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목포로 내려올 때는 목포 여행을 겸해 신안 일대를 쭉 드라이브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신안 일대의 명소를 검색해보니 갈 만한 지점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실제 구경갈 만한 곳들은 정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 예를 들어 가거도나 홍도 같은 곳이었는데, 이번처럼 짧은 일정에 배를 탄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목포를 기반으로 둘러볼 만한 주변 지역이 꽤 있어서, 해남과 진도, 강진 중에 어딜 갈 만한 곳을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해남이 낙점되었다.
해남을 여행한다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땅끝마을일 것이다. 나는 땅끝마을에 가기에 앞서 송호해수욕장의 한 카페에서 목을 축이기로 했다. 숭늉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단 카페였는데, 주차가 되지 않는 카페 앞 지점까지 걸어들어가보니 게스트하우스를 겸하는 곳이었다. 병원을 다녀오느라 개점시간이 10분 정도 늦어질 것 같다는 주인아저씨는 그러면서도 내게 그늘진 자리를 잡아주려고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제주와 양양에서 숙박업을 운영했었다는 아저씨는 지금은 해남에 자리를 잡아 일을 하고 있지만, 누가 봐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천생 부산사나이였다. 나는 쑥이 가미된 음료를 하나 시켜놓고 주인 아저씨와 수다를 떨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지금은 내부 수리중이어서 숙박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가게 안에 진열된 잡다한 장식품과 리플렛으로 보아 이곳에 묵을 일이 있다면 심심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호해수욕장은 해남의 알려진 해수욕장이라는 명성에 비해 백사장이 깨끗하도 않았고 행락객이 많지도 않았다. 나는 인근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10분 여 거리의 땅끝마을로 향했다. 땅끝마을이라는 명칭은 미디어에서나 간간이 접했던 것 같은데 막상 '땅끝'이라는 지점에 오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 동그란 지구에서 어떻게 처음과 끝을 매길 수 있겠냐마는, 적어도 한반도만 국한해서 봤을 때 가장 최남단은 해남 땅끝마을이 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목포를 벗어난 해남은 생각보다 넓은 지역이어서 땅끝마을에 도착하는 데만도 두 시간 가량 소요되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해남은 바다만 넓은 게 아니라 내륙 지역도 넓은 지역이고, 그만큼 해산물뿐만 아니라 농산물 산출도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말 그래도 '땅끝' 지점을 가기 위해서는 땅끝마을 안에서도 사자봉 인근의 산책로를 따라 20~30분여를 더 들어가야 한다. 늦여름도 끝을 향해 가는 계절 속에서 매미들은 처절하게 구애의 노래를 쥐어짜낸다. 팽나무가 제법 많이 심어진 산책로를 지나고, 뒤이어 참나무가 가득한 산책로를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한반도의 최남단 지역이 나온다. 이곳을 기점으로 서해와 남해가 나뉜다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임의의 기준이기는 하겠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남파랑길을 더 초과하여 서파랑길까지 걸어본다. 그리고 아담한 연리지를 발견한 지점에서 다시 땅끝지점으로 되돌아왔다.
원래는 사자봉 전망대를 오르진 않고 땅끝 지점을 순례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다. 시계(視界)가 좋지 않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아쉬움이 들어 땀을 뻘뻘 흘리며 전망대까지 올라갔고, 역시나 열기로 인해 대기가 산란된 탓인지 해가 쨍쨍한데도 바다가 희뿌옇게 허공과 뒤섞였다. 윤선도의 거처였던 보길도의 위치만 간신히 확인하고, 내려올 때는 모노레일을 편도로 이용했다. 모노레일에서 바라다보이는 갈두항의 풍경이 시원해서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