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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6. 밤(夜)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5. 1. 30. 03:38
띄엄띄엄 써온 하와이 여행기를 급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사실 우천으로 인해 루아우 공연이 취소되었던 첫날부터 오아후에서의 일정은 그리 체계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오아후에서 맞는 둘째날, 우리는 와이키키 해변을 따라 걸었고 그 다음에는 인근의 또 다른 호텔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잘 알고서 고른 곳은 아니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테라스에서 전날보다 나아진 햇살을 쬐며 식사를 하는 것까진 좋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건 그 직후의 일이었다. 이곳까지 렌트카를 끌고 왔는데, 주차해 놓은 2시간여 사이에 차가 견인된 것이었다. 눈앞에서 (내 차도 아닌 남의) 차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찔하기도 했고 전날 투스텝 비치에서 수영하면서 베인 발바닥이 욱신거리는 까닭에 빠르게 대처하기도 어려워서도 곤란했다.
뒤늦게 등록되지 않은 차량은 견인될 수 있다는 주차장의 안내판을 보았고, 하단에는 자그마하게 적힌 견인장소가 적혀 있었다. 공항 근처였다. 우리는 허우적대며 택시를 찾았지만 멈추는 택시는 없었고, 결국에는 영 딴 호텔의 도어맨에게 가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보라색 정복을 입고 두 명이서 조를 이룬 도어맨은 우리가 딱해 보였는지 택시를 불러주는 것도 모자라 발에 붙일 밴드까지 넉넉하게 가지고 왔다. 당시 내 기분은 최악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해 다행히도 차는 찾을 수 있었지만, 견인비 200불을 치러야 했다. 창구 너머 주인장의 앳된 딸은 무심하게 수기로 영수증을 작성해주었다. 마우나케아산에서 사륜구동차 운전에 대한 수고비로 받은 100불이, 결국에는 갑절로 새어나갔다. Easy Come Easy Go. 돌아오는 길은 택시가 필요 없으니 렌트카를 타고 와이키키 시내로 되돌아 왔다.
오후에는 주로 알라모아나 쇼핑센터에 머물렀다. 세계 최대의 아울렛 매장이라는 이곳은,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꼭 들러야 할 필수코스로 여겨지는 곳이다. 우리는 여기서 간식이며 기성복이며 한국에 가지고 갈 기념품들을 샀다. 다만 하와이의 쇼핑센터나 우리나라의 쇼핑센터가 그 구조나 양식, 사람들의 행동패턴까지도 우리나라와 똑같거니와, 심지어 우리나라의 쇼핑센터가 더 크고 화려하기에 알라모아나 센터에서의 일정은 퍽 지루했다. 공간이 크다보니 원하는 매장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늦은 밤에는 공연이 열리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루아우 공연에서처럼 횃불이 높다랗게 설치된 무대 앞에서 새하얀 머리칼을 짧게 자른 초로의 남성이 우쿠렐레 연주를 했다. 우리 테이블을 맡은 직원이 몇 번인가 맥주 잔을 바꿨고, 아빠는 에일보다는 라거가 더 좋다고 평하셨다. 지극히 도회적인 공간과 조명, 이곳을 만끽하러 온 다국적의 휴양객들 사이에서, 오로지 환하게 밝혀진 야자수 몇 그루만이 내가 와 있는 이곳이 여름의 하와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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