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날씨는 예측이 어렵다. 일전에 사전 답사차 영덕에 출장간 적이 있다. 공원을 둘러보는 동안 그곳에서 내가 만난 한 공무원은 날씨가 맑다고 해서 바다날씨가 반드시 좋은 건 아니라고 했다. 깃털구름 하나 없이 쾌청한 날이었다.
이번에 좌초된 울릉도 여행 계획은 그 날의 대화를 상기시켰다.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묵호항을 통해 도동항으로 들어가는 배편을 예약한 게 여행일로부터 한 달 전쯤. 동절기 막혀 있던 배편이 운항을 재개하는 시점이었다. 그러니까 울릉도 여행을 계획하게 된 건 아주 즉흥적이었다. 한번은 울릉도를 다녀온 친구가 섬에 공항이 들어서기 전에 그곳을 여행하라는 얘기를 했다. 공항이 들어서면 외지인들에 의해 평범해질 거라면서.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였다.
그 길로 다음날인가 배편을 예약했지만, 일정이 다가올수록 배가 출항할 수 있는지 아닌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일정이 가까워질 수록 계획했던 것이 명료해져야 하건만, 오히려 체감되는 불확실함이 커진다는 건 기묘한 일이었다. 결국 예약했던 숙박업소에서 여행일 전날 연락을 받았다. 울릉도로 들어오는 날은 파고가 괜찮지만, 울릉도에서 나가는 날은 배가 뜨기 어렵겠다고, 직장인이신 것 같아 연락 드렸다고. 기상악화로 인해 승선권과 렌트카 대여비용은 전액 환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숙박비는 절반밖에 돌려받지 못했다.
여행계획을 취소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건, 원래대로라면 도동항에서 묵호항으로 들어오기로 되어 있던 날이 되어서였다. 그날 동해 먼바다에는 파랑주의보가 내려졌다. 여행을 강행했다면, 복귀 일정에 차질이 생겨 아주 곤란했을 터였다. 이 모든 시뮬레이션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변덕스런 바다날씨가 빚어낸 것이기도 했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높은 파도를 보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다행이었다. 직접 높은 파도를 마주하는 상황이 닥쳤다면, 이미 골치가 아픈 일들이 전개되고 있었을 것이니.
자연의 위력 앞에 한없이 작은 존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경로, 역시 만만치 않은 울릉도 여행, 과 같은 상투적 문구들도 떠올랐다. 하지만 아마도 내가 느낀 것들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준비가 되어 있어도 때가 맞지 않으면 기회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 그 "때"라 함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알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은 내가 어찌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그건 나의 무력함도, 어떤 불확실성도, 감내해야 하는 고난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좌초된 울릉도 여행은 그렇게 내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기다림이었고, 기다린다 하여 기다리던 것이 나타날지도 알 수 없는 기다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