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후에서의 마지막날이자 하와이에서의 마지막날은 빠르게 흘러갔다. 애당초 오아후 섬에서 여러 일정을 소화하지 못했던 우리 일행은 괜한 탐방 욕심에 여행 마지막날 탈이 나는 것보다는 여행을 갈무리하는 느낌으로 원없이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우리의 의사결정인 것처럼 말했지만, 여행지에서 절대권력자인 자식 된 입장에서 나의 결정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는 오후 2시경에 이륙하는 비행 시간 전까지 와이키키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오아후를 3분의 1 정도만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글의 제목을 주마간산으로 달아놨다고 해서, 하와이 출발 하루 전날 견인된 차량을 되찾은 우여곡절 끝에 방문한 양조장(distillery) 얘기를 빼놓을 순 없겠다. 코하나 양조장(Ko Hana Distillery)에서 나는 아버지께 럼주 시음을 소개해드렸다. 우람한 백인 남성에게 시음을 요청한 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는 해군으로 복무하는 동안 며칠간 부산에 정박한 기억으로 한국과는 인연이 있다고 했다. 전역 후에도 군인 말투를 떼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내게 인종차별을 가하는 것인지, 흥미로운 말의 내용과는 달리 말투는 딱딱하고 사무적이기만 했다.
이 양조장의 이름에도 들어간 '코(Ko)'는 사탕수수를 가리키는 하와이 현지 표현이다. 즉 이곳에서 판매하는 럼주는 기본적으로 사탕수수를 이용한 것으로, 얼마 동안 숙성이 되었는지 또는 훈연이 가미되었는지에 따라 가격대가 달라진다. 한편 그 뒤에 붙는 '하나(Hana)'는 일 또는 행동을 가리키는 현지어다. 그만큼 깐깐하게 공을 들여 만들어진 술이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풍미가 가장 좋은 고아(Koa)와 다른 종류의 술 두 병을 적당히 샀다. 그렇게 고른 고아는 이후 회사의 팀 회식에 들고 가 만끽했으니..
다시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여정으로 되돌아오자면, 두 시간 남짓 주어진 시간 동안 라나이, 마카푸우, 누아아누 팔리 전망대를 차례로 둘러보았다. 빅 아일랜드에서 보았던 풍경과는 달랐고, 특히 능선이 그러했다. 널따란 호(弧)를 그리는 빅 아일랜드의 거대 화산들과 달리, 오아후 섬의 능선은 예리하고 가팔랐다. 조금만 더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오아후 섬도 찬찬히 둘러보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그런 아쉬움도 짧게나마 이국의 풍경을 눈에 담는 즐거움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우리는 늦지 않게 공항으로 돌아왔고, 여행의 끝을 우울하게 알리는듯 공항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중에 캐리어 하나를 렌트카에 두고 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여하간 결론적으로 무탈하게 탑승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항상 여행의 마지막에 관한 기억은 희미한 것 같다. 지나온 여행에 대한 아쉬움과 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착오가 없어야 한다는 각성이 겹쳐 늘 마음이 붕 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꿈결 같았던 하와이에서의 6박 8일은 그렇게 끝이 났고, 7시간이 지나 우리는 인천 땅에 발을 디뎠으며,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서울로 들어가는 빨간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