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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대흥사(大興寺)여행/2023 늦여름 목포 2023. 8. 30. 18:12
두륜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흥사는 땅끝마을로부터 다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거리에 있다. 나는 땅끝마을을 오면서 이용했던 도로를 다시 이용하는 것이 싫어 이번에는 강진 방면으로 길을 타고 두륜산으로 향했다. 오전에 만난 카페의 주인 아저씨가 도솔암의 경치가 참 볼 만하다고 추천해주셨었는데, 짧은 일정상 도솔암을 들를 엄두는 내지 못했다. 더위가 점점 수그러드는 시간대가 되어 대흥사 입구에 도착했고, 일주문부터 길을 나서는데 계곡에 삼삼오오 모여 찬물에 발을 담그거나 가재를 잡는 사람들의 풍경이 어딘가 이국적이기도 하고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야영이 불가능한 지역이기 때문에 오로지 피서만을 목적으로 이곳 장춘계곡까지 들어온 사람들. 바다가 코앞인 지역인데도 그늘진 계곡에서 더위를 나는 모습이 어쩌면 더 합당해 보이기도 했다.
대흥사는 대웅보전이 자리한 북원 일대와 표충사, 부도전 일대를 제외하면 대체로 새로 지어진 건물이 많아 오랜 시간이 주는 아취(雅趣)가 충분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사찰에서 언급을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은, 해탈문을 통과하면서 마주하는 두륜산의 독특한 능선이다. 산골짜기를 따라 삐뚤빼뚤 정렬된 사찰 건물들 너머로, 보랏빛을 띠는 여덟개의 바위봉우리가 버티고 서 있는 두륜산 꼭대기의 능선. 오른쪽으로 두륜산을 두고 나는 남원의 500년 된 느릅나무를 지나 금당천을 건너 대웅전이 자리한 북원으로 들어섰다.
대웅보전에는 원교 이광사가 썼다고 전해지는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앞에는 노령의 야자수가 비스듬히 서 있어 남해의 어느 사찰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사람 한 명 없는 한적한 공간에서 나는 내면으로부터 조용한 자유를 느낀다. 산 아래 마음을 내려놓을 한켠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비록 따가운 볕은 나를 처마 밑이나 나무 그늘로 내몰지만, 일상에서 사람과 일에 내쫓기던 것에 비하면 평화스럽기만 하다. 다시 금당천을 건너 남원으로 되돌아온 나는, 서산대사의 공적을 기리는 사당인 표충사까지 둘러보는 것으로 이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여행 > 2023 늦여름 목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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