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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다산초당(茶山草堂)여행/2023 늦여름 목포 2023. 9. 3. 11:17
짧은 목포 일정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한 끝에 가기로 마음먹은 곳은 강진군의 다산초당이다. 목포는 목포를 기점 삼아 주변 지역을 둘러보기 좋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이 일대가 넓어서 이동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다산초당을 가는 데에는 차로 1시간 여가 걸렸는데, 목포에 머무른 3일 중 날씨가 가장 좋아서 부족한 시간만 아니었다면 한적한 길가 아무곳에나 차를 세워두고 산과 들판, 바다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대기의 열기가 얼마나 강했는지, 산등성이의 몇 곱절은 되어 보이는 뭉게구름들이 기세 좋게 튀어오르고 있었다.
다산초당은 영덕의 월송정만큼이나 한적하고 고즈넉해서 마음이 느긋해지는 공간이었다. 정약용은 유배생활 11년간 이곳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집필했다. 지금도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들어와야 하는 이곳에서, 텔레비전도 없이, 지금처럼 쨍한 전기조명도 없이, 또 딱히 군것질할 것도 없이 생활하며 후대에 남을 책을 썼다는 것이 신기하다 못해 의아하기까지 한 공간이었다.
다산초당은 산을 타고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모습을 드러낸다. 알록달록한 단청 없이 검소하고 수수한 외관을 하고 있어, 초당을 지탱하는 창백한 나무기둥에서는 청빈함마저 느껴진다. 초당(草堂)이라는 말뜻 그대로 본디 초가 형태를 하고 있었을 건물은, 20세기 중엽이 되어 관리상의 편의를 위해 기와로 지붕을 이었다. 그래서 번듯한 기와 지붕이 얹혀져 있어도 사치스러움이 느껴지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초라해 보이지도 않는다.
산중(山中)이기만 한 것 같은 이곳에서도 강진 일대의 경치를 내려다볼 만한 곳이 있으니, 바로 천일각이다. 천일각에 올라서면 소나무와 누각으로 만들어진 액자 안에 강진만 풍경이 걸려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다산초당이 위치한 이쪽 비탈 아래로 너른 논과, 탐진강이 마침내 끝을 마주한 강진만, 그 너머로 월출산을 축소해 놓은 듯한 산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다. 땅끝에 굳게 버티고 선 산과 바다를 마주하면서, 우리나라에 참 많은 바다와 산이 있었는데도 소홀히 여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산초당의 왼쪽 샛길을 따라 올라가면, 여름벌레가 우글거리는 약수천 위로 정약용이 직접 정으로 새겼다고 알려진 '정석(丁石)'이란 글귀가 있다. 새겨진 글귀가 워낙 간소하고 우직해서, 어느새 정석(定石)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어쩌면 편리한 것은 최선이 아닐지 모른다. 종종 타자기도 없던 그 옛날에 책을 써내려간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을 해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200년 전의 사람들보다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고,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지만, 더 높은 생산성을 지니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찬찬히 시간을 들여야만 할 수 있는 것, 본 것을 또 한 번 들여다봐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월출산을 등대 삼아 운전하며 목포로 되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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