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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점(the point)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29. 14:42
이튿날 날씨가 걱정되어 밤잠을 설쳤던 나흘차, 걱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코나가 자리한 빅 아일랜드의 서부와 달리, 힐로를 중심으로 하는 동부 일대는 기후가 습윤하고 국지적인 호우가 자주 내린다. 나는 이른 아침 실시간 레이더 기상지도를 보면서 광대한 화산 공원 위에 커다란 이불처럼 드리운 빨간 구름띠를 확인했다. 구름띠는 강우량이 높은 지점일수록 짙은 빨강을 띠었다. 이 구름띠는 해안에 이르면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는 희한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화산 공원의 해안가 일대라면 괜찮을까 싶어 아침에 숙소를 나섰지만, 아니나 다를까 내륙의 호우로 인해 해안으로 통하는 진입로가 봉쇄되어 있었다. 우비를 쓰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트레킹을 떠나는 젊은 서양인들을 차 안에서 보고 있자니, 으스스하고 질리는 기분마저 든다. 뭐든지 끝까지 파헤치고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하려는 것이 저들의 저런 정서일까.대안은 세워놨던지라, 우리는 조금 멀더라도 카우(Ka’u) 지역의 끝자락에 자리한 사우스 포인트를 가보기로 했다. 화산 공원을 우회하는 데 나절의 대부분을 보낸 우리는, 중간에 날후(Naalehu) 지역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다시 출발한 길 위에서, 저 멀리 바다는 보이지만 차가 달려도 달려도 손에 잡히지 않을 듯한 지루한 길이 나타나고 또 나타났다.
마침내 도착한 사우스 포인트 바닷가에는 파도에 휩쓸려온 죽은 산호초가 커다란 더미를 이루고 있었고, 검게 그을린 현지인들이 그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사우스 포인트. 말 그대로 남쪽의 끝, 미국의 최남단이다. 오솔길을 따라 남쪽 끝에 도달한 나는 더 이상 발을 들일 수 없는 장소에서 오래된 언덕을 닮은 옛 원주민의 묘역을 마주했다.지금은 망자를 기억하는 공간이 되었지만, 사우스 포인트는 폴리네시아인이 처음으로 하와이에 발을 내딛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금은 원주민으로 통칭되는 옛사람들에게도 수천 년 전 이 곳은 낯선 땅, 미지의 땅이었을 것이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언제나 새로울 것이며 언제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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