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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대장도(大長島)여행/2023 초여름 고군산군도와 관아골 2023. 6. 25. 20:06
이어서 내가 향한 곳은 대장봉이다. 나는 장자도에 차를 세우고 대장도로 들어갔다. 무녀도를 둘러볼 때부터 하늘에 짙은 구름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좋은 석양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이런 날씨라면 오히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름 카메라는 쨍하는 석양(빛이 과다한 사진)을 찍는 데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대장봉은 섬 한가운데 위치한 142m의 바위봉우리로 정상에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장자교를 떠나 대장도에 들어서면서 봉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 왼쪽으로는 구불길이라 하여 완만한 경사로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가파를 등산로가 있다. 으레 등산로가 그러하듯이 완만한 길은 체력을 비축하며 걸을 수 있는 대신 시간이 오래 소요되고, 가파른 길은 빠르게 정상에 도달할 수 있지만 급경사를 감내해야 한다. 섬 안에 등산로 안내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나는 멋모르고 구불길로 산을 올랐고, 내려올 때 지름길로 내려왔다. 다만 정상에 오른 사람들마다 이게 정말 142m가 맞느냐고 의문을 표할 만큼 구불길이라고 해서 쉬운 길은 아니었다.대장봉에 오르면 석양이 바라다보이는 방면으로 관리도(串里島)의 널따란 형상이 수평선의 상당분을 메운다. 한여름철에는 시선을 관리도의 오른쪽으로 더 틀어야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볼 수 있을 텐데, 이날은 구름이 가득했던 만큼 구름들의 엷은 틈바구니로 수평선을 넘어가는 태양이 라일락 빛깔처럼 희미한 흔적을 남겨놓고 있었다. 섬의 군락에서 외따로 놓인 것처럼 보이는 관리도에도 새하얀 불빛이 두어 개 점을 이루어 점등된 것을 보아 저 적막한 바닷가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그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오늘 거쳐온 여정을 한눈에 되짚어볼 수 있다. 시선으로부터 가까운 순서로 장자도, 선유도, 무녀도가 어깨동무한 듯이 나란히 줄을 서 있고, 저 멀리로는 비안도와 두리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해무 위로 두둥실 떠올라 있다. 석양의 선명한 빛을 받아보기도 전에 눈 앞에 내려다보이는 바위 섬들은 서서히 빛을 잃어간다. 멀리서부터 멀리서부터.
먼저 비안도와 두리도가 해무 뒤로 모습을 감추고, 가까이 선유도와 무녀도의 바위들도 이내 무서운 어둠에 속절없이 빛을 빼앗기고 만다. 부둣가에 떠오른 가로등과 영세한 상점가의 전등, 장자교의 조명만이 이 외로운 군도(群島) 위를 맴돈다. 시간상 해는 지평선 너머로 떨어졌을 것이고, 대장봉 정상에는 비박(Bivouac)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분주히 텐트를 세운다. 이들에게는 이튿날 다르게 펼쳐져 있을 이곳의 아침 풍경이 남아 있겠지만,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 지름길을 통해 해안가에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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