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계곡으로 향하는 이른 아침 날씨는 침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조석에 앉은 아버지는 30년도 더 전에 친구와 무릉계곡에 놀러 왔던 이야기를 하신다. 고속철도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을 당시에 버스에 버스를 갈아타고 또 버스를 타서 무릉계곡에 오는 데만 8시간은 꼬박 걸렸다는 이야기. 젊은 시절 함께 무릉계곡을 여행했던 친구 분은 근래 심혈관 문제로 몸 안에 스텐트를 심은 이후, 좋아하던 술을 멀리하고 있단다.
무릉계곡에 들어가기 위해 입장료는 냈지만, 방문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짧은 산책. 그마저도 산책 흉내라 해도 좋을 만큼 짧은 거닐기였다. 아버지는 정말 선명히 기억하는지 알 수 없지만, 입산 구역의 주차장과 오래된 건물, 경계의 구획을 보면서 옛 기억을 확인하신다.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나와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인지 헤아려보려 애썼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해해보려 했던 것은 뒤로 물러나는 듯하다.
4월까지도 강원도 산지에는 폭설이 내리곤 했던지라, 3월초 두타산에는 새하얀 눈이 내려앉아 있다. 잎을 걷어낸 나무들이 솜털처럼 박힌 봉우리 위로 살포시 눈쌓인 풍경이 청초하다. 무릉계곡 일대의 거뭇거뭇한 바위들 사이를 거닐며, 설산이 사라졌다 나타날 때마다 기묘한 고요함과 의지 같은 것을 마음으로 느낀다. 공간을 여행함과 동시에 시간을 여행했던 부자(夫子)의 여로는 비록 학소대(鶴巢臺)에서 짧게 끝났지만, 똑같은 길도 돌아오는 길에 마주하는 풍경은 같은 듯 다를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