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과 N이 타슈켄트에서 추천한 장소는 베쉬 코존(Besh Qozon)이라는 곳이었다. 우즈베크어를 알 리 없는 나는 타슈켄트의 어떤 지역명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 이곳은 유명 레스토랑의 이름이고 이 일대에 둘러볼 만한 곳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M은 내게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일대에 있다고 했고, 나는 공항에서 내린 후 택시기사에게 베쉬 코존으로 목적지를 불렀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오른편으로 말로 들었던 쾌적한 공원이 나타나자 목적지까지 가지 말고 그곳에서 하차하겠다고 했다.
** 한국에서 챙겨온 유심은 어찌된 일인지 잘 작동하지 않았다. 신호를 읽기는 읽었지만 수신감도가 낮아 인터넷이 여간 느린 게 아니었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택시 어플(Yandex Go)에 전화번호로 계정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참을 씨름하다 결국 한국의 로밍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직장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피했던 방법이었다. 문제는 로밍서비스로 돌린 이후에도 인터넷 속도는 여전히 느리고 전화번호로 계정을 인증하는 작업 역시 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결국은 공항에 있는 통신사로 가 도움을 구했다. 8만 솜(한화 약 8천 원)에 새로운 유심카드를 새로 발급해주었지만 여전히 그 어느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어플로 택시 호출하기를 포기하고, 마찬가지로 공항 안에 있는 안내센터에 택시 배차를 부탁했다. 10만 솜(한화 약 1만 원). 이후에 여행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때의 택시가격은 우즈베키스탄 시내에서 보통 지불하는 금액의 4~5배에 달하는 비용이었다.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조차 내게 바가지를 씌운 것이다. 마치 선의를 베푼 듯 나를 인솔하던 직원과 함께 공항을 빠져나올 때, 공항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 순교자 기념 광장(Shahidlar xotirasi maydoni). 영문명으로는 "Memorial to the Victims of Repression in Tashkent"이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는 공간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지만, 희생을 치르게 된 사건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이 공원에 들어섰다. 주말이어서인지 배낭을 매고 걸어가는 내 앞으로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녀 한 무리가 피크닉 복장으로 유쾌하게 수다를 떨며 걸어가던 것이 생각난다.
첫 행선지로 이 기념공원을 택한 건 좋은 결정이었다. 비록 비교적 근래에 단장된 곳이기는 하지만, 우즈베크 스타일의 터키옥빛 둥근 돔은 내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감각을 일깨워주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알아본 바, 이곳은 1873년 소련이 히바(Khiva) 지역을 침공한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 면화 스캔들(cotton scandal; 소련 브레즈네프 통치하에서 발생한 대형 부정부패 사건)에 이르기까지 소련의 억압된 통치 아래에서 희생된 우즈베크 사람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소련 붕괴 후 1999년 만들어진 야슬릭(Jasliq) 교도소에서 2019년까지 자국민에 대해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청산되지 않는 폭력의 영속성을 발견하는 듯하다.
그러한 서사에는 아랑곳없이 포플러 나무가 시원하게 드리워진 공원 사이로 좁은 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황톳빛 강물은 흐름의 방향이 자주 바뀌는 까닭에 유속의 느리고 빠름이 훤히 보이는 듯하다. 강가의 벤치마다 사람들이 뜨거운 햇살 아래 여유로운 오후를 만끽한다. 이 공간에서 우즈베키스탄이 거쳐온 고난의 근대사를 발견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