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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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일상/book 2023. 3. 19. 11:31
모가지가 긴 초병과 나뭇결이 고운 장롱과 이 조화롭던 윗방이 잃어버린 낙원의 한 장면처럼 가슴 뭉클하게 떠올랐다. 천 년을 내려온 것처럼 안정된 구도에 익숙해진 나의 심미안에 조약한 원색으로 처바른 반닫이는 너무나 생급스러웠다. —p.56 말세의 징후가 도처에 비죽거리고 있었다. 나하고 동갑내기를 멀리 시집보낸 소꿉동무 엄마가 나를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내 나이에 시집을 가다니. 그때 나는 겨우 열네 살이었다. 그러나 시골에선 조혼이 유행이었다. 극도의 식량난으로 딸 가진 집에선 한 식구라도 덜고 싶은데 정신대 문제까지 겹치니 하루빨리 치우는 게 수였고, 아들 가진 집에선 병정 내보내기 전에 손이라도 받아 놓고 싶어 했으니까. —p.179 개성에 미군이 들어온 건 삼팔선을 잘못 그어서 그렇게 된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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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향수(La Nostalgie heureuse)일상/book 2023. 1. 5. 10:37
C’est un phénomène qui m’arrive souvent, surtout avec les miens: je veux confier quelque chose qui me paraît important et le mécanisme se bloque. Ce n’est pas physique, il me reste de la voix. C’est de nature logique. Je suis assaillié par cette interrogation : « Pourquoi le dirais-je ? » —p. 19~20 Bien plus tard, j’ai découverte que celle-ci était méprisée en Occident, qu’il s’agissait d’une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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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일상/book 2022. 12. 5. 10:30
[욥 3:3~5] "내가 태어난 날아, 사라져라. 내가 잉태된 그 밤아. 없어져 버려라! 우주공간의 블랙홀처럼 되어 버려라. 위에 계신 하나님이 그날을 잊어 주셨으면! 그날을 책에서 지워버리셨으면! 내가 태어난 그날이 짙은 어둠 속에 묻히고 안개에 싸였으면! 밤이 그날을 삼켜 버렸다면! [욥 3:24~26] 저녁식사로 빵 대신 신음만 삼키다 식탁을 물리고 고통을 토해 낸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고 가장 무서워하던 일이 벌어졌다. 쉼이 산산조각 나고, 평안이 깨졌다. 내게 더 이상 안식은 없다. 죽음이 내 삶을 덮쳤구나." [욥 21:17~18] 악한 자들이 실패하거나 재앙을 겪거나 응분의 벌을 받는 일이 몇 번이나 있던가? 불운을 겪는 경우는 또 몇 번이나 있던가? [욥 3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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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未完)의 제국 이야기일상/book 2022. 11. 25. 17:39
한때 합스부르크 제국이라 불렸던 정체(政體)는 오늘날의 독일이나 미국만큼의 연방제로도 발달하지 못한, 아주 느슨한 형태의 나라였다. 책에 나온 문장대로, 소련의 붕괴가 러시아 역사에서 책의 한 챕터가 종료되었다는 걸 의미했다면, 양차대전 사이에 공중분해된 합스부르크의 역사는 한 권의 책 자체가 완결되었다는 걸 의미했다. 난립한 제후국의 권한이 고스란히 유지되었던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체제가 도저히 단일한 정치적 성격으로 묶일 수 없는 괴물같은 실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합스부르크 제국 또한 끝끝내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실패한다. 그럼에도 1814~1815년 빈 회의를 거치며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냈던 한 국가가 불과 100년 사이에 지도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은 대단한 아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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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猫を捨てる)일상/book 2022. 11. 14. 17:26
얼마전 서점을 헤매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현장에서 곧바로 책을 구매했다. 채 100페이지가 안 되는 에세이고 행간까지 넓어서 정말 부담없이 읽었다. 게다가 대만 출신 작가 가오옌(高妍)의 삽화가 들어가 있어서 읽는 재미뿐 아니라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 짧은 에세이는 제목 그대로 아버지와 바닷가에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유년 시절의 기억과 함께 출발한다. 몇 번인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를 읽었을 때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하다는 걸 짐작하기는 했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러질 대로 틀어진 채로 평생에 걸쳐 나아지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하면서, 그런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부채의식처럼 마음 한켠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고 말한다. 무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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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일상/book 2022. 11. 11. 23:25
……본래 하비히츠부르크는 매와 무관했을 것이고, 대신에 얕은 여울이나 항구를 가리키는 독일어인 Hafen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합스부르크라는 이름은 조상의 뿌리를 기억하는 일이 유행하던 18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나타났고, 실러의 유명한 역사 담시 「합스부르크 백작」에 힘입어 널리 통용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생물학적 행운과 또 다른 포틴브라스 효과의 순간을 만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생존이 전부인 때에 누가 승리를 이야기하는가?”라고 물었다. 초창기 합스부르크 가문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생존이었다. ……당초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를 통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몰랐겠지만,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을 통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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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일상/book 2022. 11. 8. 12:08
……하찮은 내 목숨 열개와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백수, 젊고 아름다운 그 아이의 죽음은 그 부당한 의심에 대한 벌이었다. 아, 평생의 후회로도 그 죄를 씻을 수 없구나. 슬프다. 슬프고 슬프구나. 내가 궁금해했던 것을 지금 곧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이란 죽을 때 등잔에 기름이 다해 불이 꺼지듯, 방 안의 전등이 꺼져 암흑에 잠기는 것처럼 의식이 스러지면 모든 것이 그만인 것인가. 그럴 것이다. 그러하리라. —p. 163 지금 내 주위에는 얼빠진 망령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운 좋게 이곳을 빠져나간다 해도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짐 덩어리, 암 덩어리가 되어서 부적응자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평생,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한평생을 그저 주어진 시간을 흘려보내는 미물처럼. 이들은 패배자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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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일상/book 2022. 10. 29. 21:48
[스 10:2-4] 엘람 가문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대표로 에스라에게 말했다. “우리가 주변 민족의 외국인 여자들과 결혼하여 우리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이스라엘에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모든 외국인 아내와 그 자녀들을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가르침대로 따르겠습니다. 계시에 명시되어 있으니 그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에스라여, 이제 일어나십시오. 우리가 뒤를 따를 테니 앞장서십시오. 물러나지 마십시오.” [느 4:15-18] 원수들은 우리가 그들의 계략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 계략을 무산시키셨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성벽으로 돌아가 작업에 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