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이 지역의 날씨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와이피오 계곡으로 향하는 길에는 가는 비가 흩뿌렸다 멈추기를 반복했고, 덩달아 와이퍼를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빅 아일랜드의 대부분 도로는 왕복 2차선이다. 어쩌다 도로가 넓어져도 3차선을 넘지 않는다. 때문에 앞차를 추월하는 게 까다롭다. 물론 나는 추월 당하는 편이다.
아직도 마일로 표기된 이곳의 속도 단위가 익숙하지 않다. 우회전 신호를 받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사륜구동을 빌렸기 때문에 오르막길에서 힘있게 앞으로 나간다는 장점을 제외하면, 수동으로 조작해야 하는 여러 편의장치들 또한 불편하게 느껴진다. 도로가 관통하는 우거진 숲과 오른편으로 펼쳐진 태평양이 이따금 내가 전혀 다른 공간에 들어와 있음을 상기시킨다.
호노카아 지역을 지나 와이피오 계곡 전망대에 들어선다. 나는 계획을 짜며 숱하게 사진으로 봐왔던 와이피오 계곡보다는 계곡이 사이에 두고 있는 저지대에 시선이 더욱 쏠렸다. 하와이섬을 통치한 왕들이 관장해 왔다는 신성한 장소. 아주 짙은 빛을 띄는 저지대가 원초적 향수를 일깨웠다.
방풍림을 넘으면 곧장 좁다랗게 뻗은 새까만 해안이 태평양의 파도를 무방비로 응수하고 있다. 관념 속에서 땅은 언제나 단단하고 고정되어 있지만, 물은 쉼없이 출렁이고 형상을 바꾼다. 그렇지만 자연이란 신묘해서 이 둘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이 둘은 서로 조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