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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변천(半邊川)여행/2025 설즈음 영양과 울진 2025. 3. 14. 15:37
서석지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국도 옆으로는 꽝꽝 얼어붙은 실개천을 따라 무채색의 단애(斷崖)가 펼쳐졌다. 절벽의 거친 단면은 마치 산봉우리가 겹겹이 포개어진 백제의 대향로를 연상케 했다. 낭떠러지는 수직낙하를 거부하듯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지류가 반변천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부드럽게 입수(入水)했다. 그 접면에는 사람의 왕래가 있을까 싶을 법한 신식 정자가 서 있다. 예의 얼어붙은 실개천은 어쩌면 바위보다도 단단해 보이고 흙보다도 불투명해 보였다.
겨울철 우리나라의 암석은 가장 본래의 색을 띤다. 초록(草綠)이 사라진 겨울 풍경 속 암벽은 그을음, 얼룩, 마모 따위의 흔적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다. 노령의 암석들에서 환부(患部)의 심상을 떠올렸다가, 인고(忍苦), 내강(內剛)의 추상적 개념을 발견한다. 그렇게 암산(巖山)들을 색으로 묘사할 표현을 찾지 못해 질감으로 나타낸다. 겨울색은 그 단조로움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여행을 마치는 길에 다시 한번 바라본 하천 일대는 늦은 오후의 농익은 햇살을 받아 선명한 음영(陰影)을 띠었다. 풍경의 단조로운 거죽에 덧씌워진 빛의 강렬한 대비를 눈으로 좇는다. 저 땅은 지금껏 무엇을 목격해 왔을까. 저 바위, 저 나무, 저 물길은 무엇일까. 봄이 오기 전 헐벗은 겨울 앞에 급급히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