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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여행. 악어봉(鰐魚峰)여행/2023 초여름 고군산군도와 관아골 2023. 7. 13. 18:31
즉흥적으로 차를 렌트해 향한 곳은 충주호와 월악산 자락이 마주하는 한 카페다. 나는 3번 국도를 타고 시내를 빠져나와 36번 국도로 갈아탔다. 나의 정확한 행선지는 카페가 아닌 카페를 출발지점으로 하는 산길이다. 그 길을 통해 나는 악어봉이라고 불리는 조망이 좋은 야트막한 산등성이로 올라갈 것이다. 카페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산을 타고 싶었지만, 시간상 카페가 문닫을 시간이 가까워져 곧장 산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충주에서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해보다가 이곳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중앙탑 공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악어봉을 가보기로 했다. 그래도 충주까지 왔으니 충주호를 한번 보고 가야하지 않겠나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악어봉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정식 개통은 되어 있지 않은 듯 등산로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산길 자체가 국도에 바로 인접해 있다보니 달리는 차량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충주호가 시원하게 바라다보이는 지점까지 올라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소 산을 못 타는 편은 아니어서 오르는데 30분 정도가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악어봉에 오르면 지명 그대로 머리를 맞댄 악어 형상의 호숫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모습이 드글대는 악어떼라기보다는 차라리 악어의 이빨같다는 생각도 든다. 충주호를 에워싼 산자락들은 거대한 습기에 짓눌려 희뿌연 실루엣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런 풍경 안에서 나는 40여 년 전 수몰된 마을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나는 해가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저녁 여덞 시가 거의 다 되어서 산을 내려왔다. 해가 지평선에 걸리는 걸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지만, 남은 시간상 갈 길을 서둘러야 했다. 땅거미가 질 때 쯤 포개어진 산자락들은 짙은 어둠에 가라앉았고, 잔영을 투영하는 수면만이 점점 더 투명해졌다. 흑(黑)과 회(灰)가 어슷어슷 이지러지는 땅과 강의 형상이 수묵화의 선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나는 한여름을 열망하는 풀벌레들의 아우성을 뒤로 하고 걸음을 재촉하며 산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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