함없는 천시와 학대를 받는 것이었고, 양반이 상민을 대하는 것 이상으로 상민들은 그들 천민 위에 군림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백정이라면 거의 공포에 가까운 혐오로 대했으며 학대도 가장 격렬했었다. p. 199 “호랑이가 늑대를 잡아먹고 늑대는 고라니를 잡아먹고, 짐승들 세계와 뭐가 다르다 하겠습니까. 그것이 자연의 법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모두 헛된 꿈이지요. 인간이 인간을 다스린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